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꼭 치루어야 할 행사가 시산제이다.
시산제는 한 해 산방의 안전산행 및 회원과 가족의 안전과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이다.
통상 음력 1월 중에 행사를 해야 제대로 된 행사인데 이번에는 일정상 1월을 넘기고
2월 첫주에 시산제를 거행하였다.
며칠전부터 기상청 예보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로 발표되어 시산제 전날까지
노심초사했지만 다행스럽게 시산제 당일은 비가 소강상태로 시산제가 끝나고
뒷풀이 운동시간까지 조금 흐린상태로 비는 없었다.
이는 산악회의 2016년 무사안전 산행의 좋은징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장소는 회원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금정산 동문부근.....
매년 이곳에서 한지도 벌써 몇 년이 되어간다.
올해는 편하게 산행후 적당하게 시산제를 지내고 즐거운 뒷풀이를 위해 고민했지만,
결국 산행이 시산제 날 비해서는 거리가 길고 힘든 산행이 되었다.
(산행개요)
1. 산행날짜 : 2016.03.05(토) 날씨 : 흐리고 오후늦게 비
2. 산행시간 : 09:35 ~ 11:58(2시간23분)
3. 이동, 도상거리 : 5.99km, 5.78km
4. 평균속도 : 2.55km/h
5. 고도 :578m ~ 22m(556m) : 최고봉인 대륙봉의 높이가 520m감안 gps오차 참조
6.오르막 거리, 속도 : 3.08km, 2.17km/h
7.내리막 거리, 속도 : 2.91km, 3.16km/h
8.산행코스
온천지하철 역 1번출구 ~ 망미루 ~ 금강공원 ~ 금강공원케이블카 상부주차장 ~
금정산성2망루 ~ 대륙봉 ~ 산성고개 ~ 동문
▼ 시산제 산행한 궤적입니다. 궤적중 좌측의 하늘색 코스는 낙동정맥을 나타낸 산길입니다.
▼ 시산제 산행코스입니다.
도심을 벗어나 분홍색궤적은 금강공원의 케이블카아랫길이고 노란분깃점쪽이 케이블카 상부역입니다.
▼ 산행궤적을 등고선에 나타낸 지도입니다.
▼ 산행궤적을 고도표에 나타낸 도표입니다. 제일 높은 곳이 대륙봉(520m)입니다.
▼ 09:35(00h00m) 당초 09시에 온천장역 1번 출구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5분 늦게
산행을 시작합니다.
▼ 09:37(00h02m) 지하철역 승객들과 함께 어울려 출구로 나와 우리는 산행코스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 09:39(00h04m) 온천장역에서 동래역방향으로 약 100m 이동후 건널목을 전너갑니다.
▼ 09:41(00h06m) 동래시장 부근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 09:44(00h09m) 동래온천 물을 이용한 노천족탕 부근을 이동하고 있습니다.
(노천족탕 개요)
* 국내 가장 오래된 온천, 동래온천 노천족탕 *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의 하나로 수온은 63℃이며, 약칼리성 식염천으로 목욕 외
온천수를 마시면 만성 위장병 및 위장근약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류마티스성 질환, 운동장애, 신경통, 관절염, 피로회복, 혈액순환 장애에도 효과가
있는 건강온천으로 알려져 있다.
족탕의 효능으로는 인체 12경락의 중요한 혈들이 밀집한 '제 2의 심장'인 발과 발목 주변의
근육과 관절을 뜨거운 물로 자극, 전신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특히 발의 피로감, 고혈압, 저혈압, 권태감, 생리불순, 요통, 관절염 등의 예방.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족탕수온 - 40℃이상 온천수 10톤 및 용머리 조형물에서 온천수 뿜어져 나옴
* 규모 - 138㎡, 50∼60명 동시수용가능
* 주변현황 - 허심청, 녹천탕, 천일탕 등 동래온천 이용 대형 목욕업소가 위치해 있으며
온천 상징물인 온정개건비가 인접해 있음.
* 족탕 이용법 *
1) 먼저 세족탕에서 발을 깨끗이 씻는다.
2) 족탕에 복사뼈 위 8㎝(또는 손가락 4마디 정도)가 잠기도록 발을 담근다.
3) 편안한 마음으로 20분정도 족욕을 한다.
4) 수건으로 발을 닦고 마무리 한다.(수건은 족탕 내 자판기 설치 운영)
▼ 09:46(00h11m) 앞에 보이는 망미루터를 지나 금강공원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09:47(00h12m) 망미루터 부근을 지나갑니다.
▼ 09:48(00h13m) 망미루터 부근에는 묘위정사라는 사찰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 일제에 의해 옮겨졌던 망미루는 다시 원래의 자리부근으로 옮겨지고 이제는 표식만이 남았습니다.
(망미루에 관한 개략)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무렵 일본인이 개인 정원을 꾸미기 위해 강제로 금강원(지금의 금강공원)
입구로 옮겼던 ‘망미루’가 80여 년 만에 동래부 동헌으로 옮겨진다.
부산 동래구는 조선시대 동래부 동헌 앞 문루로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옮겨졌던 ‘망미루’를 원래
자리 주변으로 이전하고자 2014.04.10일 오후 3시 온천1동 금강공원 입구 망미루 앞에서
‘망미루 해체 고유례’ 및 도로 정비 기공식을 갖는다고 8일 밝혔다.
이날 고유례는 개제 선언을 시작으로 삼상향, 헌작, 분향 등 고유제와 고유사에 이어 망미루 이전에
관한 역사적인 설명, 도로 정비 설명 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4호인 망미루는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이 동래부 청사인 동헌
앞에 세운 문루였으나,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리계획에 따라 현 금강공원 입구로 옮겨졌다.
앞면에는 ‘동래도호아문(東萊都護衙門)’, 뒷면에는 ‘망미루(望美樓)’라는 큰 편액이 붙어 있다.
동래구는 망미루 이전과 함께 동래부 동헌의 바깥 대문이었던 독진대아문을 오는 6월께 동래부
동헌 경내로 옮길 계획이다.
또 이날 망미루로 인해 막혀 있던 차량통행로 정비 기공식도 함께 개최해 7월 말까지 온천장 중심지와
우장춘로를 곧바로 연결하는 도로를 정비하는 등 숙원이었던 교통 불편을 해소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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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래구는 망미루·독진대아문과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목적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현 금강공원
안으로 옮겨졌던 이섭교비와 내주축성비를 지난 2012년 9월 원래 자리와 그 주변으로 다시 옮긴 바 있다.
또 지난 3월에는 독경당, 찬주헌 등 동래부 동헌에 딸린 부속건물도 복원 완료하는 등 동래부 동헌 정비
사업에 박차를 가해 일제에 의해 왜곡된 부산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그 잔재를 청산해 시민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아시아 투데이 기사 옮김)
▼ 09:49(00h14m) 망미루터를 지나 금강공원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09:54(00h19m) 부산시민의 휴식처인 금강공원(金剛公園)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금강공원 개략)
면적 155만 6870㎡이다. 부산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801m) 능선의 남쪽 끝에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원이다.
금정산은 우거진 백년노송과 기암괴석 및 깎아 세운 듯한 절벽 등 산세의 수려함이 마치
작은 금강산과 같다 하여 신라 때부터 소금강이라 불렸으며 공원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1940년부터 금강원이라 불리다가 1965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노송과 자연석의 비율이 비슷할 정도로 자연석이 많으며,
자연석 사이에는 사스레피나무·산철쭉·진달래·때죽나무·붉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다.
산중턱 계곡에는 산벚나무·서어나무·굴피나무·참나무 등이 노송에 섞여 자라고 있다.
공원 안에는 부산민속예술관, 세계해양생물전시관, 동물원(2001년 폐쇄됨), 식물원,
각종 놀이시설, 체육공원 등이 있으며,
특히 부산민속예술관에서는 동래야류(중요무형문화재 18)와 동래지신밟기(부산무형문화재 4),
동래학춤(부산무형문화재 3) 등의 전통 민속놀이를 가르치고 공연도 한다.
망미루(부산유형문화재 4), 독진대아문(부산유형문화재 5), 임진동래의총(부산기념물 13),
▼ 09:55(00h20m) 금강공원 정문에서 산행 참석자들만 간단한 기념촬영을 합니다.
▼ 09:52(00h20m) 정문을 지나서 케이블카 라인 아래쪽길을 이용해서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 09:57(00h22m) 소나무 숲길사이로 아스팔트길이 이어집니다.
▼ 09:57(00h22m) 이동 중에 시비를 만납니다.
(최계락 시인에 대해서...)
경상남도 진양 출신. 1949년 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국문과를 중퇴하였다.
『경남일보』·『전선문학(戰線文學)』·『소년세계』·『희망』 등의 편집기자를 거쳐,
『국제신보』 문화부장·정경부장·부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7년 9월 『소학생』에 동시 「수양버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어린이나라』·『소년세계』 등에서 본격적으로 아동문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2년에는 『문예』에 시 「애가(哀歌)」로 시단에도 데뷔하여 시와 동시를 함께 발표하였다.
초기 1950년대 통속의 팽배 속에 혼란과 침체에 빠졌던 동시단에 이종택(李鍾澤)·이종기(李鍾琦)와
더불어 시의 순수성 옹호에 힘썼다. 1960년대 본격 동시 형성의 가교 구실을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동시적 단순 구성을 일반 시의 창작에도 활용하여 소박하고 전원적인 시를 썼다.
1960년 후기 「엽서 한장에」(아동문학 12, 1965.7.)·「밤골목」(새벗, 1966.1.) 등의 동시에서는
전원적 감성이 도시화 또는 소시민화의 경향으로 변모하였다.
시어의 정선과 연마로써 한국적 순수서정을 노래한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된다.
동시 「꽃씨」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종래의 운율을 벗어나 순전한 내재율에 의하여 시를 처리하여
동시도 시라는 생각으로 동시의 운율과 이미지와 내용의 3요소가 적절히 조화되는 동시를 썼다.
그러면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의미구조를 지닌 작품을 썼고, 조용한 관조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또,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요적(謠的) 외형률을 완전히 배제하고 행의 구분이나 연의 처리,
언어의 배치나 호흡·생략·절제·도치 등의 다양한 시적 기교를 구사함으로써 보다 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1963년 부산시 문화상과 1967년 제3회 소천문학상(小泉文學賞) 등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꽃씨』(해동문화사, 1959)·『철둑길의 들꽃』(청운문화사, 1966)과 편저
『어린이 세계문학』(해동문화사, 전3권, 1958)이 있다. 이 밖에 역서 『알프스의 소녀』,
공저 『이인(二人)』·『동시인』이 있고, 현대 동시선집인 『창경원 동물들』을 엮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계락 [崔啓洛]
▼ 09:59(00h24m) 아스팔트가 끝나고 푹신한 흙길이 시작됩니다.
▼ 09:59(00h24m)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 좌측으로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이 보입니다.
▼ 10:00(00h25m) 공원 곳곳에 시민 휴식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10:01(00h26m) 우리가 이동한 길은 정문에서 배드민턴장을 거쳐 현위치에 이르렀습니다.
▼ 10:01(00h26m) 우리는 남문방향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 10:02(00h27m) 독진대아문터 위치 표시석을 지나갑니다.
(독진대아문이란?)
1972년에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동래부사청 동헌(東萊府使廳東軒) 앞 대문으로 망미루 뒤쪽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리에 따라 지금의 온천동 금강공원으로 옮겼다.
1636년(인조 14)에 동래부사 정양필(鄭良弼)이 동래부 동헌인 충신당(忠信堂)을 세울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1700년(숙종 26)에 다시 고친 뒤 지금의 건물은
1870년(고종 7)에 중건되었다.
이 대문에는 1655년(효종6)에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상좌병영(慶尙左兵營)의 지휘 아래 있던
경주진영(慶州鎭營)에서 독립하여 동래독진이 되었음을 알리는 '동래독진대아문
(東萊獨鎭大衙門)'이라는 현판이 정면의 문 위에 걸려 있다.
또 그 아래 양쪽 기둥 왼쪽에는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 : 동래부가 진변의
병마절제사의 영)', 오른쪽에는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司 : 대일외교에 일본 사신을
접대하는 관청)'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형적인 관아대문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홑처마에 지붕이 좌우 협간보다 높게 꾸며진
솟을삼문이다.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 밑에 홍살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외삼문으로 보여진다.
기둥 양쪽에 걸린 현판은 동래부가 맡은 국방과 외교의 임무를 나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 10:02(00h27m) 동래금강원이란 지명석입니다.
▼ 10:03(00h28m) 조그마한 비석이 있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10:03(00h28m) 금정산 숲속 둘레길 이정표입니다.
금정산 숲속 둘레길은 금정산 외곽을 두르는 산길로 전체 9구간에
약 52.87km의 산길을 잇습니다.
①구간 범어사 ~ 부산외국어대학교 3.17km
②구간 부산외국어대학교 ~ 부산대학교 5.84km
③구간 부산대학교 ~ 금강공원 1.90km
④구간 금강공원 ~ 석불사 5.70km
⑤구간 석불사 ~ 화명수목원 8.30km
⑥구간 화명수목원 ~ 인재개발원 6.76km
⑦구간 인재개발원 ~ 임도(양산) 1.88km
⑧구간 임도(양산) ~ 금륜산(양산) 11.8km
⑨구간 금륜산(양산) ~ 범어사 7.52km
▼ 10:03(00h28m) 금정산 숲길 이정표 옆에 있는 석불입니다. 동자승인지????
▼ 10:04(00h29m)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남문방향으로 올라가 동문쪽으로 이동합니다.
▼ 10:05(00h30m) 산행시작 30분만에 인공연못을 만납니다.
▼ 10:05(00h30m) 인공연못 주위로 조그마한 인공폭포도 조성해놓았습니다.
▼ 10:06(00h31m) 금강공원 황기 기념비라고하는데 일제 치욕의 유산입니다.
(금강공원 황기 기념비란?)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금강 공원의 내력을 알리기 위해 세운 비.
비문의 제목이 본래 ‘황기 이천육백년 기념비’라고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의 황기 2600년은 1940년을 가리킨다. ‘황기(皇紀)’는 일본 왕이 처음 황제로 즉위한 해를
기념하는 것으로, 그 첫해를 황기 1년으로 한다.
이날을 기념하여 일본인 히가시하라 가지로[東原嘉次郞]가 자신의 개인 정원이던 금강 공원을
국가에 기증하고 공원 내에 화강암으로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금강 공원 황기 기념비(金剛公園皇紀記念碑)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27-9번지
금강 공원 내 동래 독진 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과 이섭교 비(利涉橋碑)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거대한 자연석 화강암 너럭바위를 깎아서 글자를 새겨 넣었다.
비문에는 “금강원은 금정산 연봉 남쪽이 다하는 곳에 있다.
산을 등지고 골짜기를 끼고, 기이한 바위들이 쌓여 있으며 푸른 소나무가 울창해서 별천지에서
노니는 것과 같다.
소화(昭和) 6년[1931] 부산의 히가시하라 가지로가 가지고 있던 동산과 못을 개방하고
누각의 문을 설치해서 거금을 투자하여 경영이 자못 순조로웠다.
금년 황기 2600년을 맞이하여 전 동산을 본읍(本邑)에 기증하였다.
읍에서는 이 일을 칭찬하고 정리 확장하여, 산성 동남쪽 양문으로 통하는 회유(回遊)하는 숲길과
함께 온천 공원을 만들어 유람 관광의 명승지를 만들려고 한다.
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유래를 새겨서 이것을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하노라.
황기 2600년 소화 15년[1940] 11월 10일 동래 읍장 종칠위 산구 정[金剛園誌 園ハ 金井連峰南ニ
盡クル 處ニ 在リ 山ヲ 負ヒ 谷ヲ 抱キ 奇巖累積翠松鬱蒼別乾坤ニ 遊ブガ 如シ 昭和六年
釜山東原嘉次郞君ノ 有トナルヤ 苑池ヲ 開キ 樓門ヲ 設ケ 巨資ヲ 投シ 經營頗 ルカム 今年
皇紀二千六百年ニ 當リ 全園ヲ 擧ケチ 本邑ニ 寄贈ス 邑乃チ此ノ 擧ヲ 讚シ
整理擴張山城東南兩門ニ 通スル 回遊林道ヲ 倂ヤ以テ 溫泉公園ト 爲シ 遊覽觀光ノ
勝地タラシメントス 因テ 記念碑ヲ 建テ 由來ヲ 勒シ 之ヲ 後昆ニ 傳フ 云爾 皇紀 二千六百年
昭和 十五年 十一月 十日 東來邑長從七位 山口 精]이라고 적혀 있다.
황기 이천육백년 기념비’라는 제목이 쓰인 부분은 해방과 함께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분위기에 따라 시멘트로 메워졌으나, 대부분의 글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금강 공원 황기 기념비는 비록 일본인에 의해 세워진 것이지만,
일제 강점기 금강 공원의 내력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10:08(00h33m) 황기기념비에서부터는 좀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시작됩니다.
▼ 10:09(00h34m) 계속되는 오르막 계단이 이어집니다.
▼ 10:14(00h39m) 게곡을 건너갑니다. 지난밤 내린비로 계곡물이 조금불어있습니다.
▼ 10:14(00h39m) 계곡 곳곳에 조그마한 폭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 10:15(00h40m) 금심폭포라는 조그마한 폭포입니다.
▼ 10:15(00h40m) 전날 비가와서 그런지 물줄기가 가느다란 폭포가 형상되어 있습니다.
▼ 10:15(00h40m) 올라온 계곡길을 뒤돌아 본 전경입니다.
▼ 10:24(00h49m) 오르막이 계속 이어집니다.
▼ 10:26(00h51m) 오르막중에 조그마한 돌탑을 하나 만납니다.
▼ 10:28(00h53m) 전에 건물터로 보이는 돌축대 쌓인 곳을 오릅니다.
▼ 10:28(00h53m) 돌축대 우측으로 바라보니 인공적으로 돌을 다듬은 곳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 10:30(00h55m) 동문까지는 5.5km가 남았습니다. 시산제 시간이 1시간30분이 남았습니다.
▼ 10:31(00h56m) 진행방향 우측으로 큰바위에 조각해놓은 석불을 만납니다.
▼ 10:33(00h58m) 석불을 뒤로하고 남문방향으로 발길을 계속옮깁니다.
▼ 10:33(00h58m) 지나면서 바라본 석불쪽 전경입니다.
▼ 10:35(01h00m) 산행시작 1시간만에 케이블카 3번째 지주탑을 만납니다.
▼ 10:40(01h05m) 바위전망대에 도착합니다. 전망대에서 동래쪽 방향을 조망해봅니다.
▼ 10:44(01h09m) 바위 전망대를 뒤로하고 남문방향으로 이동을 계속합니다.
▼ 10:48(01h13m) 금강식물원으로 하산하는 삼거리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남문방향으로.....
▼ 10:49(01h14m) 하늘이 열리는가 싶었지만 운무로 조망은 꽝입니다.
바위 위의 천년송들이 우리를 반깁니다.
▼ 10:49(01h14m) 어느 산악회에서 붙였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많이 헷갈리게 합니다.
바위 위의 소나무인지라 오래된 건 인정가능한데..... 3곳의 소나무에 이런 팻말이 붙었습니다.
▼ 10:51(01h16m) 불경소리가 나서 벼랑 아래를 내려보니 약수정이라는 암자가 운무속에 보입니다.
▼ 10:51(01h16m) 약수정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케이블카 방향으로......
▼ 10:52(01h17m) 약수정 삼거리를 지나고 난뒤 깔끔하게 다듬어진 계단을 올라갑니다.
▼ 10:54(01h19m) 운무속 오르막이 계속 이어집니다.
▼ 10:56(01h21m) 오르막이 끝날 즈음에 만난 멋진 바윗돌입니다.
▼ 10:56(01h21m) 약수정사 입구 돌비석을 지나갑니다.
▼ 10:56(01h21m) 바로 앞에 금강공원 케이블카 상부 역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 10:57(01h22m) 금강공원 케이블카 상부역사에 있는 이정목입니다.
우측으로 동문방향으로 가야하지만 이정목 맞은편 휴정암 방향으로 길을 잡기로 합니다.
▼ 11:00(01h25m) 금강공원 케이블카 상부역사 휴게실에서 잠시 막걸리 한사발로 배를 채웁니다.
▼ 11:00(01h25m) 휴게실을 나와 남문으로 가는 임도를 버리고 휴정암쪽 샛길로 이동합니다.
▼ 11:02(01h27m) 휴정암을 거쳐 이동하기로 하고 이동을 시작합니다.
▼ 11:03(01h28m) 휴정암 직전 삼거리(→ 휴정암)에서 휴정암을 거치지 않고 지름길(↑)로 이동합니다.
▼ 11:08(01h33m) 지름길상에 있는 바위들의 군상입니다.
▼ 11:09(01h34m) 지름길도 푹신푹신한 오솔길로 이어집니다.
▼ 11:09(01h34m) 지름길 낮은봉우리 정상에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둔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여기서 시산제를.........
▼ 11:11(01h36m) 지름길을 이동하면 금정종주길과 만납니다.
▼ 11:11(01h36m) 금정종주길에서 약 100여m를 내려가면 휴정암에서 오는 길과 만나집니다.
▼ 11:11(01h36m) 휴정암에서 나오는 4거리입니다.
진행방향에서 ← 남문방향,↑동문방향, → 휴정암방향입니다. 우리는 동문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11:11(01h36m) 휴정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납니다.
▼ 11:18(01h43m) 금정산성 2망루 직전도로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 11:19(01h44m) 시산제 시작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2망루 뒷편 지름길로 이동합니다.
▼ 11:20(01h45m) 금정산성 2망루을 좌측에 두고 바깥쪽 지름길로 이동합니다.
▼ 11:26(01h51m) 2망루 지나 운무 가득한 산성 외곽을 이용 동문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11:27(01h52m) 호국사 삼거리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대륙봉 방향으로 길을 열어 갑니다.
▼ 11:38(02h03m) 동문 1.2km 전방 이정목을 지나고 있습니다.
▼ 11:38(02h03m) 오늘 산행중 최고봉인 대륙봉(510m)을 지나갑니다.
▼ 11:38(02h03m) 대륙봉에 있는 이정표입니다. 동문까지는 1.2km로 시산제 시간까지 빠듯합니다.
▼ 11:41(02h06m) 금정산성 동문 직전 데크계단을 내려갑니다.
▼ 11:47(02h12m) 금정산성 산성고개가 보입니다. 우측계단으로 올라가서 육교를 건너야 합니다.
▼ 11:47(02h12m) 산성고개에 있는 금정산에 대한 설명입니다.
▼ 11:48(02h13m) 갈맷길의 일부를 표시한 팻말입니다.
(갈맷길 소개)
갈맷길은 부산의 시조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부산광역시 등이 시민 공모를 통해 확정한 이름이다.
‘갈매’는 순수 우리말로 ‘깊은 바다’를 뜻하기도 한다.
부산광역시가 2009년부터 부산의 산과 강, 바닷가[해안]에 집중적으로 조성한 갈맷길은
슬로우 라이프를 실현하고 생태 도시로 나아가는 기초 인프라가 되고 있다.
부산광역시는 정부의 희망 근로 사업 예산을 지원 받아 2009년부터 집중적으로 걷기 좋은
탐방로[일명 그린웨이]를 조성하였다.
제주 올레길이 지핀 전국적인 길 걷기 바람도 한몫했다. 대부분은 기존 산책로 및 등산로를
활용했으나, 일부 덱을 깔거나 새로이 조성한 길도 있었다.
이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약 630억 원이었고, 개설된 탐방로는 전체 184개소, 총연장 863㎞이다.
이와 함께 2009년 말 길 걷기 전문 조직인 '(사)걷고싶은부산'이 태동하였다.
제주올레를 빼면 육지에서 가장 빠른 행보였다.
부산광역시는 2010년 유형별 갈맷길 21개 코스를 지정하였다.
해안 길 6곳[총길이 109㎞], 강변길 3곳[48.5㎞], 숲길 8곳[107㎞], 도심 길 4곳[37㎞]으로,
총연장이 302㎞에 이른다.
각 코스별로 시 종점을 정하고 안내판과 이정표를 세웠고,
부산이 추천하는 『걷고 싶은 갈맷길 21선』이란 안내 책자와 접이식 코스 안내도도 발간하였다.
해안 길: 가덕도 둘레길, 장림~다대포~두송 반도 해안 산책로, 암남 공원~절영도~태종대 길,
광안리~이기대~자성대 길, 해운대 삼포 길, 대변 해안 길
강변길: 낙동강 하구 길, 수영강~온천천 길, 회동 수원지 사색 길
숲길: 금정산 길, 승학산 능선 길, 장산 너덜 길, 백양산 길, 황령산 길, 일광 테마임도, 봉래산 둘레길,
엄광산 구봉산 길
도심 길: 동래 문화 유적지 탐방 길, 근대 역사의 길, 원도심 옛길, 부산포 흔적 길[네이버 지식백과]
▼ 11:48(02h13m) 산성고객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지나고 있습니다.
▼ 11:50(02h15m) 산성길을 따라 동문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11:53(02h18m) 동문 150m전방에 있는 큰바위입니다.
이곳에도 넓은 공터가 있어 시산제나 각종행사를 많이 합니다.
▼ 11:55(02h20m) 드디어 시산제 장소인 동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 11:55(02h20m) 금정산성 안쪽에서 바라본 동문 전경입니다.
▼ 11:56(02h21m) 산성 바깥쪽에서 바라본 금정산성 동문전경입니다.
(금정산성 동문)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 동쪽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성문.
금정산성 동문(金井山城東門)은 금정산성 동쪽 고갯마루 해발 415m의 높은 곳에 위치한다.
금정산성 동문은 1703년(숙종 29)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함께 설치되었는데,
1824년(순조 24) 동래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수리 축조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정산성 동문이 허물어져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부분적인 보수와 해체 보수가 이루어졌다.
금정산성 동문 진입로의 입구는 경사져 있어 성문보다 낮은 편이어서 사람이 말을 타고
통과하기가 어렵다.
또 앞쪽에서 휘어져 들어오게 되는 지형지세를 이용하였는데, 이는 성문이 직접 눈에 띄지
않게 방어력을 높여 적의 공격을 곧바로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규모는 육축 부분이 63.11㎡ 정도이고, 문루가 31.50㎡이며 폭은 610㎝이다.
성문의 폭은 300㎝, 홍예의 높이는 340㎝이다.
성문의 형식은 앞면과 뒷면 모두 홍예식(虹霓式)[문의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방식]으로 되어 있다.
성문 위에 성가퀴[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설치되어 있으나 총안(銃眼)
[성가퀴 또는 포사(砲舍) 안에서 적을 내다보고 총을 쏠 수 있게 한 구멍]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정면의 어간을 좌우 협간보다 두 배 정도 넓게 잡았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 문루로서 양성 바름[지붕마루의 수직면에 회사 반죽 또는 회반죽을
바른 것]으로 되어 있다.
고갯마루에 입지하므로 문의 좌·우측을 만곡(彎曲)되게 내어 쌓아 나팔 모양을 이루어
적대(敵臺)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 11:58(02h23m) 시산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 동문 바깥쪽 바로 앞에서 시산제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 진행자가 시산제 시작을 위해 회원들을 정리합니다.
▼ 시산제 시작과 동시에 산행대장의 선창에 의해 '산악인의 선서' 를 선서합니다.
▼ 산악회 회장의 인사가 있습니다.
▼ 본격적인 시산제의 첫 순서로 초에 불을 붙입니다.
▼ 시산제 중 '강신'을 하는 예식입니다.
'강신'은 산신을 부르는 의식으로 초, 향 등에 불을 켜고, 잔을 씻는 행위를 말합니다.
▼ 시산제 행사중 '참신'을 행하는 예식입니다.
'참신'은 다 같이 신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전체 3배를 올립니다.
▼ 시산제 행사중 '초헌'을 행하는 예식으로 '부회장님'이 예를 올리고 있습니다.
'초헌'이란 산신에게 첫 잔을 올리는 예식입니다.
'산행대장님'이 독축(축문을 읽는 행위)하고 있습니다.
▼ '초헌' 예식을 마치고 절값을......
▼ 시산제 행사중 '아헌'을 행하는 예식으로 예를 드리고 계십니다.
'아헌'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순서입니다.
▼ 시산제 행사중 '종헌'을 행하는 예식으로 '산행위원'께서 참여하십니다.
'종헌'은 시산제의 막바지 예로 마지막 잔을 올리는 예 입니다.
▼ 지금부터는 '헌작'순서로 3잔의 잔을 올리고 난 뒤 의식에 참석했던 분들이
돌아가면서 잔을 올리는 순서입니다. 그리고는 절값을 돼지에게로.....
통상 연장자부터 시작하지만 하고 싶은 분들이 먼저 나와서 하는 걸로 합니다.
▼ 지금부터는 음복시간입니다.
옹기종기 둘러 앉아 시산제후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 동문 앞의 목장승입니다.
▼ 시산제후 동문 앞에서 기념단체 사진 촬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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