2018.05.12(토) 양산 통도사 12암자 순례길
이번 산행은 특별한 이벤트 산행으로 부산 근교의 영축산(靈영묘할영,鷲수리축,山뫼산)
자락에 안겨있는 통도사의 12암자를 찾았습니다.
이맘때면 산행지 잡기가 조금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철쭉구경이 조금 늦어지면 통상 철쭉꽃밭이 그늘없는 땡볕으로, 꽃도 즐기지 못하고 무더위에
실컷 고생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민끝에 정한 곳으로 부산경남사람들이면 한 번쯤 걸어보고 둘러봐야할 통도사의
12암자길이었습니다.
이는 부처님 오신날 10일 전의 순례길로 불자에게는 뜻깊은 길이고, 종교가 다른 나에게는
고승들의 삶과 역사에 대한 배움의 길이 되었습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석삼,寶보배보,寺절사,刹절찰)의 하나로
신라 선덕왕때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 가사, 대장경 등을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창건한 절이며,
우리나라 최초로 부처의 진신사리와 대장경을 봉안한 적멸보궁으로,
※ 삼보사찰(三寶寺刹)?
우리나라의 3보 사찰에는
법보사찰(法寶寺刹 : 팔만대장경을 보유)인 합천 해인사(海바다해,印도장인,寺절사)
승보사찰(僧寶寺刹 : 신라부터 조선까지 15국사 배출)인 순천 송광사(松소나무송,廣넓을광,寺)
불보사찰(佛寶寺刹 :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 보유)인 양산 통도사(通통할토,道길도,寺)가
있습니다.
※ 적멸보궁(寂고요할적,滅멸망할멸,寶보배보,宮집궁)?
남김없이 소멸되어 고요해진 열반의 보배같은 궁전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말하고,
이곳에는 불당에 부처를 봉안하지 않고 불당의 뒤편에 큰 창을 내어 부처의 진신사리를
직접 배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은
설악산의 봉정암(鳳봉황새봉,頂정수리정,庵암자암), 오대산 상원사(上윗상,院집원,寺절사),
정선 정암사(淨깨끗할정,巖바위암,寺절사), 영월 법흥사(法법법,興일어날흥,寺절사)
양산 통도사(通통할통,道길도,寺)가 있습니다.
이후 신라 율종(律법율,宗마루종)의 근본 도량이면서 신라 승단의 중심이 된 절입니다.
통도사의 암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안양암, 극락암, 백운암, 자장암 등 13개 암자와
그 이후에 세워진 서축암, 금수암, 무량암, 관음암, 배발절, 보문암 등 6개를 합쳐
전체 19개 암자를 안고 있지만,
우리는 하루만에 순례를 끝내기 위해 산중턱에 위치한 백운암과 비로암,안양암
그리고 통도사 부근 도로에 위치한 축서암, 무량암, 보문암, 관음암 등 7곳을 제외하고
이어가기가 무난한 코스를 선정했지만 당초 코스에 들었던 안양암을 지나치는 바람에
취운암을 추가하여 12곳 암자 순례를 마감했습니다.
양산 지산마을에서 시작한 순례길은 ,
아침부터 찌푸리던 날씨가 점심 이후 급기야는 약한 비를 뿌리기 시작하여 순례길이
끝난 오후 4시 전후에는 다소 만은 비를 뿌렸지만 그나마 큰비는 피할 수 있어
다행스런 순례길이었습니다.
가는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푸른 숲속의 운무는 순례길을 선경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했습니다.
완벽한 통도사 19개 암자 순례길은 아니었어도 하나의 해묵은 숙제를 해결한 기분 좋은
하루였고, 나머지 가지 못한 7개 암자는 두고두고 가봐야 할 또 다른 숙제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영축산(靈영묘할영,鷲수리취,山뫼산)?)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1,059m인 영축산은 경관이 수려하여 영남알프스라
불리며 일명 취서산이기도 하다.
이 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진다.
남서진하는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에서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내려와 배내고개를
건너서 남진하는 줄기는 간월산, 신불산을 지난다.
특히 영축산의 첫머리과 연결된 광활한 능선은 억새밭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 뻗어있는 계곡은 통도사 주변 암자와 연결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영축산 통도사는 양산8경의 제 1경이다.
그밖의 8경으로는 천성산, 내원사계곡, 홍룡 폭포, 배내골, 천태산, 오봉산 임경대,
대운산 탑골휴양림 등이 있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鷲)' 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리고 '취 또는 축'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3년(세조 9)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 이름 혼동의 원인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 자를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한자사전의
표기 '취'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2001년 1월 9일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확정되었다.
(트레킹 개요)
1. 산행일자 : 2018.05.12(토) 날씨 : 흐린후 비
2. 산행시간 : 10시20분 ~ 15시55분(5시간35분) 후미기준 여유있는 산행시간임
3. 이동, 도상거리 : 11.12km, 10.94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2.00km/h
휴식제외 : 2.31km/h
5. 고도 : 362m ~ 197m(165m)
6. 오르막 거리, 속도 : 3.37km 1.84km/h
7. 내리막거리, 속도 : 7.48km, 2.50km/h
8. 휴식횟수, 시간 : 1회, 45분
9. 트레킹코스
지산마을 ▷ 반야암 ▷ 극락암 ▷ 금수암 ▷ 서축암 ▷ 자장암 ▷ 사명암 ▷ 백련암
옥련암 ▷ 서운암 ▷ 수도암 ▷ 취운암 ▷ 보타암 ▷ 통도사
▼ 당초 순례길 코스입니다만 수도암에서 안양암을 놓치고 우측의 취운암으로.....
▼ 산행궤적입니다. 영축지맥 아래의 통도사 암자들입니다.
(영축지맥이란?)
낙동정맥 영축산(△1,081m)에서 분기하여,
시살등→염수봉→금오산→구천산→만어산→청용산→매봉산을 거쳐
밀양강(우)까지 이어지는 45.8km의 산줄기로,
단장천과 양산천을 구분하며 크게는 밀양강 남쪽 울타리가 되어,
밀양강과 낙동강의 합수처인 삼랑진에서 그 脈을 다한다.
주요산봉우리는
영축산(1,081m)→시살등(980.9m)→염수봉(鹽水峰 816.1m)→배태고개→
금오산(金烏山 765m)→구천산(九天山 630m)→만어산(萬魚山 669.6m)→
청용산(354.2m)→매봉산(妹峰山 283.7m)
▼ 산행궤적의 주등로에서 살짝 들어간 곳이 암자위치입니다.
▼ 등고선에 표시한 궤적으로 각 암자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 해발고도표로 첫번째 높은곳이 극락암, 두번째가 사명암입니다.
▼ 10:20(00h00m) 들머리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만남의 광장 전경입니다.
이곳까지 대형버스 진입이 가능합니다.
▼ 10:23(00h03m) 잠시 전달 사항을 마치고 본격적인 들머리로 이동합니다.
▼ 10:23(00h03m) 길가에 핀' 유채꽃'입니다.
▼ 10:23(00h03m) '컴프리'입니다. 차(茶)로 만들어 많이 마십니다.
(컴프리?)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한다.
유럽이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모여 나는 원줄기는 높이 40~80cm 정도이고 가지가 갈라지며 줄기에 약간의 날개가 있고
전체에 털이 있다.
7~8월에 피는 꽃은 자주색, 연한 홍색, 백색 등이며 밑을 향한다.
열매는 4개의 분과로 되며 분과는 난형이다.
관상용으로 심고 사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뿌리와 잎을 식용하기도 한다.
▼ 10:24(00h04m) 양산시에서 만든 영축산 산행 안내도로 지산마을은 좌측하단입니다.
▼ 10:24(00h04m) '사데풀'입니다.
(약효?)
• 어린순을 나물로 한다.
• 全草(전초)는 거매채, 花(화)는 거매채화라 하며 약용한다.
⑴거매채
①봄에 꽃이 피기 전에 뿌리째 뽑아서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다.
②약효 : 淸熱(청열), 해독, 補虛(보허), 止咳(지해)의 효능이 있다.
細菌性下痢症(세균성하리증), 喉頭炎(후두염), 虛弱咳嗽(허약해수), 內痔脫出(내치탈출),
白帶(백대)를 치료한다.
③용법/용량 : 15-30g을 달여 복용한다. <외용> 달인 液(액)으로 熏洗(훈세)한다.
⑵거매채화
①여름과 가을에 꽃이 피기 직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②약효 : 급성황달형 전염성간염을 치료한다.
③용법/용량 : 6-12g을 달여서 복용한다.
▼ 10:24(00h04m) '씀바귀'입니다.
▼ 10:24(00h04m) '뽀리뱅이'같은데 잎을 찍어오지 않아서??????
▼ 10:24(00h04m) '미나리아재비'입니다.
▼ 10:24(00h04m) '때죽나무꽃'입니다.
(때죽나무?)
동아시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분류군으로 때죽나무속 식물 중에서 가장 흔한
종이기도 한다.
넓은 분포역으로 인해 종 내 변이가 매우 크나, 소화경의 길이가 1.5cm보다 길고,
그 소화경에 달린 꽃보다 길이가 같거나 긴 것이 특징으로 때죽나무속의 다른 분류군과
구분할 수 있다(Huang et al., 2003).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분류군 중에서는 전국 각처의 산야에서 볼 수 있는 쪽동백나무
(S. obassia Siebold et Zucc.)와 비슷하며 두 분류군은 때죽나무속에서
크리타(Cryta)계에 함께 분류된다(Huang et al., 2003).
그러나 때죽나무는 쪽동백나무에 비해서 중부 이남에만 분포하며, 잎겨드랑이에서 난
꽃차례가 매우 짧아서 꽃차례를 이루지 않은 것처럼 보이므로 구분된다.
또 잎의 형질에 있어서도 구별이 가능하다.
때죽나무는 잎이 난형 또는 타원형이며 쪽동백나무는 도란형에서 원형이고 잎의 길이는
때죽나무의 잎이 쪽동백나무의 잎에 비해 반 정도로 작다.
관상용으로 정원에 흔히 심는다(Shim and Ha 1997).
열매는 비누로 만들기도 하고, 감기약, 항균제 등의 약으로 쓴다.
▼ 10:27(00h07m) 지산마을 만납의 광장에서 약 5분정도를 오르면 좌측으로 산길이 열립니다.
▼ 10:27(00h07m) 들머리만 찾으면 그다음부터는 편안한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 10:27(00h07m) '국수나무'입니다.
(국수나무?)
전국의 숲 속에 흔하게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다.
세계적으로 중국 동북부, 대만, 일본에 분포한다.
줄기는 높이 1-2m이며, 가지 끝이 옆으로 처진다. 잎은 어긋나며, 삼각상 넓은 난형,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햇가지 끝의 원추꽃차례에 달리며,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다.
꽃잎은 5장이다.
수술은 10개, 꽃잎보다 짧다. 열매는 골돌이며, 원형 또는 도란형이다.
줄기의 골속이 국수처럼 생겼다 하여 ‘국수나무’라고 부른다.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 10:29(00h09m) 억새밭길 사이로 이동이 이어집니다.
▼ 10:31(00h11m) 이 농토는 통도사에서 관리하는 농토라고 합니다.
▼ 10:33(00h13m) '지칭개'입니다.
(지칭개?)
2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밭이나 들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90~160cm 정도이고 가지가 갈라진다.
근생엽은 모여 나며 어긋나는 경생엽은 길이 10~20cm 정도의 도피침상 긴 타원형으로
우상으로 깊게 갈라진다.
정열편은 삼각형이고 측열편은 선상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뒷면에 백색
털이 밀생한다. 5~7월에 개화한다.
두상화는 길이 12~14mm, 지름 18~22mm 정도로 연한 자주색이다.
수과는 길이 2.5mm, 너비 1mm 정도의 긴 타원형으로 암갈색이고 관모는 2줄이다.
‘분취속’에 비해 총포편 등에 닭의 벼슬 같은 부속체가 있고 수과는 15개의 뾰족한 능선이 있다.
어린순은 나물로 식용한다.
봄에 어린순을 삶아 나물로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겉절이로 먹기도 하고 된장과 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한다.
▼ 10:33(00h13m)'산딸나무'입니다.
(산딸나무?)
키는 10m 정도 자라고 가지들이 층을 이루며 달린다.
잎은 마주나고 4~5쌍의 잎맥이 양쪽으로 나오며, 잎 뒷면에는 털이 밀생한다.
잎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무딘 톱니들이 조금 있다.
꽃은 6월 무렵 가지 끝에 무리져 피는데 둥그렇게 만들어진 꽃차례에 4장의 꽃잎처럼
생긴 흰색 포(苞)가 꽃차례 바로 밑에 십자 형태로 달려 꽃차례 전체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보인다.
하나하나의 꽃은 4장의 꽃잎과 4개의 수술, 1개의 암술로 이루어져 있고 열매는 10월에
붉게 익는다.
꽃받기[花托]가 씨를 감싸는 과육으로 자라는데, 맛이 감미로워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산기슭이나 산골짜기에서 흔히 자라며, 꽃과 가을에 붉게 물드는 단풍을 보기 위해 정원에
심기도 한다.
응달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지만, 반그늘 또는 양지바른 곳에서도 자란다.
북부지방에는 키가 10m 정도 자라고 줄기가 네모진 상록초본인 풀산딸나무가 자란다.
그밖에도 외국에서 들여온 미국산딸나무를 정원이나 길가에 심기도 한다.
4~5월에 꽃이 피며, 10월에 열매를 맺는다.
▼ 10:36(00h16m) '산괴불주머니'입니다.
(산괴불주머니?)
2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곧추서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 30~60cm 정도이며 전체에 분록색이
돌고 속이 비어 있다.
어긋나는 잎의 잎몸은 길이 10~15cm 정도로서 난상 삼각형이고 2~3회 우상으로
갈라진다.
4~6월에 개화하며 총상꽃차례에 피는 꽃은 황색이다.
삭과는 길이 2~3cm 정도의 선형으로 염주같이 잘록잘록하며 종자는 흑색이고 둥글며
오목하게 파인 점이 있다.
‘괴불주머니’와 비슷하지만 종자 표면에 오목점이 많고 ‘염주괴불주머니’와 달리 개화기까지
남는 근생엽과 경생엽은 난형으로 우상복생한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괴불주머니 종류는 모두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
연한 잎을 데쳐서 우려내고 먹는 곳도 있다.
▼ 10:38(00h18m) 울창한 송림사이로 맑은 공기 마시면서 걷는 기분은 최상이었습니다.
▼ 10:39(00h19m) 낮지만 약간의 오르내리막이 있습니다.
▼ 10:41(00h21m) 도로를 따르지 않고 스님들이 다니는 길로 왔더니 개울을 건너야....
▼ 10:42(00h22m) '산괴불주머니'입니다.
▼ 10:43(00h23m) 첫 탐방지인 반야암 입구 주차장 전경입니다.
▼ 10:43(00h23m) 반야암 암자명목 입니다.
(반야암(般돌릴반,若반야야,庵암자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난 골짜기 끝에 자리잡고 있다.
1999년 승려 지안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般若寶殿), 청향정(淸香亭), 세진정(洗塵亭)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 현판은 승려 지안이 썼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수행도량으로서 매주 일요일 가족법회가 열리며 여름방학 기간에는 큰 규모의 하기수련회가
열린다. 반야암 [般若庵] (두산백과)
▼ 10:43(00h23m) 반야암 입구에서 바라본 전체적인 전경입니다.
▼ 10:44(00h24m) 부처님 오신날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 10:45(00h25m) 통도사 산중 암자중 불두화(佛頭花) 가 가장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불두화?)
둥근형태의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불두화라 하였다.
순백으로 피어 풍성한 불두화를 화병에 꽂아 들여놓으면 집안 전체가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정원수로 쓰이며 열매를 맺지 않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사찰에 많이 심겨져 있다.
꽃이 공처럼 아름다워 꽃꽂이용 소재로도 종종 이용된다.
▼ 10:46(00h26m) 오른쪽 건물은 반야보전 전경입니다.
(반야(般若)란? )
▼ 10:46(00h26m) 정면에서 바라본 반야보전과 불두화(흰꽃) 전경입니다.
▼ 10:46(00h26m) 반야보전 앞뜰에 있는 조그마한 정원의 연못입니다.
▼ 10:47(00h27m) 불두화가 만발했습니다.
▼ 10:47(00h27m) 반야보전 개울건너에 있는 조그마한 절집으로 스님들의 수행처가 아닌가 싶네요.
▼ 10:47(00h27m) 반야보전 앞 개울을 건너는 출렁다리로 어지간해선 건너기가......
▼ 10:51(00h31m) 반야암에서 준비중인 부처님 오신날 등 전경입니다.
▼ 10:51(00h31m) 사람 머리만한 불두화입니다.
▼ 10:51(00h31m) 반야보전 맞은편 개울가에 세워진 '세진정(洗씻을세,塵티끌진,亭정자정)'
이라는 정자입니다. 세속의 때를 씻어내는 정자라는 뜻인가 봅니다.
▼ 10:52(00h32m) 반야암 탐방을 마치고 다음 탐방지인 극락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 10:53(00h33m) 최근에 지어진 요사체 같은데 '지월당(指손가락지,月달월,堂집당)'입니다.
의미깊은 뜻인지 제 머리로는 ..........
▼ 10:54(00h34m) 지나오면서 바라본 영축산과 지월당의 어울림입니다.
▼ 10:55(00h35m) 산약초를 찾는 사람들 눈에는 한낮 송담약초로만 보일진대.....
▼ 10:58(00h38m) 노송 우거진 산길을 솔향기 냄새 맡으면서 이동합니다.
▼ 11:03(00h43m) 임도를 비켜서 극람암 들어가는길에 나타난 잘빠진 여성의 다리모양이......
▼ 11:03(00h43m) 극락암으로 이어지는 샛길로 이동합니다.
▼ 11:04(00h44m) 극람암 주차장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극락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부속암자이다.
1332년(충혜왕 2) 창건하였으며, 창건자는 미상이다.
1758년(영조 34)철홍(哲弘)이 중창하였고, 극락선원(極樂禪院)은 많은 수행인들을
배출하였다.
1953년 11월 대선사 경봉(鏡峰)이 조실(祖室)로 추대되자 많은 수행승들이 모여들었다.
선원의 증축이 불가피해지자 1968년경봉은 가람 전체를 중건, 중수하여 9동 104칸의
선원으로 만들었다.
1973년부터는 신도를 대상으로 매월 첫 일요일에 정기법회를 개설하였는데, 언제나 1,000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암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법당(法堂)을 중심으로 연수당(延壽堂)·
정수보각(正受寶閣)·조사각(祖師閣)·수세전(壽世殿)·영월루(映月樓)·삼소굴(三笑窟)·
여여문(如如門)과 요사채 4동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소굴은 1982년까지 경봉이 기거하면서 수행승들을 지도하던 곳이고,
조사각에는 석가모니불과 33조사, 지눌(知訥)·보우(普愚) 등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는 극락영지(極樂影池)라고 하여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는데, 그 못 위에 경봉이 홍교(虹橋)를 가로질러놓아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또, 암자에서 약 500m 아래에는 용맹정진도량인 아란야(阿蘭若)가 있다.
이 건물은 1969년경봉이 창건한 2층으로 된 현대식 건물로서,
이곳에 들어가면 3년 이상 참선(參禪)에만 몰두하게 된다.네이버 지식백과] 극락암 [極樂庵]
▼ 11:05(00h45m) 극락암 앞뜰 연못의 구름다리입니다.
▼ 11:06(00h46m) 극락암에 대한 상세 설명 안내문입니다.
극락암은 경봉스님이 대표하는 암자로 소꼽히고 있습니다.
(원광 경봉스님(圓둥글원,光빛광 鏡거울경,峰봉우리봉스님)?)
본관은 광주(廣州). 속명은 김용국(金鏞國). 법호는 경봉(鏡峰), 시호(詩號)는 원광(圓光).
법명은 정석(靖錫).
경상남도 밀양 출신. 아버지는 영규(榮奎)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이다.
여러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선(禪)과 교(敎)를 포괄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으로
선승들을 지도하였다.
7세 때 밀양의 한학자 강달수(姜達壽)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으며,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난 뒤 1907년 출가하여 양산통도사 성해(聖海)의 제자가 되었다.
1908년 3월통도사에서 설립한 명신학교(明新學校)에 입학하였으며,
그 해 9월통도사(通度寺)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청호(淸湖)를 계사(戒師)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12년해담(海曇)으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은 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불경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뒤, 참선공부로 선회하여 내원사(內院寺), 해인사 퇴설당(堆雪堂), 금강산 마하연(摩訶衍),
석왕사(釋王寺) 등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던 중, 김천 직지사에서 만난 만봉(萬峰)과의
선담(禪談)에 감화 받아, 통도사 극락암에서 3개월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였다.
이와 함께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에서 정진하던 중, 4일 만에 오롯한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점검하고 다시 화두(話頭)를 들어 정진하다가,
1927년 11월 20일 새벽에 방 안의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그 뒤, 당시의 선지식이었던 방한암(方漢巖)·김제산(金霽山)·백용성(白龍城) 등과 교유하며
정진하였다.
1930년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 1935년통도사 주지, 1941년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이사장, 1949년 다시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전국의 선승들을
지도하였다.
1953년통도사극락호국선원(極樂護國禪院)의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입적하던 날까지 불자들을
지도하였고, 동화사(桐華寺)·내원사(內院寺) 등 여러 선원의 조실도 겸임하였다.
한시와 시조·필묵에 조예가 깊었고, 자기개안(自己開眼)에 의한 육성으로 설법했으며,
선과 교를 포괄하는 독특한 사상을 남겼다.
또한, 통도사의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와 장엄석등(莊嚴石燈) 18좌(座)를 세웠고,
극락암 조사당의 탱화 조성 및 추모 봉행, 특별 정진처인 아란야(阿蘭惹)의 창건,
극락암 정법보각(正法寶閣) 신축 및 무량수각(無量壽閣)의 중창 등을 주관하였다.
이 밖에도 경봉장학회를 설립하였으며, 파고다공원 안에 만해선사기념비 건립도
추진하였다.
또 18세 때부터 85세까지 67년 동안 매일의 중요한 일을 기록한 일지를 남겼는데,
이 일지에는 당시의 사회상과 한국불교 최근세사가 담겨 있다.
1982년 7월 17일에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고, 7월 21일 통도사연화대에서 다비하였다.
저서로는 법어집인 『법해(法海)』, 『속법해(續法海)』와 시조집인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인 『선문묵일점(禪門墨一點)』, 서간집인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등이 있다.
▼ 11:06(00h46m) 극락암의 대문격인 '여여문(如같을여,如,門)' 전경입니다.
여여문의 글씨는 경봉(鏡거울경,峰봉우리봉)스님의 글씨로
여여문의 '여여'는 금강경에 나오는 여여부동(如같을여,如,不아니불,動움직일동) 귀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 뜻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한결 같아 여여하여 변함이 없다'는 뜻이랍니다.
현판에 보이는 두 번째 글짜는 뜻을 가진 글짜가 아니라고하고,
한문에서 같은 글짜를 잇따라 쓸때는 점을 콕콕 찍는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여여로 읽어야 한답니다.
참고로 극락암 이웃 암자인 비로암에는 경봉스님의 글씨로 여시문(如같을여,是바를시,門)
이 있다고 합니다.
여시문(如是門)은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그렇게 들었다'에서 음을 따온 문이라고
합니다.
▼ 11:07(00h47m) 정수보각(正바를정,受받을수.寶보배보,閣누각각)에 대한 설명입니다.
▼ 11:07(00h47m) 정수보각 전경사진입니다.
▼ 11:07(00h47m) 극락암 수세전(壽목숨수,世대세,殿대궐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 11:07(00h47m) 수세전 전경 사진입니다.
▼ 11:08(00h48m) 무량수각에 대한 설명입니다.
▼ 11:08(00h48m) 극락암의 본전인 무량수각 전경입니다.
▼ 11:09(00h49m) 경봉스님의 거처로 사용되던 원광제와 삼소굴 설명입니다.
▼ 11:09(00h49m) 원광제 전경입니다.
▼ 11:09(00h49m) 삼소굴 전경입니다.
(삼소굴(三석삼,笑웃을소,窟)은? )
해방 이후 최고의 선승이라는 경봉스님이 50년동안 선객을 지도하며
주석하셨던 곳이다
삼소란 염주를 한참 찾다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걸 알고 허허허 웃었다는 뜻이다.
자성을 온갖곳에서 찾다가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허허 웃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법문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다 있으니 밖에서 진리를 찾지말고 불교를 찾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날 대마초 사건으로 방황하든 조용필이 스님을 찾아와서 친견했는데 스님이
"뭐하는 놈이야 ?" 하고 물으니
"가수입니다".
"그럼 꾀꼬리구나 꾀꼬리가 뭔지 아느냐"
"모릅니다"
"가서 찾아봐라 "
그래서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 노래가가 탄생했다고 한다 아마도 스님은 전생을
보면서 방편으로 말씀하셨겠죠 -불교 인터넷음악방송에서 옮긴글-
▼ 11:11(00h51m) 경내 조그마한 대문에 부착되어 있는 '극락호국선원신도회''경봉장학회'
현판 전경입니다.
▼ 11:14(00h54m) 주차장에서 바라본 극락암과 영축산 전경입니다.
▼ 11:17(00h57m) 극락암을 떠나 수도암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2곳 암자를 탐방하니 여유롭게 1시간이 흘러갑니다.
▼ 11:25(01h05m) 싱그러운 푸른잎들이 눈을 시원스럽게 맞습니다.
▼ 11:37(01h17m) 이동하는 도로는 시살등에서 하산하는 도로 방향입니다.
▼ 11:38(01h18m) 금수암 입구에 있는 축봉교(鷲수리축,峯봉우리봉,橋다리교)를 지납니다.
▼ 11:39(01h19m) 세번째 암자인 금수암 입구입니다.
(금수암(金쇠금,水물수,庵암자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1910년 동호가 창건하고, 1932년 석봉이 중건하였다.
1953년 법홍이 심우당을 세우고, 1963년 대광명전을 창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명정과 대웅전.심우당.산시각.요사채등이 있다. 특별한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 11:40(01h20m) 금수암(金쇠금,水물수,庵암자암) 당우 전경입니다.
▼ 11:41(01h21m) 불당 앞에 해태상 2마리가 나란히 당우를 지키고 있습니다.
▼ 11:41(01h21m) 앞마당에 조상된 연못과 정자입니다.
정자는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와 스님의 공부방을 겸한 장소인 것 같습니다.
▼ 11:42(01h22m) 물확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 11:45(01h25m) 수도암을 떠나 서축암으로 이동합니다.
▼ 11:46(01h26m) 시살등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우리는 통도사 방향으로....
▼ 11:47(01h27m)중식장소로 이동시 만난 '은대난초'입니다.
(은대난초?)
은대난초는 은난초와 비슷하나 포기 전체에 털 같은 돌기가 나고,
밑의 포가 꽃차례보다 긴 것이 은난초와의 차이점이다.
특히 은난초와 거의 같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헷갈린다.
구체적으로 차이점을 더 알아보면, 키가 은난초는 10~30㎝인 반면,
은대난초는 30~50㎝로 크다.
은난초는 줄기나 잎이 매끄럽지만, 은대난초는 껄끄러운 느낌이 있다.
잎의 경우 은난초는 3~8㎝ 정도인 반면, 은대난초는 5~15㎝이다.
또 포는 은난초가 모두 1~3㎝로 꽃차례의 길이보다 짧지만,
은대난초의 포는 보통의 잎과 같고, 꽃차례 위로 벌어진다.
은대난초는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양지의 물 빠짐이 좋은 풀숲에서 잘 자란다.
잎은 길이가 5~15㎝, 폭이 1.5~4㎝로 끝이 뾰족하고 긴 타원형으로 어긋난다.
꽃은 5~6월에 피며 흰색이다.
꽃의 길이는 0.4~0.7㎝로 작은 편이며, 완전히 펴지지 않는 점이 독특하다.
꽃받침조각은 바소꼴이며 길이는 1.1~1.2㎝이다.
꽃잎은 길이가 짧고 너비가 넓은 것이 특이하며, 꿀주머니가 있고 씨방에 털 같은
돌기가 나 있다. 열매는 7~8월경에 갈색으로 달린다.
난초과에 속하며, 은대난, 댓잎은난초, 은대란이라고도 한다.
주로 관상용으로 사용되며,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11:49(01h29m) 즐거운 점심시간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 12:30(02h10m) 약 40분간의 점심시간을 가진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다행스럽게 점심시간을 마칠 무렵 가는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12:35(02h15m) 서축교를 지나갑니다.
▼ 12:35(02h15m) 도랑에는 제법 수량이 많이 흐르고 있습니다.
▼ 12:36(02h16m) 네번째 암자인 서축암(西서녘서,鷲수리축,庵암자암) 입구 전경입니다.
▼ 12:37(02h17m) 서축암에는 '작약꽃'이 많이 가꿔지고 있었습니다.
▼ 12:37(02h17m) '자주 달개비'입니다.
▼ 12:37(02h17m) 서축암 입구 전경입니다.
(통도사 서측암(通度寺西鷲庵)?)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자장암으로부터 150m 정도 떨어진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1996년 수련화보살과 승려 월하, 원행이 정성을 모아 창건하였다.
경내에는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으며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승려 및 재가 불자들을 위한 산스크리트 강좌도 개설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 12:38(02h18m) 잔디마당에 경구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12:38(02h18m) 입구 우측으로 다보탑을 닮은 석탑이 보입니다.
▼ 12:38(02h18m) 성암 종범스님은 경봉 대선사의 손제자로 알려져있습니다.
▼ 12:38(02h18m) 서축암 요사채인 것 같습니다.
▼ 12:45(02h25m) 서축암을 떠나 자장암으로 이동중 욕진교(浴목욕할목,盡다할진,橋다리교)
를 지나갑니다.
▼ 12:46(02h26m) 탐방을 마친 서축암 사명석을 이제야 봅니다.
▼ 12:46(02h26m) 자장암 방향으로 이동키 위해 서축교를 다시 건너야 합니다.
▼ 12:48(02h28m) 다섯번째 암자인 자장암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우측길은 점심식사 전에 들른 금수암 가는길입니다.
▼ 12:48(02h28m) 금와교(金쇠금,蛙개구리와,橋다리교)를 지나갑니다.
▼ 12:49(02h29m) 운무로 인해 영축산이 선경에 휩쌓여있습니다.
▼ 12:49(02h29m) 자장암 들머리 입구에 창포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었습니다.
▼ 12:51(02h31m) 자장암 입구입니다. 다른 암자와는 다르게 차량 출입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12:51(02h31m) 다섯번째 암자인 자장암(慈사람자,藏감출장,菴책력암) 사찰명석입니다.
(자장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부속 암자이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통도사를 짓기 이전에 이곳의 석벽 아래에서 수도하며 창건하였다.
그 뒤 연대는 미상이나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63년에 용복(龍福)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 건물은 5동 23칸이다.
법당은 4칸의 조그마한 인법당(因法堂)이며, 법당 왼쪽에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자장전(慈藏殿)과 독성각(獨聖閣)이 있고, 법당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으며,
암자 입구 쪽에는 최근에 지은 선실(禪室)이 있다.
법당과 자장전 사이에는 높이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산내에서는
유일한 마애불이며, 1896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이 암자에 대하여 불교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금개구리이다.
법당 뒤쪽에는 암벽에서 맑은 석간수(石間水)가 흘러나오고, 그 위의 석벽에는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율사가 수도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물을 혼탁하게 하므로 신통력으로 석벽에
구멍을 뚫고 개구리를 들어가게 하였다고 전한다.
현재에도 있는 한 쌍의 개구리는 몸이 청색이고 입이 금색인데, 벌과 나비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개구리는 절대로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않는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않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고 봉한 다음 손에 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
보니 없어졌다고 한다.
이 금개구리는 많은 설화를 남기고 있으며, 많은 참배객들이 보살이라고 부르면서 친견(親見)
하고자 한다.
그러나 암혈 속의 개구리를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이로써 불심(佛心)을
측량하기도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자장암 [慈藏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12:51(02h31m) 입구에 새겨진 석각인데 내용은????
▼ 12:52(02h32m) 자장암으로 가는길은 맑은계곡길을 따라 올라가게 됩니다.
▼ 12:53(02h33m) 입구에 '아름다운 계단'이라는 길이 있습니다.
▼ 12:53(02h33m) 계단에 설치된 조형물을 통과하게 되어있습니다.
▼ 12:55(02h35m) '병꽃나무'입니다.
▼ 12:56(02h36m) 자장암의 요사채인 것 같습니다.
▼ 12:56(02h36m) '병꽃나무'입니다. 꽃잎의 색깔이 여러종류입니다.
▼ 12:57(02h37m) 자장암 일주문입니다.
▼ 12:57(02h37m) 동도사 암자중 유일하게 있다는 석불 전경입니다.
▼ 12:57(02h37m) 수입종 같은데 꽃이름을?????
▼ 12:57(02h37m) '매발톱꽃'입니다.
▼ 12:58(02h38m) 자장암 뒤에 가면 금와당(金쇠금,蛙개구리와,堂집당)이라고 있습니다.
▼ 12:58(02h38m) 바위구멍 속에 금개구리를 보기위한 참배객들입니다.
▼ 12:59(02h39m) 이 작은 구멍에 금개구리가 정말 살고 있을까요?
▼ 12:59(02h39m) 수세전(壽목숨수,世대세,殿대권정)과 자장전(慈藏殿) 전경입니다.
▼ 13:00(02h40m) 부처님 오신날 임시버스 운행표를 붙여 놨습니다.
▼ 13:00(02h40m) 자장전은 좁은 부지에 건축되어 있어 길게 건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 13:01(02h41m) 자장암 화장실 앞에서 바라본 자장암 전체 전경입니다.
▼ 13:01(02h41m) 자장암 화장실 앞에서 사명암으로 이동치 않으면 약 4km의 아스팔트로
이동 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산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기존 있던 좌측산길은 자장암에서 폐쇄했기 때문에 우측으로 올랐다가 조그마한 봉우리를
넘어가야 합니다.
순레자들을 위해 자장암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 별도의 산길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13:14(02h54m) 자장암에서 사명암으로 가는 길 중에 산길로 접어들었지만 길 찾기가......
▼ 13:34(03h14m) 자장암 뒤로 조그마한 산봉우리에 접어듭니다.
▼ 13:35(03h15m) 조그마한 산봉우리에서 바라본 통도사 방향 전경으로 운무가 자욱합니다.
▼ 13:35(03h15m) 조그마한 산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급한 내리막으로 내려갑니다.
▼ 13:54(03h34m) 사명암에 도착합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듯 3시간30분이 흘러갑니다.
▼ 13:55(03h35m) 여섯번째 암자인 사명암 전경입니다.
(사명암(四넉사,溟어두울명,庵암자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사명대사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곳이라고
전한다.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를 흠모한 이기(爾奇)와 신백(信白) 두 승려가 암자를 지어
창건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사당을 비롯한 2동만이 남아 있었으나 승려 동원이 중수,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과 일승대, 월명정 등 총 5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 봉안되었던 불화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通度寺四溟庵甘露幀)’ 은 문화예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315호로 지정, 현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통도사 사명암 [通度寺四溟庵] (두산백과)
▼ 13:55(03h35m) 경내 정자인 일승대(日날일,昇오를승,臺돈대대)입니다.
▼ 13:56(03h36m) 사명암 입구 대문 전경입니다.
▼ 13:56(03h36m) 일승대 밑의 조그마한 연못 전경입니다.
▼ 13:57(03h37m) 사명암의 주전인 극락보전 전경입니다.
▼ 13:58(03h38m) 극락보전 우측편으로 고목과 영각이 있습니다.
▼ 13:58(03h38m) 영각 전경입니다.
영각은 한 사찰을 창건 또는 중건하였거나 그 사찰에 머물면서 수행한 고승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사찰의 건물을 말합니다.
▼ 13:58(03h38m) 영각 옆 담장 안으로 스님들의 공부공간으로 외인 출입금지 표식이 붙어있습니다.
▼ 13:59(03h39m) 단풍나무 결실입니다.
▼ 14:01(03h41m) 사명암 주차장에서 바라본 전체적인 전경입니다.
▼ 14:07(03h47m) 사명암을 떠나 약 6분만에 여덟번째 암자인 백련정사 입구에 도착합니다.
좌측으로는 옥련암 가는 길이지만 우리는 백련정사에서 샛길로 옥련암으로 이동핣니다.
▼ 14:07(03h47m) 일곱번째 백련정사 사찰명석입니다.
(백련정사(白흰백,蓮연할련,精정할정,舍집사)?)
1374년 월화대사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창건한 사찰.
백련정사는 통도사의 산내 암자 중 영축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데,
사명암을 지나 500m 정도 위쪽에 있다.
이 암자를 백련정사(白蓮精舍)라고 부르는 것은 대웅전 현판에 ‘백련사(白蓮舍)’라고 되어
있는 데에서 유래한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가 머문 곳을 ‘정사(精舍)’라고 부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백련정사는 1374년(공민왕 23)에 월화대사(月華大師)가 창건하였고,
1634년(인조 12)에 현암대사(懸岩大師)가 중건했다.
현재의 건물이 중건 당시와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중수를 거듭했을 뿐 원형은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세기에 조성된 현왕탱(現王幀)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창건 당시 월화대사가 심은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14:07(03h47m) 백련정사 가는길은 대성교를 건너야 합니다.
▼ 14:09(03h49m) 소나무 우거진 운무끼인 이동길은 선경의 세계로 가는길인지???
▼ 14:15(03h55m) 백련정사 입구에 나옹선사 오도송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나옹선사(懶게으를나,翁어르신네옹,禪고요할선,師스승사)?)
속명은 아원혜(牙元惠), 호는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 법명은 혜근(惠勤),
또는 혜근(彗勤).
아버지는 선관서영(善官署令)서구(瑞具)이다.
중국의 지공(指空)·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 인가를 받고 무학(無學)에게 법을 전하여,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웠다.
그는 참선과 교학을 같이 닦음으로써 성불의 가능성을 보여준 고승으로,
고려 말의 선풍을 새롭게 선양하였다.
그가 법을 전해 받은 지공의 선풍이 공(空)의 이치를 통해 해탈한다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혜근은 전통적인 간화선(看話禪)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종래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이나 조계종과는 다른 임제(臨濟)의 선풍을 도입하여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의 『귀의자심삼보(歸依自心三寶)』의 주장과 ‘염불은 곧 참선’이라고 한 것은
이후의 우리나라 선종에서 계속 전승되었다.
계율관(戒律觀)에서도 삼귀의(三歸依)가 아닌 사귀의를 주장하고 있는데,
수정신사귀의(受淨信四歸依)·참제제삼업죄(懺除諸三業罪)·발홍서육대원(發弘誓六大願)·
최상승무생계(最上乘無生戒) 등이다.
또,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중생 제도의 보살도를 강조하기 위하여 육대서원(六大誓願)을
세우기도 하였다.
제자로는 자초(自超)·지천(智泉) 등 2,000여 명이 있으며,
저서로는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 1권과 『가송(歌頌)』 1권이 전한다.
▼ 14:16(03h56m) 백련정사의 강선루(講익힐강,禪고요할선,樓다락루)입니다.
백련정사는
영축산 남쪽 기슭 가장 순수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 23년 월화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인조 12년 현암대사가 중건하였다.
현재 건물은 1995년 을해년부터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큰 법당 광명전, 누각, 요사채
등을 이룬다.
이 곳에는 역사적으로 선원, 염불당, 강원을 두루 지낸 곳이며
한성, 경허, 만해, 운봉, 향곡,구산, 산허, 성철 등 많은 선지식이 납자로 수행했던 곳이다.
만해는 이 곳에서 불교대전을 집필하였고
경운화상은 이 곳에서 부모님의 왕생극락을 발원하여 일배일자로 금자법화경을 쓰신
곳이다.
운봉스님이 조실로 계실 때 선방을 열었고 구산, 성철이 그때에 안거하였다.
또한 백년정사 만일염불해는 당시에 명성이 높았으며 6.25때는 탄허스님이 강원을
개설하였다.
그래서 백년정사는 수행인의 수도처로서 전통이 빛나는 곳이이다.
출처: http://kym5219.tistory.com/7166 [아름다운 누리]
▼ 14:16(03h56m) 1370년경 백련정사의 창건주 월화대사가 심었다는 은행나무입니다.
▼ 14:17(03h57m) 경내 꽃밭의 창포꽃입니다.
▼ 14:17(03h57m) 백련정사의 주당에 백련사(白흰백,蓮연꽃연,舍집사)란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 14:17(03h57m) 백련사 전경입니다.
▼ 14:26(04h06m) 백련정사에서 옥련암으로 이동중 만난 벼락맞은 나무입니다.
▼ 14:31(04h11m) 도로를 따라가다 샛길로 옥련암으로 이동한후 만난 금낭화입니다.
▼ 14:32(04h12m) 미국인루터버뱅크가 만든 '샤스타데이지'라 합니다.
프랑스의 들국화와 해국을 교배해 만들었다합니다.
▼ 14:33(04h13m) 여덟번째 암자인 옥련암 마당의 품격있는 노송입니다.
(옥련암(玉구슬옥,蓮연할련,庵암자암)?)
양산의 옥련암(玉蓮庵)은 영축산(靈鷲山)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通度寺)에
속한 암자이다.
고려 말인 1374년(공민왕 23) 쌍옥(雙玉)이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작은 암자인 관계로
1857년(철종 8)에 중창했다는 것 외에는 상세한 연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 전기인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양산군 불우(佛宇) 조에는 통도사와 불지사(佛池寺)만 기재되어 있고 이 절은 제외되어 있다.
옥련암에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물을 마신 암자 승려들이 기력이
왕성해지자 그것을 질시한 본사 승려들이 우물을 메우고 물길을 돌렸다는 설화가 전한다.
통도사 극락암의 석조보살관음보살상은 그 「개금중수원문」에 의하면 1835년(헌종 1)
옥련암에서 제작되었고 1885년(고종 22)에 금으로 개금하였다고 한다.
▼ 14:33(04h13m) 옥련암이라는 현판은 본당이 아닌 요사체에 붙어있습니다.
▼ 14:33(04h13m) 옥련암의 앞마당과 장독대입니다.
▼ 14:33(04h13m) 다른 암자와 특이한점은 본당에 한글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 14:33(04h13m) 본당 앞에서 바라본 가지가 여러갈래 벌어진 반송(盤松)입니다.
반송(盤松)이라고 부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땅에서부터 여러 갈래 줄기로 나뉘어
마치 부채를 펼친 모양으로 자란다.
▼ 14:34(04h14m) 본당옆에는 무량수전 건물이 있습니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다.
▼ 14:34(04h14m) 옥련암 꽃밭에서 본 그림같은 소나무 한그루입니다.
▼ 14:36(04h16m) 옥련암 주차장에서 바라본 영축산에 구름이 점차 걷히고 있습니다.
▼ 14:38(04h18m) 옥련암 노송에도 일제의 잔재가 묻혀있습니다.
▼ 14:41(04h21m) '금창초'입니다.
(금창초?)
남부지방과 울릉도 마을 근처 또는 들판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세계적으로는
중국, 대만, 일본에 분포한다.
줄기는 옆으로 뻗고, 높이 5-15cm다. 뿌리잎은 여러 장이 모여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줄기잎은 마주난다. 꽃은 4-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여러 개가 돌려나며, 분홍색 또는 자주색이다.
꽃받침은 5갈래, 털이 난다. 화관의 윗입술은 2갈래, 아랫입술은 3갈래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다. 열매는 소견과다. ‘금란초’라고도 부른다.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며 함암제로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 14:43(04h23m) 옥련암을 떠나 서운암으로 이동합니다.
옥련암에서 스님들이 이용하는 샛길로 이동했습니다.
서운암 주변에는 이팝나무꽃으로 눈이 내린듯한 풍경이었습니다.
▼ 14:43(04h23m) 아래로 아홉번째 암자인 서운암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서운암(瑞상서러울서,雲구름운,庵암자암)?)
양산의 영축산(靈鷲山) 자락에 있는 서운암(瑞雲庵)은 고려 후기인 1326년(충목왕 2)
충현(冲絢) 대사가 창건하였다.
이후 별다른 기록은 없고 1859년(철종 10)에 남봉(南逢) 화상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통도사의 19 암자 중 하나로 법당과 요사를 갖추고 있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지만, 주변이 야생화군락지로 유명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 14:43(04h23m) 서운암 뒤쪽에 있는 도자기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입니다.
▼ 14:47(04h27m) '죽단화'입니다.
(죽단화?)
일명 겹황매화라고도 하며,
중부 이남에 자라는 낙엽 활엽 떨기나무로 일본과 중국에 분포한다.
높이 1.5-2.0m, 어린 가지는 녹색이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 또는 긴 난형으로, 끝은 점차 길게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잎 뒷면의 맥은 튀어나오며 털이 있다. 잎자루는 길이 5-15mm다. 꽃은 4-5월에
노란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겹꽃이다.
열매는 견과, 9월에 검은 갈색으로 익는다. 흔히 관상용으로 심어 기른다.
▼ 14:49(04h29m) '때죽나무'입니다.
(때죽나무?)
강원도 이남의 숲 속에 자라는 낙엽 작은키나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인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줄기는 높이 5-15m이며, 흑갈색이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꽃은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난 총상꽃차례에 2-5개씩 달리며, 흰색, 향기가 좋다.
수술은 10개이며, 아래쪽에 흰 털이 있다. 열매는 핵과이며, 둥글고, 완전히 익으면 껍질이
벗겨지고 씨가 나온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열매는 비누로 만들기도 하고, 감기약, 항균제 등의 약으로 쓴다.
▼ 14:49(04h29m) '작약꽃'입니다.
▼ 14:51(04h31m) 서운암에서 바라본 도자기대장경각 전경입니다.
▼ 14:53(04h33m) '금낭화'입니다.
(금낭화?)
아치형으로 활대처럼 곧게 뻗은 꽃대에 아이들 복주머니 모양의 진분홍색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꽃이다.
꽃 모양이 옛날 며느리들이 차고 다니는 주머니를 닮았다 하여 며느리주머니 라고도 부른다.
어찌 보면 말괄량이소녀 ‘삐삐’의 머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자생화 중 비교적 꽃이 크고 화려하여 관상가치가 높은 식물이다.
추위나 더위에 강해 전국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꽃 모양이 좋아 분화용으로도 좋으나 실내에 두면 하루 중 온도변화가 적어 꽃색이 연해지는
단점이 있다.
꽃꽂이용으로도 쓰인다.
▼ 14:54(04h34m) 서운암에서 유명한 된장 장독대입니다.
(서운암 약된장?)
서운암 약된장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통도사 서운암 주지인 승려 성파가
개발한 전통 식품 중의 하나로 한약재를 첨가한 된장이다.
각종 인공 조미료 대신 순수 한약재를 첨가해 만들기 때문에 찌개를 끓여 놓으면 깔끔하고,
맛이 담백하다.
1,300년의 전통을 지닌 통도사와 함께 하는 서운암 약된장은 농사를 지으며 수행하는
‘선농일치사상’의 실천을 위해 스님들이 부식으로 사용하기 위해 직접 담근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 승려 성파가 대중에게 자연식을 베풀고 사찰의 재원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998년 서운암
약된장을 일반인들에게 보급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햇콩을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삶고, 황토와 짚으로 지은 전통
가옥에서 발효시킨다.
그런 다음 전라도 서해안에서 가져온 천일염을 3년 동안 간수를 뺀 다음, 음력 정월에 양산
영축산 천연 약수에 오미자, 구기자, 산수유, 감초 등 10여 가지 한방 생약재와 함께 50년
이상 된 옹기(壅器)에 담아, 적당한 일조량과 온도를 조절해가며 숙성시킨다.
특징은 색깔이 노랗고 맑게 빛나며, 일반 가정 된장의 떫은 맛이나 씁쓸한 맛, 역한 냄새가
일체 없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14:54(04h34m) 서운암 전경입니다.
▼ 14:56(04h36m) 서운암 입구에 있는 연못의 개구리연꽃입니다.
▼ 15:06(04h46m) 서운암 사찰명석을 만납니다. 샛길로 이동했기 때문에 이제야 볼수 있습니다.
▼ 15:06(04h46m) '아카시아꽃'입니다.
▼ 15:12(04h52m) 다음 암자로는 열번째 암자인 수도암입니다.
▼ 15:14(04h54m) 수도암 입구에 도착합니다.
▼ 15:16(04h56m) 수도암 전경입니다. 이날 순례길의 암자중 제일 적은 것 같았습니다.
(수도암(修닦을수,道길도,庵암자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비탈길을 약 200m 올라가면 있다.
1372년(고려 공민왕 21) 이관대사(爾觀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정신대사(定信大師)가
중건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중수, 증축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경내에는 법당과 요사채,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 규모는 모두 합하여 7칸 정도이다.
법당에는 월화대사(月華大師)가 쓴 ‘수도암(修道庵)’ 현판이 걸려 있고 외벽에는 달마대사가
벽을 마주한 채 참선하고 있는 모습과 다양한 꽃들이 그려져 있다.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한가운데는 작은 정원, 한쪽에는 텃밭이 조성되어 있다.
산내에서 가장 작은 암자이자, 조용하고 한적한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도암 [修道庵] (두산백과)
▼ 15:16(04h56m) 수도암 산신각 전경입니다.
▼ 15:16(04h56m) 수도암 뜰앞에 있는 '앵두나무'입니다.
▼ 15:19(04h59m) 수도암에서 취운암 가는 길목의 잘생긴 노송 2그루가 눈길을 끕니다.
▼ 15:23(05h03m) 취운암 뒷편의 산신각 같은 건물이......
▼ 15:25(05h05m) 11번째 암자인 취운암(翠물총새취,雲구름운,庵암자암)의 취운전 전경입니다.
(취운암?)
통도사 내의 부속 암자들 중 하나이다. 보타암을 지나 200m 정도 되는 거리에 영축총림
율원과 붙어 있다.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재정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통도사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암자 중 하나이다.
1644년(인조 22) 우운당 진희대사가 통도사 본사의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6년 뒤인 1650년(효종 1)에 취운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1795년(정조 19) 낙운당(洛雲堂) 지일(智日)대사가 중건하였고,
1969년 승려 태일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수행과 포교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일반 불자들의 대중 선원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취운암의 건물로는 주 법당을 중심으로 2층 강당과 요사, 종각 등이 있으며, 법당 뒤편으로
산신각이 있다. 건물은 모두 6동 128칸에 이르는 큰 규모이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15:25(05h05m) '할미꽃씨방'입니다.
▼ 15:26(05h06m) 취운암 또다른 건물 전경입니다.
▼ 15:27(05h07m) 취운암이란 현판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 15:27(05h07m) '매발톱꽃'입니다.
(매발톱꽃?)
자생화 중 매발톱꽃만큼 화단, 공원, 길가에 많이 식재되는 종도 드물다.
그만큼 우리랑 친숙하다. 꽃말을 보면 재미있다.
얼마나 바람끼가 심하면 애인으로부터 버림 받을까?. 이 식물의 수정양식을 보면 그럴만하다.
자기꽃가루보다는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훨씬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 나름대로 전략이 있기야 하겠지만 사람 잣대로 보면 비난받을만 하다.
매발톱꽃은 꽃이 크고 특이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꽃색과 모양이 다양하며 최근에는 원예종도 나와 있어 매발톱꽃 만으로도 정원을 다양하게
꾸며볼 수 있다.
한번 잘 심어두면 씨앗이 떨어져 나와 금방 포기를 이루므로 쉽게 화단을 조성할 수 있다.
종류가 다양하니 정원에 다양한 종을 심어 꽃을 피운 뒤 거기서 씨앗을 받아 뿌려가면서 괜찮은
것을 선발하여 영양번식으로 늘려가면 품종으로 등록도 할수 있어 취미육종 재료로도 훌륭하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류이다.
세계적으로 약 70여 종이 분포하는데, 주로 지구 북반구의 숲이나 산악지역에서 볕이 잘 드는
곳에 난다.
우리나라에도 매발톱꽃, 꽃색이 하늘색인 하늘매발톱꽃, 노란색인 노랑매발톱꽃(백두산 자생)
등 몇 가지가 자생하고 있다.
▼ 15:28(05h08m) 취운암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곳에서 취운암 사찰명석을 만납니다.
▼ 15:28(05h08m) 취운암에 보살선원이 같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15:31(05h11m) 마지막 12번째 암자인 보타암입니다.
(보타암(寶보배보,陀험할타,庵암자암)?)
보타암은 통도사 경내 솔나무 주차장을 지나 나타나는 첫번째 암자이다.
일주문 밖에서 삼성 반월교를 건너 약 300미터 되는 지점에 있으며,
통도사의 부속 암자 중 가장 최근에 세워진 건물이다.
또한 통도사 내에서 유일하게 비구니가 주석하며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1927년 승려 영춘이 창건하였다.
영춘은 통도사 부도전 뒤편에 있던 동운암에서 주석하다가, 경봉 선사의 권유로
현재의 암자로 거처를 옮겨와 보타암(寶陀唵)이라 하였다.
가람 배치는 법당으로 대웅전과 약사전이 있고, 그 외 요사 등 9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작은 둔덕 위에 건립되었는데, 자연석을 쌓아올린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내부의 불단 위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불상의 뒷면에는 「석가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약사전은 대웅전의 왼쪽에 있는 불전으로, 예전에 칠성전이 있던 자리이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의 맞배집이다. 칠성전 내부의 탱화가 도난당한 뒤
「약사후불탱화」를 새로 봉안하면서 전각 명칭도 약사전으로 바꾸었다.
내부에는 약사여래불과 1986년에 조성한 「산신탱」 및 「독성탱」을 봉안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15:31(05h11m) 보타암 입구 전경입니다.
▼ 15:32(05h12m) 보타암 주전 전경입니다.
▼ 15:32(05h12m) 보타암 약사전 전경입니다.
(약사전(藥약약,師스승사,殿대궐전)?)
약사전(藥師殿) · 유리광전(琉璃光殿)은 보통 동향인데,
그것은 약사여래의 정토가 동쪽으로 무수한 불국토를 지나서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모신다.
약사여래는 보살이었을 때 열두 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했는데,
그 가운데 제6원은 ‘몸이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중생은 모두 단정한 몸을 얻고 모든 병이
소멸되기를 원한다’,
제7원은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중생은 질병이 소멸되고 온갖 재물을 얻어 몸과 마음이
안락하기를 원한다’, 제10원은 ‘중생이 온갖 고뇌에 시달려도 나의 복덕과 힘으로 모든
근심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이다.
그 열두 가지 서원을 성취해서 세운 정토가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이다.
약사여래는 그곳에서 중생들의 질병을 치료한다고 한다.
약사여래의 인계는, 오른손은 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불과 비슷하고 왼손에는 약병을 들고 있다.
후불탱화는 그 여래의 정토를 묘사한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東方藥師琉璃光會上圖)이다.
▼ 15:32(05h12m) '초롱꽃'입니다.
(초롱꽃?)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한다.
중북부지방에 분포하며 산지나 들에서 자란다.
옆으로 자라는 포복지에서 나온 원줄기는 높이 40~80cm 정도이고 전체에 퍼진 털이 있다.
모여 나는 근생엽은 잎자루가 길고 난상 심장형이다.
어긋나는 경생엽은 길이 4~8cm, 너비 1~4cm 정도의 삼각상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하며 둔한 톱니가 있다.
6~8월에 피는 종 같은 꽃은 백색 또는 연한 황색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다.
‘섬초롱꽃’과 달리 꽃이 흰색 또는 담홍자색으로 짙은 반점이 있다.
‘자주꽃방망이’에 비해 꽃은 종 모양으로 드리우고 짧은 소화경이 있으며 포는 꽃의
기부를 싸지 않는다. 어린순은 나물로 식용하며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봄에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거나 말려 먹는다.
쌈으로 먹기도 하고 데쳐서 무쳐 먹는다. 꽃은 살짝 데쳐서 초무침으로 먹는다.
▼ 15:37(05h17m) 통도사 경내로 접어들었습니다.
▼ 15:38(05h18m) 통도사내 전경입니다.
▼ 15:39(05h19m) 통도사 일주문 통과합니다.
▼ 15:40(05h20m) 통도사 경내 안내도입니다.
31번 금강계단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곳입니다.
▼ 15:40(05h20m) 하천을 가르는 멋진 구름다리 전경입니다.
▼ 15:41(05h21m) 성보박물관 전경입니다.
(성보박물관?)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대지 면적 약 16,500㎡, 건물 면적 약 4,290㎡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이다.
1층에는 통도사역사실, 기증유물실(월저기념실), 안내실, 아트숍, 괘불전이 있고,
2층에는 불교회화실, 기획전시실, 시청각교육실, 서점 등이 있다.
그외에 학예연구실, 4개의 유물수장고와 자료실, 보존관리실, 문화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2008년 현재 소장품은 총 3만여 점에 달하는 데, 대체로 사찰 전래 유품과 불도들의
기증품 그리고 약간의 수집품으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통도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조각류, 금속 및 목조공예품, 서화류가 1만여 점이고,
기증품으로 승려 혜각(慧覺) 서화 400여 점, 월저 김진조의 수집품 270여 점, 승려 석정(石鼎)
고승선묵 200여 점, 승려 우일 불화초본 260여 점, 승려 정우 고서 400여 점, 승려 범하 도자기
및 고문서 등을 합해 총 2만여 점이다.
소장 유물 가운데는 국보 1점과 보물 8점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32점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통도사 은입사동제향로(通度寺銀入絲銅製香爐),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
(文殊師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
「통도사 영산전 팔상탱」,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탱」을 비롯해 국내 박물관으로는
유일하게 15m에 달하는 대형 괘불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대가 중앙 홀에 마련되어 있어
정기적인 괘불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유물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600여 점에 달하는 불교 회화를
꼽을 수 있다.
이들 불화는 밑그림인 초본을 비롯하여 소형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에서 초대형 괘불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며, 이는 국내 박물관뿐만 아니라 세계 박물관을 통틀어 자료가
가장 풍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15:41(05h21m) 부도전 옆에 있는 영축총림(靈영묘할영,鷲수리축,叢모일총,林수풀림)
산문입니다.
▼ 15:43(05h23m) 통도사 부도원 설명입니다.
(부도원?)
큰 절에 가면 양지바른 언덕에 비석과 부도들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박물관 편에서도 살펴보았듯 부도에는 선사의 사리와 유골이 봉안된다.
부도는 ‘붓다(Buddha)’에서 유래한 말이다.
넓게 보면 탑과 불상도 부처를 상징하므로 부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에는 스님의
묘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부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으며, 여기에 따르면 627~649년경
원광법사의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최고의 부도는 국보 제104호로 지정된 전(傳)흥법사염거화상탑으로
통일신라 문성왕 6년(844년)에 세워진 것이다.
불교의 장례 방식은 화장이며, 이때 나온 유골과 사리를 안치하기 위하여 부도는 필연적
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말기 선종의 발달과 함께 부도의 건립이 성행하였다.
선사의 죽음은 부처의 죽음과 다름이 없기에 불탑이 있듯 선사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부도도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부도가 등장하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 선을 처음 전한 이는 도의선사이다.
784년 당나라에서 마조도일의 문하인 서당지장으로부터 선법을 전수받고 귀국하여
조사선을 전하였다.
그러나 당시 불교계에서 조사선을 수용하지 않으므로 설악산 진전사에 은거하였고,
선법을 염거에게 전하여 법통을 잇게 하였다고 전한다.
부도의 수가 많다는 것은 그 절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을 배출했다는 증거이다.
통도사는 부도원을 별도로 꾸며놓았을 정도로 부도가 많다.
여기에는 대웅전을 창건한 진희대사 등 역대 선사 50분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
본래 산 내 각처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에 모은 것이다.
부도들을 모으면서 사리기는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였고, 원래의 사리기들은 현재 통도사
내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부도 옆에 있는 비석은 부도의 주인공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그 절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네이버 지식백과] 부도원
▼ 15:43(05h23m) 부도원 전경입니다.
▼ 15:43(05h23m) 통도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통도사 안내입니다.
▼ 15:43(05h23m) 통도사 산문을 지나면서 12암자 순례를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