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산/호남.가 ~ 사

2016.04.09 진안 마이산

redstone5 2016. 4. 11. 18:41



   마이산은 산행을 다니기 오래 전에,

   딸 아들이 어릴 때 가족 여행지로 북부주차장으로 해서 탑사를 거쳐 다시 북부주차장으로

   고생스럽게 되돌아간 기억이 새롭다

   그 때 애들을 목에 목마태우고 업고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고 땀깨나 흘렸던 생각을 하니

   참 미련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후에도 산행으로, 혹은 친구들과 여행으로도 몇 번 찾았고, 이번에 오른 암마이봉이 그 때에는

   로프 하나 의지해서 올랐던 기억도 까마득하지만 지금은 데크계단으로 까끔히 설치되어 있어서

   어지간하면 누구나가 오를 수 있어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2011년 합미산성으로해서 탕금봉, 나봉암, 봉두암을 거쳐 하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산불방지기간에 해당되어 합미산성쪽이 산행 통제라고 한다.

   부득이 잡은 산행 코스가 남부주차장을 들머리로 하는 산행코스를 잡을 수밖에 없어 다소

   아쉬움은 남는다.


   산행을 날머리에 있는 진안의 별미이 애저 갈비 꾸이를 안주로 시원한 동동주 한 잔에

   하루의 산행 피로를 말끔히 씻는다.


   (마이산 개요)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ㆍ마령면 지역에 걸쳐 있는 도립공원.

   총 면적 16.90㎢로, 1979년 10월 1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시대별로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 조선 태종 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노령산맥은 용의 몸, 진안고원은 용의 머리,

   이 산은 용의 뿔과 같다 하여 용각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단풍이 곱게 물들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도 쌓이지 않아 먹물에 찍은 붓끝과 같다 하여 문필봉

   등으로 불렀다.

  

   마이산은 진안고원에 있는데 두 개의 거대한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멀리서 보면

   흡사 쫑긋한 말의 귀처럼 생겼다.

   마이산은 암마이봉(686.0m)과 숫마이봉(679.9m)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산봉우리가 서 있는 모양이 말의 귀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이산 산봉과 유사한 역암으로 된 탑모양 또는 돔상의 지형은 마이산 동남쪽 약 2㎞ 지점에까지

   10여 개 소가 분포하는데, 관대봉, 마두봉, 관암봉, 비룡대, 나옹암 등의 봉우리들이다.

   마이산은 백악기의 마이산 역암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산체는 탑처럼 우뚝 솟은 모양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풍화 표면에는 수많은 타포니(tafoni) 지형이 발달하고 있는데 그 형상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가치도 매우 크다.

   특히 마이산 남사면의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잘 발달되어 있으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인 모양을 하고 있다.

   이들은 빙정의 쐐기작용에 의하여 생성된 것이며 그와 유사한

   한미산성-광대봉-나옹대-고금당-비룡대-봉두봉 등의 고봉들이 줄지어 있다.

   마이산 부근에는 천연기념물 제214호 진안 평지리의 아팝나무와 천연기념물 제380호 마이산의

   줄사철나무 군락지도 있어 식물상에서도 다종다양함을 보여준다.

  

   주변에는 은수사ㆍ탑사ㆍ금당사ㆍ천황문 등의 사적과 온풍혈(: 겨울에도 바람이 나오는 곳)

   등의 관광자원이 있다. 탑사에는 주위의 돌을 모아 쌓아 놓은 돌탑들이 마치 티베트 오지의 어떤

   사원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마이산에서 7천만 년 전에 서식했던 쏘가리를 닮은 민물고기와 조개류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 사이의 남쪽 계곡에는 돌로 쌓은 수십 기의 마이산 탑사가 있기도 하다.

   마이산에는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관광 등산코스로도 유명하다.

   또한 입구 3km 진입로에는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매년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중순경에

   남부주차장 입구에서 진안군 주관으로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산행개요)

   1. 산행날짜 : 2016.04.09(토)      날씨 : 맑음

   2. 산행시간 : 10시20분 ~ 16시03분(5시간42분)

   3. 이동, 도상거리 : 9.73km, 9.26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1.70km/h

                     휴식제외 : 2.01km/h

   5. 고도 : 732m ~ 326m(406m) - 암마이봉 최고 고도가 686m이므로 GPS오차 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3.75km, 1.71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5.69km, 2.15km/h

   8. 휴식횟수, 시간 : 2회, 52분 정도

   9. 산행코스

      도립공원 남부주차장 ~ 고금당 ~ 비룡대 ~ 삼거리 ~ 삿갓봉(되돌아 나와) ~ 북부주차장

      ~ 암마이봉(되돌아 나와) ~ 은수사 ~ 탑사 ~ 탑영제 ~ 남부주차장


   ▼ 마이산의 전체적인 개요입니다.

      좌측 하늘색 선은 호남정맥길이고, 바로 우측에는 금남정맥 그리고 맨우측에는 백두대간길입니다.


   ▼ 마이산의 산행궤적입니다. 위쪽 중식장소 위의 되돌아 나온곳이 삿갓봉 입니다. 


   ▼ 마이산 산행궤적의 등고선 지도입니다.


   ▼ 전체적으로 오르내리막이 심하지만 마지막 암마이봉의 급사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 도립공원 마이산 입구의 벚꽃은 아직 봉우리만 달려 있습니다. 진해보다는 약 10일 정도...


   ▼ 도립공원 주차 매표소에 도착합니다. 버스 주차료는 3000원!


   ▼ 이산묘 앞을 지나갑니다.

      (이산묘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사당.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에 있는 이산묘()는 면암() 최익현의 제자이자

      고종의 스승인 연재() 송병선의 제자들이 친친계()[송병선 제자 모임]와

      현현계()[최익현 제자 모임]를 구성하여 건립하였다.

      이산묘에는 회덕전(殿)·영광사()·영모사()·대한 광복 기념비 등이 있다.

      이산묘가 위치한 마이산은 1907년 정재 이석용이 조직한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의 집결지였으며,

      고천제()를 행하던 곳이다. 또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장군 시절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들렀다는 전설이 서려 있기도 하다.

      이산묘에는 단군, 태조 이성계, 세종, 고종을 비롯하여 을사년 이후 순국한 의사·열사 및 조선의

      명현들을 포함한 79위를 배향한 국내 최대의 사당이다.


      진안 사람들 중에는 연재 송병선과 면암 최익현을 존숭하고 스승으로 모신 사람이 많았다.

     송병선은 제자 이도복이 진안에 우거하자 여러 번 진안을 찾아 왔으며,

      최익현은 1906년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 있는 삼우당에 머물면서 진안을 순행하였다.

      이에 송병선과 최익현을 기리기 위해 친친계()와 현현계()를 결성하였다.

      1924년 친친계와 현현계 회원들은 마이산에서 두 계를 통합하고,

      송병선과 최익현을 기리는 사당을 짓기로 뜻을 모았다.

      1924년 12월 18일에 충청남도 공주 숙모전(殿)에서 개최된 경향 유회()에서

      진안 대표 오채열()의 제안으로 사당 설립을 추진하여 1925년 3월에 이산묘 건축을

      시작하였다.

      사당은 모두 4칸으로 서쪽은 인지재(), 동쪽은 여택헌()이라 하였다.

      또 고경각()을 건립하여 송병선과 최익현의 진영을 봉안하고, 그 역내를 통칭하여

      이산 정사라 하였다. 문은 치종문()이라 불렀으며, 회덕전(殿)을 건립하여 조선 태조

      고황제를 배향하고 같은 해 9월 12일 향사를 지냈다.

      이듬해 봄에 제사를 지내고자 했으나 일제의 탄압이 심하자 제일()을 바꾸고 제관()은

      10인으로 한정하여 몰래 제사를 지냈다. 그 뒤 일본의 방해와 파괴 공작으로 1927년에 훼철되었다.

      광복 후인 1947년 회덕전에 단군과 조선 태조, 세종대왕 등을 배향하고 명칭을

      이산 정사()에서 이산사()로 바꾸었다.

      이후 임금을 배향했기 때문에 이산묘라고 개칭하는 것이 옳다는 성균관 사림이 의견에 따라

      이산묘로 부르게 되었다.

       또한 회덕전 아래 동서 양쪽에 사우를 지어 동쪽은 영모사()라 이름하여 조선의 명유()

      40위를 배향하였고, 서쪽은 영광사()라 이름 하여 을사늑약 이후 순국한 선열 34위를

      배향하였다.

      1984년에 전라북도 전주시 건지산에 있던 고종 황제의 위판을 회덕전으로 이전 봉안하여 4위가

      되었으며, 2008년에는 영모사에 후산 이도복을 추가 배향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 10:16 버스에서 하차하여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암릉산행에 대비해서 스트레칭을 합니다.


   ▼ 10:16 주차장에서 바라본 우리가 진행해야할 나봉암(비룡대) 전경입니다.


   ▼ 10:16 들어오는 입구에 비해 벚꽃이 제법 꽃봉오리를 열었습니다.


   ▼ 10:16 마이산 금당사 산문 전경입니다.

      (금당사 개략)

      금당사()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이 그의 제자인 금취()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 또는 금동사()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 중국승 혜감()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 1320∼1376)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쇠락하였으나 16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 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에는 산신각, 1990년에는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지장전·삼성각·대방() 등이 있다.

      대웅전은 약 300여 년 전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나한전에 봉안된 6척의 목불좌상()은 동구나무로 만든 것으로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고, 너비 5m, 길이 9m의 괘불()은 보물 제126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도 대웅전 앞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탑 1기가 있는데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마이탑사()와 단군을 받드는 이산묘(이)가 있다.



   ▼ 10:20(00h00m) 스트레칭을 마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마이산 남부 안내소앞을 지나갑니다.


   ▼ 10:24(00h04m) 등산안내도입니다.

      산행코스는 현위치에서 고금당, 비룡대, 삿갓봉, 북부주차장, 암마이봉,

      은수사, 탑사, 탑영제, 금당사, 남부주차장을 연결하는 원점회귀산행입니다.


   ▼ 10:24(00h04m) 고금당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나아갑니다.


   ▼ 10:24(00h04m) 고금당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곡길 전경입니다.


   ▼ 10:29(00h09m) 조그마한 폭포인데 갈수기라서 더 폭포가 마른 것 같습니다.


   ▼ 10:29(00h09m) 고금당으로 오르는 계곡길이 가파른 경사길로 이어집니다.


   ▼ 10:31(00h11m) 산행 시작 11분만에 계곡길 삼거리를 만납니다.

      우리는 ↖고금당 방향으로 이동하지만, ↗방향은  나중에 비룡대 전에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 10:31(00h11m) 이 안내도상에는 위의 삼거리 이정표가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 10:33(00h13m) 고금당 방향으로 급한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 10:39(00h19m) 고금당 전경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 10:41(00h21m) 고금당 직전의 샘물인 것 같은데 식수로 사용 못하게 덮여있습니다.


   ▼ 10:41(00h21m) 고금당 오르는 경사가 꽤 급합니다.


   ▼ 10:42(00h22m) 고금당 나옹암의 석굴을 설명한 글입니다.


      (나옹선사에 대하여)

      고려 말의 뛰어난 고승 나옹선사(, 1320∼1376)의 이름은 혜근()이다.

      법호는 나옹, 호는 강월헌(). 선사의 나이 21세 때 문경 공덕산 묘적암()

      요연선사()께 찾아가 출가했다.

      전국의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양주 천보산 회암사() 석옹화상()

      회상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24세 때(1344년)이다. 선사는 원나라 연경으로 건너가 법원사에서 인도승 지공선사()

      의 지도를 받고 자선사 처림()의 법을 잇는다. 광활한 중국을 주유하고는 공민왕 7년(1358)

      에 귀국한다.

      오대산 상두암()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으나 공민왕과 태후의 청이 하도 곡진하여

      설법과 참선으로 후학 지도에 나선 곳이 황해도 신광사이다.

      이 무렵 중국의 홍건적은 쇠퇴해가던 고려를 향해 개경까지 침입해와 노략질을 일삼았고,

      공민왕은 한때 노략질을 견디다 못해 남쪽으로 천도한 일이 있을 지경이었다.

      나옹선사는 홍건적이 쳐들어와도 오직 설법과 참선 지도에만 전념하니 선사의 위엄에

      눌린 도적떼는 저도 모르게 부처님께 향까지 사르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대중들은 술렁였다. 홍건적은 내일 또다시 침입해올 것이니 어서 피하자는 것이었다.

      나옹선사는 혼자라도 절을 지키겠다 다짐하고 있는데 한 신인()이 꿈에 나타나 선사에게

      절을 지켜달라 이른다. 과연 선사가 있는 신광사엔 홍건적이 나타나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았다.

      홍건적의 난이 진압되자 왕은 선사에게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

      보제존자'()라는 긴 이름의 벼슬을

      내렸고, 왕은 또다시 불교계의 중흥을 부탁한다.

      이때 선사가 불교중흥의 터전으로 삼은 곳은 순천 송광사였고, 마지막 원력을 펼치는 장으로

      회암사를 찾았다.

      나옹선사의 지도력은 적극적인 현실참여, 실천하는 선으로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앉아서 참구하는 수행법을 멀리하고 편력의 도정에서 중생을 만나고 제도했다.

      염불은 곧 참선이라 하였으니 『가사문학총람』에 수록되어 있는 선사가 지은 참선곡은

      오늘까지 널리 수행의 지침으로 여겨진다.

      선사의 행법은 곧 혼침되어가던 고려 말 불교를 새롭게 고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로써 회암사는 지공·나옹에 의해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을 이루었을 만큼 위풍이

      당당하고 면모가 수려한 대찰이 된다. 이곳에 머문 승려 수만도 3천 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어쩌면 이땅의 중세불교사에서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대중교화에 힘썼던 분이 나옹이었던지

      모르겠다. 선사의 마지막 법회가 비장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혹여 정권과의 갈등이 있지는 않았을까.

      4년에 걸친 회암사 중창불사를 회향하는 낙성법회. 귀천을 따질 수 없는 부녀자들이

      회암사로 오는데 감당키 어려웠다.

      마침내 나라의 관리가 나와 산문을 닫고 왕래를 금하기에 이른다.

      임금은 나옹에게 떠날 것을 날벼락처럼 명령했다.

      선사의 나이 57세. 그 나이에 벌써 병이 들었던가.

      명령이 떨어진 그날을 못 넘기고 밀양 형원사로 가는 도중 겨우 신륵사에 당도해

      열반을 맞을 만큼 중병이 들었던가.

      여기서 우리는 역사 이래, 이런 경우에 흔히 사용되었던 타살()설을 가정해보게 된다.

      신륵사 법상() 위에 앉은 나옹선사가 일렀다.

       "너희들을 위하여 열반불사를 마치겠노라." 봉미산 봉우리엔 오색구름이 덮였고,

      선사를 태우고 가던 말은 먹기를 그치고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우왕 2년(1376년) 5월 15일, 스님이 된 지 37년 만이었다.

      나옹화상의 법맥은 무학대사가 이었고, 목은 이색은 위와 같은 일들을 비문에 적었다.

      나옹선사 비와 부도는 회암사터와 신륵사에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나옹선사


   ▼ 10:42(00h22m) 나옹암은 금빛 탑 아래 석굴로 꾸며져 있습니다.


   ▼ 10:42(00h22m) 나옹암 천상굴앞에 있는 현판입니다.


   ▼ 10:45(00h25m) 나옹암에서 바라본 금당사 전경입니다.


   ▼ 10:45(00h25m) 고금당에서 바라본 좌측 비룡대와 마이산 전경입니다.


   ▼ 10:46(00h26m) 고금당(古金堂) 전경입니다. 고금당은 금당사의 옛터에 자리잡아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 10:47(00h27m) 고금당 바로 뒷편에 있는 최근의 사리탑인데 주인은 잘모르겠습니다.


   ▼ 10:47(00h27m) 사리탑 옆으로 2개의 무덤이 있고 그곳을 지나 비룡대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10:48(00h28m) 고금당 뒷편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우리는 비룡대 방향으로....

      당초 계획했던 합미산성에서 출발하면 이곳으로  거쳐 지나갑니다.


   ▼ 10:49(00h29m) 고금당에서 사용했던 우물터 인 것 같습니다.

      몇 년전에 왔을 때에는 우물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되어있습니다.


   ▼ 10:57(00h37m) 고금당을 지나서 나옹암(비룡대) 전망대를 향해 길을 이어갑니다.


   ▼ 곳곳에 진달래도 만개해 있습니다.


   ▼ 10:59(00h39m) 고금당을 거치지 않고 남부주차장에서 바로 올라오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 10:59(00h39m) 어느 산꾼이 안내도에 빠진 샛길 부분을 그려넣은 것 같습니다.


   ▼ 11:00(00h40m) 삼거리를 지나 비룡대(나봉암)전망대 방향으로 암릉길을 이어갑니다.


   ▼ 11:02(00h42m) 낮은 암봉에서 바라본 우리가 올라온 뒤쪽 계곡길입니다.


   ▼ 11:06(00h46m) 멀리 비룡대(나봉암) 전망대를 앞두고 조그마한 철계단을 지나갑니다.


   ▼ 11:19(00h59m) 비룡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봉암 전경입니다.


   ▼ 11:19(00h59m) 비룡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계곡 속의 고금당과 멀리 광대봉이 조망됩니다.


   ▼ 11:19(00h59m) 비룡대에서 바라본 비룡대 올라오는 급경사계단과 나봉암 전경입니다.


   ▼ 11:23(01h03m) 산행 시작 한시간이 지난 시점에 비룡대에서 바라본 마이산 전경입니다.

      왼쪽 낮은 부분이 삿갓봉과 북부주차장, 봉두봉을 거쳐 탑사로 넘어가는 삼거리 입니다.


   ▼ 11:25(01h05m) 바룡대 전망대 아레에 서 있는 나봉암 정상석입니다.


   ▼ 11:26(01h06m) 비룡대 전망대 모습입니다.


   ▼ 11:26(01h06m) 비룡대 전망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입니다.


   ▼ 11:26(01h06m) 비룡대에서 바라본 삿갓봉 전경입니다. 삿갓봉 전 가운데 봉우리까지 가야합니다.



   ▼ 11:28(01h08m) 비룡대 하산하면서 바라본 마이산은 보는 장소에 따라 형태가 달라보입니다.


   ▼ 11:28(01h08m) 비룡대 전망대에서 하산하는 암릉길 전경입니다.


   ▼ 11:31(01h11m) 비룡대를 떠나 삿갓봉 가는 길에 만난 바위입니다.


   ▼ 11:32(01h12m) 금당사와 연결되는 삼거리(진행방향에서 ↑ 삿갓봉, ↘ 금당사)를 지납니다.



   ▼ 11:37(01h17m) 탑영제 삼거리 안부를 향해 내리막입니다. 


   ▼ 11:44(01h24m) 탑영제 삼거리 안부입니다.

      진행방향에서 ↗ 삿갓봉방향, ↘ 탑영제방향입니다. 우리는 삿갓봉 방향으로 .....


   ▼ 11:44(01h24m) 현위치에서 0.3km 이동후 우측으로 삿갓봉으로 올라야 합니다.


   ▼ 11:54(01h34m) 삿갓봉으로 향해 올라갑니다. 경사가 제법 급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인적이 그렇게 많지 않은 산길입니다.


   ▼ 11:56(01h36m) 삿갓봉 전위봉에서 바라본 멀리 광대봉 및 우측으로

      지나온 비룡대전망대가 조망됩니다. 앞 능선에 우리가 지나온 능선길이 빤히 보입니다.


   ▼ 11:56(01h36m) 삿갓봉 전위봉에서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 11:56(01h36m) 돌틈에 뿌리를 박고 피어 있는 진달래입니다.


   ▼ 11:58(01h38m) 삿갓봉 전위봉에서 바라본 좌측 숫마이봉과 우측 암마이봉 전경입니다.


   ▼ 11:58(01h38m) 마이봉을 전경으로 오붓한 한 때입니다.


   ▼ 11:59(01h39m) 삿갓봉 전위봉에서 바라본 마이산 전경입니다. 


   ▼ 12:01(01h41m) 전위봉에서 삿갓봉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12:02(01h42m) 이동중에 잠시 삿갓봉을 당겼습니다.


   ▼ 12:02(01h42m) 선등자가 있는 앞봉우리까지 등정이 가능합니다. 우리도 저곳까지 가야합니다.



   ▼ 12:12(01h52m) 삿갓봉에서 바라본 마이산 북부주차장 전경입니다.


   ▼ 12:12(01h52m) 동행했던 별바라기님이 삿갓봉에서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 12:12(01h52m) 삿갓봉에서 바라본 마이산입니다.


   ▼ 12:13(01h53m) 삿갓봉에서 뒤돌아 나오면서 바라본 정상 암봉 전경입니다.


   ▼ 12:25(02h05m) 산행 시작 2시간이 지날즈음 북부주차장 전 삼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이곳은 짧은 코스를 즐기는 분들에게 봉두봉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간길입니다.


   ▼ 12:25(02h05m)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진행방향에서 ↖ 북부주차장 방향, ↗ 봉두봉/탑사방향의 삼거리입니다.

      우리가 진행한 코스는 남부주차장 ~ 고금당 ~ 비룡대 ~ 현위치 ~ 삿갓봉 ~ 현위치까지입니다.


   ▼ 12:25(02h05m) 보이는 계단은 봉두봉 방향으로 가는 길 전경입니다.


   ▼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12:58(02h38m) 약 30분간의 점심시간을 가진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다음 목적지는 북부 주차장입니다.


   ▼ 13:04(02h44m) 점심식사후 북부주차장까지의 이동은 어렵지 않은 쉬운길로 이어집니다.


   ▼ 13:09(02h49m) 북부주차장 못미쳐 있는 이정표입니다.

      이 이정표는 북부주차장을 들머리로 하는 분들을 위해 설치한 이정표입니다. 


   ▼ 13:14(02h54m) 북부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을 기점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산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 13:15(02h55m) 북부주차장 상가 뒷편의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 13:19(02h59m) 차량 통행은 없지만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별로 재미없게 이어집니다.


   ▼ 도로가의 개나리를 당겨 찍어봤습니다.


   ▼ 13:22(03h02m) 산행 시작 3시간여만에 마이산 북부주차장 들머리에 있는 마이사를 지나갑니다.

      마이사를 창건하신 분이 비구니 혜일(比丘尼 慧日)스님이라 합니다.


   ▼ 13:22(03h02m) 마이사라는 조그마한 절을 지나갑니다.

      (마이사 개략)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도립 공원 마이산 북부의 입구에 위치한 대한 불교 태고종

      말사로 1965년 혜일()이 창건한 사찰이다.

      북부 마이산 입구에 위치하며 약 700m 정도에 천황문()과 화엄굴()이 있다.

      천황문은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의 오목 부분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고,

      화엄굴은 마이산 천황문에 위치하였는데 이승()이 이곳에서 화엄경을 얻었다는 데서

      이름하였다. 그리고 약 300여m 정도 걸으면 은수사()가 나오고, 다시 약 400~500m

      정도를 걸으면 마이산 탑사()가 나온다.

     

      본래 은수사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승려 혜일이 남다른 신성을 지니고 불교의 전파와

      사찰 창건을 염원하던 중 전라북도 전주시 선린사() 유복희()의 도움으로

      1965년 이곳에 목조 기와집 3칸을 짓고 마이사를 창건하였다.

      1975년에 대한 불교 화엄종에 등록하였다. 지금은 함석지붕의 인법당 1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찰 뒤편에 창건주의 사적을 기록한 사적비[1985년, 마이사 혜일의 공덕비]가 있다.

      최근에 지어진 사찰로서 문화재는 없다. 현재는 태고종 소속으로 2008년 태고종에 등록하였다.



   ▼ 13:23(03h03m) 마이사 앞에 설치된 진안군 부근의 가볼만 한 관광지 안내도입니다.


   ▼ 13:23(03h03m) 마이산에 대한 설명입니다.


   ▼ 13:24(03h04m) 마이사를 지나 콘크리트 포장길이 지속이어집니다.


   ▼ '산괴불주머니'입니다.

      산괴불주머니는 우리나라 각처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2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습기가 많은 반그늘에서 자란다.

      키는 약 40㎝이고, 잎은 길이가 10~15㎝이고 깃꼴겹잎으로 끝은 뾰족하다.

      꽃은 노란색으로 줄기를 따라 올라오며 달린다. 줄기 속은 비어 있다.

      열매는 7~8월경에 배 모양으로 달리고 종자는 검은색으로 작다.

      그해에 떨어진 종자는 가을에 발아를 하며, 겨울이 되면 잎이 고사하고 이듬해에

      꽃을 피운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인다.[네이버 지식백과] 산괴불주머니


   ▼ '개별꽃'입니다.


   ▼ '현호색'입니다.


   ▼ 13:26(03h06m) 콘크리트 포장길이 끝나고 데크계단이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콘크리트 계단길이 천황문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데크계단길로 바뀌었습니다.


   ▼ 13:33(03h13m) 천황문 100m 전방에 있는 약수터에 도착했습니다.


   ▼ 13:33(03h13m) 약수터 앞의 이정표입니다. 천황문 100m전방입니다.


   ▼ 13:34(03h14m) 천황문에서 바라본 지나온 약수터샘물 데크전경입니다.


   ▼ 13:36(03h16m) 천황문에 있는 각종 설명판입니다.


   ▼ 13:36(03h16m) 천황문에 설치된 현판입니다.

      우리는 남부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고금당, 비룡대, 성황당, 삿갓봉(되돌아나옴),

      북부주차장을 거쳐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의 천황문에 도착했습니다.




   ▼ 13:37(03h17m) 천황문에서 바라본 숫마이산 전경입니다.


   ▼ 13:38(03h18m) 천황문에서 암마이산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입니다.


   ▼ 13:39(03h19m) 암마이산 오르면서 바라본 숫마이봉의 화엄굴 방향 전경입니다.


   ▼ 13:42(03h22m) 데크계단을 이용해서 암마이산으로 이동합니다.

      전에는 데크계단없이 흙길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깔끔히 데크로 단장되어 있습니다.

      암마이산은 2014년 10월 까지는 휴식년제로 산행이 불가했지만 2014년 10월11일부터 데크계단

      설치와 함께산행이 가능해졌습니다.


   ▼ 13:44(03h24m) 암마이산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들머리입니다.

      데크계단이 설치되기 전에는 이곳부터 로프를 이용해서 올라야 했기 때문에

      노약자나 로프를 이용하기 어려운 산꾼들은 오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 13:47(03h27m)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므로 일방통행길을 만들었습니다.


   ▼ 13:52(03h32m) 암마이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부주차장과 사양제 저수지,

      그리고 진안군청 소재지 전경입니다.


   ▼ 13:53(03h33m) 암마이봉의 숫마이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숫마이봉과 화엄굴 전경입니다.

      왜 숫마이봉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전망대입니다.


   ▼ 14:05(03h45m) 암마이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 14:13(03h53m) 암마이봉 정상의 전경입니다.

 

   ▼ 14:13(03h53m) 암마이봉 정상을 떠나 하산을 시작합니다. 이곳은 숫마이봉 전망대 부근입니다.


   ▼ 14:19(03h59m) 산행 시작 약 4시간 만에 암마이봉 정상에서 하산하고 있습니다.

      이용하는 데크계단이 완전히 급경사입니다.  이런 경사를 전에는 로프에 의지해서 오르내렸으니....


   ▼ 14:30(04h10m) 암마이봉을 완전히 내려와 산행 통제소에 도착합니다.


   ▼ 14:32(04h12m) 산행 통제소를 뒤로하고 천황문쪽으로 뒤돌아 나갑니다.


   ▼ 14:41(04h21m) 천황문에서 화엄굴 올라가는 입구를 확인하고, 전에 가본 적이 있어서

      탐방은 포기합니다.


   ▼ 14:42(04h22m) 천황문에 있는 마이산 유래 설명문입니다.


   ▼ 14:42(04h22m) 천황문을 지나 은수사 방향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갑니다.


   ▼ 14:46(04h26m) 은수사 직전에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곳은 북부주차장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미 남부주차장에서 표를 구입했기 때문에...


   ▼ 14:47(04h27m) 은수사 전경입니다.

      무량광전 앞에 한 때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법고가 보입니다.

      (은수사)

      은수사는 현재 태고종단 소속인데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사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 주지스님에 의하면 ""은 5획으로 오행, ""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 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바햐흐로 대가림으로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이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

      (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이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라 한다.

      돌배나무들 중에서 특히, 맛좋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청실배나무. 개량배에 밀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청실배나무는 이성계가 배를 먹고 뱉은 씨앗이 자라서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청실배나무 아래 약수터에는 정화수를 떠놓은 스탠그릇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에 정화수를 떠놓으면 겨울에는 정화수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얼어붙는 역()고드름이

      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마이산 계곡이 협곡이라 바람이 솟구치면서 일어나는 마이산의 진풍경이기도 하다.[네이버 지식백과]


   ▼ 14:47(04h27m) 은수사에는 대적광전과 무량광전이 있습니다. 

      무량광전은 극락전, 무량수전, 아미타전과 같은 뜻이라고 하네요.


   ▼ 14:47(04h27m) 천년기념물이라 하는데 전체를 찍지는 못하고 아래 부분 사진만....


   ▼ 14:47(04h27m) 청실배꽃입니다.


   ▼ 14:47(04h27m) 이성계와 은수사에 얽힌 유래를 써놓은 글입니다.



   ▼ 14:49(04h29m) 섬진강 발원지라고 표식이 있는데 다수의 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섬진강 발원지에 대하여...)

      이중환은 섬진강의 발원지를 마이산으로 보았는데, 우리나라의 4대 강 가운데 환경오염이

      가장 덜하고 아름다우면서 슬픈 사연이 많기로 소문난 섬진강의 발원지를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마이산이나 팔공산으로 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섬진강의 발원지를 중대산 또는 마이산으로 보았고,

       『택리지』에도 역시 마이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광양의 섬진강은 근원이 진안의 중대(中臺) 마이산에서 나와서 합하여 임실의 오원천(烏原川)이

      되고, 서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 운암(雲巖) 가단(可端)을 지나서 태인의 운주산 물과

      합하여 순창의 적성진이 되는데 이것을 ‘화연(花淵)’이라고도 한다.

      이 물은 또 저탄(猪灘)이 되고, 또 동쪽으로 흘러서 남원의 연탄(淵灘)이 되며, 또 순자진(鶉子津)이

      된다.

      다시 옥과에 이르러 방제천(方悌川)이 되며, 곡성에 들어가서 압록진(鴨綠津)이 되고,

      구례에 이르러 잔수진(潺水津)과 합하였다. 잔수진은 근원이 동복(同福) 서석(瑞石) 동쪽에서

      나와 현(縣) 남쪽 달천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보성 북쪽에 이르러서 죽천이 되는데,

      이것을 또 정자천(亭子川)이라고도 한다.

      다시 동북으로 흘러 순천의 낙수진(洛水津)이 되며, 잔수진에 이르러 순자강과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화개 서쪽 경계에 이르러 용왕연(龍王淵)이 되는데, 여기는 조수가 들어오는 곳이다.

      또 광양 남쪽 60리에 이르러 섬진강이 되는데, 그 동쪽 언덕은 곧 하동의 악양(岳陽)으로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 때에는 이 물이 배류 3대 강(輩流三大江, 중앙을 등지고 흐르는 강. 즉 낙동강, 금강, 섬진강)의

      하나라 하였고, 이름을 두치강(斗峙江)이라 하였다.

      1918년 일제가 만든 『조선지지자료()』는 섬진강이 전북 진안군 우곡리 부귀산에서

      발원하여 경남 하동 갈도까지 본류 길이가 212.3킬로미터라고 기록했는데,

      부귀산은 진안읍 북서쪽에 있는 정곡리 뒷산이다.

      이후 건설부에서 만든 『하천편람(便)』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전국하천조사서』도

      이 발원지 개념을 그대로 쓰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 14:50(04h30m) 은수사를 지나오면서 뒤돌아 본 전경입니다.


   ▼ 14:49(04h29m) 마이산의 특징과 역고드름에 대한 설명입니다.


   ▼ 14:49(04h29m) 암마이봉의 타포니지형이 그대로 드러나 보입니다.


   ▼ 14:59(04h39m) 은수사를 지나는 길에 전시된 마이산 사진을 찍었습니다.


   ▼ 14:59(04h39m) 마이산의 기이한 현상인 역고드름 사진을 다시 찍어 왔습니다.



   ▼ 15:00(04h40m) 은수사를 지나 탑사로 이동중입니다.


   ▼ 15:00(04h40m) 현위치 탑사 직전입니다.


   ▼ 15:02(04h42m) 탑사 가는 길에 바라본 천지탑 전경입니다.




   ▼ 15:06(04h46m) 탑사에 도착했습니다. 

      (탑사 개략)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의 남쪽 사면에 탑사가 있다. 

      마이산의 남부주차장에서 약 1.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이산 탑사는 이갑용 처사가

      쌓은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하다.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고 크기는 다양하다.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이 가장 큰데, 어른 키의 약3배 정도 높이이다.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돌탑들은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혼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갑용 처사는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 탑사는 봄 벚꽃으로도 유명하다.

      진입로 입구의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탑사앞까지 약 1.9km의 길에 벚나무가 늘어서있어

      봄이면 벚꽃 잔치가 벌어진다.

      이 기간에 이곳에서 마이산 벚꽃축제가 펼쳐지기도 한다.

      마령면 동촌리의 남부주차장에서 탑사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 마이산 천지탑 *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 15:06(04h46m) 탑사 전경입니다. 맨 뒤쪽 큰탑 2개가 천지탑입니다.




    ▼ 15:09(04h49m) 탑사의 탑을 쌓은 이갑룡처사라는 분의 사적비입니다.

      (이갑룡 처사)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 1885년(고종 25)경에 임실에 살았던 처사() 이갑룡()이

      수도하기 위하여 마이산 밑으로 이주한 뒤 108기의 석탑을 30여년에 걸쳐서 혼자 축조하였는데,

      지금은 약 80여기가 남아 있다.

      석재()를 다듬어 만든 일반탑이 아니라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탑들의 높이는 1m에서

      15m까지 있고, 그 크기는 고르지 않다.

      이 탑들은 천지탑()·오방탑()·월광탑()·일광탑()·약사탑(

      중앙탑()·월궁탑()·용궁탑()·신장탑() 등으로 이름이 붙어있으며,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고 한다.

      이갑룡이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여 솔잎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탑()을 쌓았는데,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탑을 쌓되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에 따라 축조하여 완성시켰으며,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과

      기도로 시종일관하였다고 전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마이산탑 [馬耳山塔]


    ▼ 15:09(04h49m) 탑사 뒤로 숫마이봉이 조망됩니다.



   ▼ 15:16(04h56m) 탑사를 지나 탑영제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15:24(05h04m) 산행시작 5시간이 지난 시점에 성황당으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남부주차장 방향으로 계속 이동해야 합니다.


   ▼ 15:24(05h04m) 우리가 이동한 코스는 남부주차장 ~ 고금당 ~ 성황당삼거리 ~ 삿갓봉 ~

      성황당 삼거리 ~ 북부주차장 ~ 천황문 ~ 암마이봉 ~ 천황문 ~ 은수사 ~ 탑사를 거쳐 현위치입니다.


   ▼ 15:26(05h06m) 탑영제에 도착합니다. 물놀이 공원으로 운영되나 봅니다.


   ▼ 15:30(05h10m) 탑영제에서 바라본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입니다.


   ▼ 15:34(05h14m) 금당사 앞으로 지나갑니다.


   ▼ 15:36(05h16m) 금당사 앞에 백목련과 벚꽃이 만개해 있습니다.


   ▼ 15:36(05h16m) 금당사 전경입니다.







   ▼ 15:27(05h07m) 이곳에서 남부 버스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산행을 종료합니다.

      이동하면서 먹걸리집에 들러 막걸리와 진안의 명물인 돼지 등뼈구이등을 즐긴 후 16시03분경

      5시간 40여분의 산행을 전부 마칩니다.

  

   (마이산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글 같아서 2012년 국회보에 실린글을 퍼왔습니다.)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은 전북 진안의 마이산(馬耳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비로운 산 가운데 하나다. 생긴 모양부터 기이해 산신령이 살고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규모가 작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도립공원에 머물러 있지만,

   그 안에는 커다란 산 못지않은 기세와 풍광을 품고 있다.

   인근 운장산이나 덕유산과 비교해 낮지만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신비감은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다.

   국내에서 가장 특징 있는 산으로 꼽히는 마이산을 제대로 즐기려면 주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능선을 타고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미슐랭 가이드가 인정한 명산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여행안내서 ‘미슐랭 가이드’가 지난해 최고 평점인 별 3개를 준 명소가

   한국에도 있다. 바로 마이산이다.

   대표적인 한국의 산인 설악산과 지리산이 별 2개에 그친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이산이 최고의

   평점을 받은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마이산을 한번 보고 나면 누구나

    ‘과연 이런 곳이 있었나’ 하고 찬사를 쏟아내고 만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는 마이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산세가 말의 두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암마이봉(685m)과 수마이봉(676m)이 마주보는 형상이 신기할 정도로 그렇다.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이 따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산의 상징인 암수마이봉 주변을 둘러보거나 탑사를 다녀오는 것으로 마이산을

   다녀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주마간산격이다.

   마이산의 진면목은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진안의 너른 들판과 마이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산행을 해야 그 참 모습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다.


   등산코스도 잘 조성돼 있다.

   마령면 함미산성에서 출발, 광대봉(609m)~고금당~나봉암(527m)~삿갓봉(532m)~봉두봉(540m)~

   암마이봉(685m)~탑사~남부주차장의 종주코스(8.5㎞)를 따라가면 마이산의 숨겨진 비경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이 코스에서 광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찮은 오르막이지만 능선을 타고부터는 한결 수월해진다.

   광대봉 정상에 서면 그제서야 암마이봉의 자태가 드러나고 전망대가 있는 나봉암, 관암봉 등 마이산

   능선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의 산들에 묻혀 멀리 보이는 마이산은 말이 귀를 쫑긋거리는 모양새여서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종주코스가 부담스럽다면 마이산 아래부터 주변 산을 한바퀴 도는 단기코스를 추천한다.

   마이산북부 주차장에서 출발해 약수터~은수사~탑사~금당사~전망대~암마이봉을 거쳐 다시

   출발지점으로 내려오는 핵심코스다.

   능선조망도 즐기면서 3~4시간에 마이산의 정수를 모두 담을 수 있다.

   순환코스여서 반대쪽 남부주차장에서 출발해도 된다.


   태풍에도 끄떡없는 신비한 돌탑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각각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으로 불리고 있다.

   말이 귀를 쫑긋하는 모양이 비슷하지만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왜 그렇게 구분해서 불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암마이봉에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에서 본 수마이봉은 모양새가 너무 평범하다.

   왜 거센 수마이봉으로 불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비밀은 암마이봉에 있다.

   오직 암마이봉에 올라가서 바라봤을 때 완벽한 남근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절묘한 음양의 조화에

   누구라도 감탄사를 터트리고 만다. 북부주차장을 출발점으로 잡았다.

   오르는 길은 초입의 계단이 조금 힘들지만 이후부터는 내리막이어서 수월하다.

   원점으로 회귀하기도 북부주차장이 나은 편이다. 이 코스는 초입의 나무계단이 만만치 않다.

   500여 계단을 올라 숨이 가빠질 무렵에는 반가운 샘이 하나 나타난다.

   말 모양의 약수터다. 돌로 만든 말의 입에서 천연암반수가 콸콸 쏟아진다.

   약수터에서 1km쯤 더 가니 암수 마이봉 사이인 천황문이다.

   천황문은 무슨 대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갈라지는 분수령이다.

   암마이봉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 수마이봉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의 원류가 된다.

   여기서 보니 마이산이 산이라기보다 두 개의 바위처럼 보인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역고드름으로 유명한 은수사가 나타난다.

   한겨울에 그릇에 물을 떠놓으면 얼음기둥이 생겨나는 신기한 현상으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빈다.

   고드름의 길이는 35㎝까지 자라는데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서 마이산에서만 일어난다.

   역고드름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탑사 주지 진성 스님은 우뚝 솟은 두 마이봉 사이에서 급격한

   공기의 대류 현상으로 공기가 위로 빨려 올라가는 순간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정화수를 직접 올린 사람의 그릇에 역고드름이 생기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있어

   수백개의 그릇이 한겨울 동안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은수사에서 200m쯤 더 내려가면 마이산을 더욱 신비롭고 유명하게 만든 탑사가 있다.

   마이산의 두 귀가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이라면 탑사의 돌탑은 바로 인간이 만든 걸작품이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에 들어 앉은 탑사에는 약 80기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15m 높이의 거대한 돌탑부터 앉은뱅이 탑까지 크기도 가지가지다.

   인간이 쌓은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아 100여년전 이갑룡이라는 도인이 공중부양을 해 돌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돌탑들은 언뜻보면 어지럽게 돌무더기가 놓여 있는 것 같다.

   손끝만 대도 넘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만 아무리 강한 폭풍우가 닥쳐도 돌탑은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단다.

   탑이 위치한 곳은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라 태풍이 오면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째 뽑히지만 돌탑은 조금씩 흔들릴 뿐 쓰러지지 않는다.

   지난 여름 몰아쳤던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마이산 주변엔 수백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지만 탑사의 돌탑 80여기는 모두 무사했다.


   1억년 전 호수에서 솟아오른 산
   탑사에서 나와 호수를 지나면 남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입구다.

   이곳에서 능선을 탈 수 있는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있다.

   보통은 이곳에서 되돌아가지만 전망대는 충분히 오를만한 가치가 있다.

   전망대 위에는 마이산 산신령들이 장기를 두고 있을 것같은 정자가 있고,

   이곳에 서면 사방의 전망이 발아래 펼쳐진다.

   산 아래서 보던 마이산을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웅장한 맛이 더해져 다른 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스라한 진안의 너른 들판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능선을 따라 숲길을 1시간 정도 가게 되면 암마이봉에 다다르게 된다.

   암마이봉을 가까이서 보면 폭격을 맞은 듯 중간중간에 벌집처럼 움푹 패인 자국이 있다.

   달 표면의 분화구 같기도 하고 공룡 발자국 같기도 하다.

   겨울철 동결과 융해가 반복되다 암벽에서 자갈이 뜯겨 나가면서 만들어진 ‘타포니(tafoni)’

   지형이기 때문이다.
   바위와 절벽은 물론이고 등산로도 꼭 콘크리트를 깔아놓은 것 같은 암석으로 덮여 있다.

   약 1억년 전 거대한 호수였던 이곳이 땅이 솟아 오르면서 암석으로 변해서 생긴 수성암이다.

   크지 않은 산에 정말 신기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려 1억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생긴다.

   아쉽게도 암마이봉 정상으로 가는 등반로는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돼 2014년까지는 오를 수 없다.

   반대쪽으로 돌아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지역 최고의 명산답게 마이산은 금강산처럼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고 해서 돛대봉,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해서 용각봉이다.

   가을에는 쫑긋한 말의 귀 같다고 해서 마이산, 겨울에는 산봉우리가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고 해서 문필봉이다. 결국 마이산은 가을에 찾아야 제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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