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은 전남 강진의 유서깊은 백련사와 다산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 초당을 품고있는
석문산(石門山,272m)과 만덕산(萬德山,408.6m)을 찾았습니다.
만덕산은 그렇게 높지않은 산이지만 앙팡진 암릉능선을 가지고 있어 오르내리막이 심하며,
산행거리가 그렇게 길지 않지만 힘든 산행지입니다.
2015년 5월에 옥련사를 들머리로 하여 만덕산을 찾았을 때도 정상 등정 후에는 이번과 동일한
코스로 벽련사와 다산유적지를 찾았던 기억이 소로소록 떠올랐습니다.
만덕산 직전에 있는 최근에 설치된 석문산과 만덕산을 연결하는 석문교(石門橋)는
산악현수교로는 국내 최장 현수교이고, 이 현수교 설치후 산객글과 유객들의 방문이
급증하고 있다고는 하나, 현장을 찾았을 때에는 투자비의 낭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필요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였습니다.
현수교를 지나 만덕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앙칼스런 여자처럼 오르막 내리막은 물론
곳곳에 까칠한 바윗길로 이어졌습니다.
정상 직전 바람재에서 만덕산 정상인 깃대봉까지의 오르막은 빡쎈 암릉의 연속이었습니다.
만덕산이 품고 있는 백련사(白蓮寺)는 통일신라시대 말기 문상왕때 무염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만덕산 백련사로 불리워 오다가, 조선시대 들어 만덕사로 불리다가 근래들어
다시 백련사로 불리워지고 있다고 하며, 조선조 효령대군이 욍위를 세종에게 물러주고
이곳 백련사에 8년간 기거하여, 효종때 절을 중수하면서 세운 탑과 사적비도 있으며,
천연기념물 151호인 동백나무 군락지도 있습니다.
백련사 부근에 있는 다산 초당은 다산의 유배생활 18년 중 10년을 살아온 곳으로
원래 이곳은 해남 윤씨(윤선도 가문)의 산정이었으나 윤씨집안의 자제들이 다산에게 수학을
하면서 다산을 이곳에서 보내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대표적 건물이 초당과 동암, 서암으로 초당은 교실로, 동암은 다산 본인이 책과 함께 생활
하던 곳이고, 서암은 제자들이 기거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잘지어진 기왓집들은 당시의 초가집들을 당시의 형식으로 복우너한 것이라고 하며,
초당에 걸린 다산초당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고, 동암에 걸린
보정산방(寶丁山房)은 추사 김정희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합니다.
(만덕산 개략)
강진만 바다를 한눈에 굽어보기 좋은 곳이 만덕산이다.
높이 408.6m의 낮은 산이지만 능선에는 상당한 크기의 암석들이 많으며,
남쪽에는 사적 제107호인 다산선생의 초당과 백련사가 언덕 사이로 나란히 있다.
이곳에는 만덕산은 야생차가 많이 자생하여 다산이라고도 불리며,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호가 이곳 만덕산을 배경으로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말기 당대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이다.
강진에 유배되어 18년 간 귀양생활 중, 8년 간을 강진읍 동문 밖에서 머물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곳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저술에 전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완성했다.
정상 남쪽 골짜기의 백련사 주변에는 3ha에 걸쳐서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특히 절 앞에 많다.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만덕산
(산행개요)
1. 산행날짜 : 2017.03.04(토) 날씨 : 맑음
2. 산행시간 : 10:55분 ~ 17:08분(6시간13분) - 후미조 탈출 기준임
3. 이동, 도상거리 : 9.27km, 8.82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1.47km/h
휴식제외 : 1.75km/h
5. 고도 : 409m ~ 36m(373m) - 만덕산 높이가 408m이니 GPS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3.17km, 1.28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5.91km, 2.10km/h
8. 휴식횟수, 시간 : 2회, 1시간
9. 산행코스
소석문 ~ 석문산 ~ 구름다리 ~ 마당봉 ~ 바람재 ~ 만덕산 ~ 백련사 옆길
~ 다산초당 ~ 다산유물전시관 ~ 주차장
▼ 당초 산행 계획에 의한 코스를 나타낸 선입니다.
▼ 후미 힘든분들과 정상과 백련사를 들러지 못하고 같이 탈출한 코스입니다.
▼ 위성지도로 본 산행지 부근 산 위치입니다. 우측위 하늘색 선은 호남정맥길 표식입니다.
▼ 위성지도로 본 산행 궤적입니다.
▼ 등고선에 표시한 산행 궤적입니다.
▼ 산행 고도표입니다. 오르내림이 꽤 심한 편입니다.
▼ 10:49 부산 서면에서 출발한 버스는 이동시간 3시간50여분만에 들머리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이 전경은 석문산의 도로 건너에 있는 덕룡산 들머리 전경입니다.
▼ 10:51 덕룡산 들머리앞 조그마한 주차장에서 오늘 산행지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암릉산행이므로 사전 스트레칭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 10:55(00h00m) 스트레칭후 석문산 들머리로 본격 산행이 시작됩니다.
▼ 10:56(00h01m) 이곳에서 백련사까지는 약 7.7km의 산행거리로 연결됩니다.
▼ 10:56(00h01m) 들머리 초입에 국가유공자 묘지가 한 기 있었습니다.
▼ 10:59(00h03m) 초입에서 조금 오르니 약수터가 나오고 부근에 기도처가 있었습니다.
▼ 10:59(00h03m) 약수는 석관수로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였습니다.
▼ 11:00(00h05m) 바위에 짓눌린건지 바위를 감싼건지....
▼ 11:00(00h05m) 초입무터 급한 경사길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 11:03(00h08m) 주위를 돌아보니 산은 낮지만 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 11:04(00h09m) 합장암터 입구에 도착합니다.
(합장암터)
전남 강진군 도암면 석문산 자락의 봉덕산이라고 불리는 이 산 정상부근에는 허물어진
백련사의 암자터가 있던 곳으로 해발 283m이다.
덕룡산(433m)을 가는 길목의 소석문에 위치한 이 암자터는 창건연대는 알 수가 없으나
1668년과 1698년에 중창되었고 1900년 초에 붕괴되어 사라졌다.
암자터 뒤로 북쪽으로는 20여 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가 봉우리 형상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있고 그 안쪽에는 암굴이 있는데 조그마한 샘도 있다.
두 개의 바위가 합장한 것처럼 보인다하여 합장암이라 불리게 되었다는데 앞이 탁 트여서
강진만과 덕룡산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 11:13(00h18m) 한국 춘란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 춘란 개략)
한국 춘란은 온대성의 다년생 식물로 주로 남부 도서 지방에 자생하며,
북방 한계선은 충청남도의 태안반도 남쪽인 안면도와 경상북도의 영일만을 연결하는 선으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까지 이르고 있다.
한국 춘란 자생지는 연평균 기온은 12~13℃이고, 1월의 평균 기온은 0~2℃로 비교적 온화한
지역이다.
잎은 뿌리에서 모여 나고 선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다.
표면은 진록색으로 혁질이며, 가장자리에 미세한 톱니가 있다.
꽃은 연한 황록색으로 3~4월에 꽃줄기 끝에 1개씩 옆을 보고 피며 영양제 같은 냄새가 난다.
꽃받침 조각은 3~3.5㎝ 정도이고 피침형이다.
비슷한 모양의 겹꽃잎은 길이가 비슷하거나 약간 짧다.
순판은 누런빛이 도는 흰색 바탕에 홍자색 반점이 있다.
5㎝ 정도 길이의 곧게 서는 열매는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녹색에서 흑갈색으로 익는다.
주로 남부 지방과 중남부 해안의 산지 숲속에서 자라는 상록 다년초로 관화 및 관엽 식물이다.
1980년대에 발간된 자료에 따르면, 해안가 지역의 춘란 북방 한계선이 서산이나 태안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춘란 자생지의 북방 한계선이 계속 바뀌고 있으며,
최근에는 서해안의 백령도와 대청도, 동해안의 울릉도와 휴전선 근방인 재진,
경기도 양평까지 자생지가 계속 북상하고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11:15(00h20m) 석문산 정상으로 힘들게 오르고 있습니다.
▼ 11:15(00h20m) 중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반재쪽 덕룡산 능선 전경입니다.
(덕룡산 개략)
덕룡산(해발 432.9m)은 산이 반드시 높이에 따라 산세가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산이다.
해남 두륜산과 이어져 있는 덕룡산은 높이래야 고작 400m를 가까스로 넘지만 산세만큼은
해발 1,000m 높이의 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상인 동봉과 서봉, 쌍봉으로 이루어진 이 산은 웅장하면서도 창끝처럼 날카롭게 솟구친
암릉, 암릉과 암릉사이의 초원능선 등 능선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힘의 진수를
보여준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자연의 은밀함을 맛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덕룡산의 산행은 강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우는 소석문 협곡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타고
동봉과 서봉을 지나 동쪽사면의 이정표를 따라 수양리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고,
장거리 산행에 자신 있는 사람은 암릉산행을 마친 다음 동사면을 따라 수양저수지가 있는
쪽으로 하산하거나 초원능선 - 작천소령 - 수양관광농원 코스로 하산할 수 있다.
산행시간은 소석문 - 동ㆍ서봉 - 작천소령 - 수양관광농원까지 연결하는 코스는 6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기 때문에 아주 흥미있는 등산로로 알려져 있으며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마실 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 11:16(00h21m) 반대쪽 덕룡산 들머리에서부터 주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전경입니다.
▼ 11:19(00h24m) 석문산으로 오르기 위해 이 암봉에 올라야 합니다.
▼ 11:19(00h24m) 오르는 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봉황저수지 전경입니다.
▼ 11:25(00h30m)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진만 전경입니다.
▼ 11:31(00h36m) 가파른 오르막이이어집니다.
산이 낮다고 예사롭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11:33(00h38m) 272m 정도의 낮은 석문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렇지만 암봉으로 연결되는 등로이므로 쉬운 산행은 아닙니다.
▼ 11:33(00h38m) 정상에 설치된 표시석입니다.
▼ 11:45(00h48m) 정상을 떠나 만덕산과 연결되는 석문산 현수교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진행방향에서 양쪽으로 구름다리 주차장으로 가는 길인데 결국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소석문쪽에서 올라온 방향에서 좌측 능선길로 접어들어 이동합니다.
▼ 11:45(00h48m) 정상부근 쪽에서 구름다리 주차장 가는 길은 다소 편한길이었습니다.
▼ 11:48(00h53m) 통천문 홍보판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찾지 못하고 통과합니다.
▼ 11:48(00h53m) 석문산 현수교 방향으로 계속 진행합니다.
▼ 11:48(00h53m) 바위 뒤로 보이는 암릉이 만덕산 가는 능선입니다.
▼ 11:49(00h54m) 만덕산 가는 암릉 우측으로 용문사가 조망됩니다.
▼ 11:52(00h57m) 석문교가 전망대 아레에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 11:53(00h58m) 산악 최장 현수교인 석문교 전경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 궂이 가설했어야 했는지 의아스럽기 조차 했습니다.
▼ 11:54(00h59m)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동해야합니다.
▼ 11:54(00h59m) 구름다리 주차장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야 합니다.
(남도명품길에 관한 기사 퍼옴)
(강진=국제뉴스) 정재춘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후원하는
2016 바스락(樂)길 걷기여행에 강진군 남도 명품길이 선정됐다.
코리아둘레길을 토대로 4개 군이 선정됐으며 전남 강진군은 오는 29일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와 연계하여 걷기행사를 실시한다.
바스락(樂)길 걷기행사는 갯벌, 강과 바다 그리고 산이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공간인
강진만 갈대숲을 출발해 '사색과 명상의 다산 오솔길'로 불리는 정약용 남도 유배길을
따라 신규로 개설된 남도 명품길(덕룡산 등산로 입구)까지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남도 명품길은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를 시작으로 해남군 대흥사에 이르는 37.4km의
노선으로 2017년 조성 완료된다.
이번 걷기행사는 남도명품길 1구간 공사가 완료된 백련사~덕룡산 등산로 입구(7km)구간
으로 진행되며 석문공원~주작산 휴양림(2구간) 공사는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바스락 바스락 감성 찾아 떠나는 가을 길,
첫 번째 코스는 백련사 결사운동을 주창해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백련사이다.
전남의 대표적인 템플스테이 중 한곳으로 꼽히는 백련사는 산사의 고즈넉함과 그윽한
차향을 체험하고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을 느껴 볼 수 있다. 길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도 완만하여 걷기
코스로 제격이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면 다산 정약용의 유배기간 18여년 중 10여년을
생활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5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한 다산초당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다산4경이라 불리는 다조, 약천, 정석, 연지석가산을 둘러볼 수 있다.
다산초당을 내려오면 다산선생의 실사구시 정신을 배우며 심신단련과 건전한 정서함양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다산수련원에 도착하게 된다.
다산 선생의 삶을 재구성하여 2백년 전의 다산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다산의 흔적을 따라 강진의 문화유적을 둘러보며 현장체험으로 진행하는 대한민국
대표 청렴교육의 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다산의 문화유적을 뒤로하고 신규로 개설된 남도 명품 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기암괴석이
아름다워 남도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석문공원에 도착하게 된다.
최근에 개통된 산악 현수형 출렁다리 사랑⁺구름다리(111m)를 건너다보면 가을 풍경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도착지인 덕룡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순환버스를 운행하여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 11:54(00h59m) 바위전망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11:55(01h00m) 산행시작 1시간만에 세종대왕 탕건바위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 11:56(01h01m) 탕건바위 전경입니다.
▼ 11:57(01h02m)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용문사 전경입니다.
용문사는 본래의 명칭은 석문사로 백련사 소속의 암자였다고 합니다.
1947년 벽계수향이 개축하고 용문사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인법당에 모셔져 있는 두 개의 토불은 그 기법이 아주 세련되었지만
현재 문헌상으로는 어느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지 알 수는 없어 꽤 오래전부터
내려오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 11:57(01h02m) 석문교 건너 만덕산으로 이어지는 암릉능선 전경입니다.
▼ 11:57(01h02m) 용문사에서 조금 떨어진 벼랑위에 있는 정자 전경입니다.
▼ 12:03(01h08m) 구름다리 주차장으로 가는 이정표입니다.
▼ 12:04(01h09m)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목계단으로 이동합니다.
▼ 12:05(01h10m) 석문교인 구름다리를 이동하기 위한 안전 설명입니다.
▼ 12:06(01h11m) 석문산과 만덕산을 연결하는 현수교인 석문교 전경입니다.
▼ 12:07(01h12m) 석문교를 건넌 후 뒤돌아본 전경입니다.
새롭게 가설된 현수교로 많이 흔들리지 않아 위험하지도 않게 설치되었습니다.
▼ 12:08(01h13m) 석문교에 대한 준공 내역의 동판입니다.
▼ 12:08(01h13m) 석문교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이정표입니다.
▼ 12:10(01h15m) 노적봉 전망대 가는 삼거리 이정표입니다.
이 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산초당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도록 합니다.
▼ 12:51(01h56m) 약 40분간의 점심식사후 만덕산에서 바라본 석문산 전경입니다.
얼마 높지 않은 산이지만 바위로 옹골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12:52(01h57m) 아래 보이는 노적봉 전망대 전경입니다.
▼ 12:55(02h00m) 석문산과 현수교, 그리고 노적봉 전망대를 한앵글에 같이 잡았습니다.
▼ 12:56(02h01m) 암릉능선 이동길에 만난 입석 전경입니다.
▼ 13:02(02h07m) 곳곳에 기암괴석이 늘려 있었습니다.
▼ 13:05(02h10m) 암릉길에 짧은 로프길 전경입니다.
▼ 13:07(02h12m) 바위틈으로 난 길을 타고 올라야 하는 곳이 수시로 나타납니다.
▼ 13:08(02h13m)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석문산과 멀리 덕룡산 능선 ,좌측 주작산,
우측 두륜산이 조망됩니다.
▼ 13:16(02h21m) 백련사 삼거리를 만납니다.
우리는 석문공원 방향에서 진행해와 백련사 방향으로 길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 13:26(02h31m) 만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석문산과, 봉우리가 2~3개보이는 덕룡산,
그리고 덕룡산 뒤로 좌측 조그맣게 보이는 주작산, 우측으로 두륜산 능선이 조망됩니다.
▼ 13:27(02h32m) 만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진 앞바다 전경입니다.
바다 건너 가운데 멀리 솟은 봉우리가 장흥 천관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13:29(02h34m) 진행 등로 곳곳에 입석이나 기암들이 즐비합니다.
▼ 13:32(02h37m)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
▼ 13:36(02h41m) 선두에서 우리 산악회 리본도 하나 추가하고...
▼ 14:04(03h09m) 암릉을 지난 뒤 약간 순한 산허리길이 연결됩니다.
▼ 14:05(03h10m) 진행방향 좌측으로 영락제라는 조그마한 소류지가 조망됩니다.
▼ 14:06(03h11m) 멀리 보이는 바위산이 영암 원출산 같기도 한데.....
▼ 14:06(03h11m) 강진만 전경입니다.
▼ 14:08(03h13m) 앞에 보이는 정상은 만덕산 정상 전위봉이고 낮은 곳은 바람재입니다.
▼ 14:08(03h13m) 짧은 암릉구간을 통과합니다.
▼ 14:10(03h15m) 바위들이 날카롭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 14:11(03h16m) 날카로운 암릉 이동후 약간의 내리막으로 이동합니다.
▼ 14:15(03h20m) 내리막 이동후 또 다시 짧은 암릉구간이 나타납니다.
▼ 14:18(03h23m) 이곳으로부터는 걷기 좋은 순한길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 14:38(03h43m) 바람재 1.4k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4:46(03h51m) 산행길 중에 가장 편한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14:48(03h53m) 용문사 3.67km를 지나왔습니다. 이곳은 고바우농장터입니다.
▼ 14:49(03h54m) 앞이트인 개활지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멀리 3개의 암봉이 보이는 곳이 덕룡산이고 그 앞쪽으로 낮게보이는 산이 석문산 전경입니다.
▼ 14:57(03h59m) 바람재 내려가기 직전 낮은 봉우리에 설치된 통신 시설물입니다.
▼ 15:00(04h05m) 바람재를 향해 내려가는 중에 만난 편백숲입니다.
▼ 15:01(04h06m) 바람재 직전의 안부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 15:08(04h13m) 앞쪽으로 만덕산 전위봉이 조망됩니다.
▼ 15:10(04h15m) 바람재에 도착했습니다.
진행방향으로 ← 임도방향, ↑ 진행해야할 백련사 방향, → 기도원방향입니다.
▼ 15:17(04h22m) 바람재를 지나자마자 바위길이 연결됩니다.
▼ 15:19(04h24m) 바위전망대에서 지나온 능선길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멀리 주작산, 덕룡산, 두륜산 능선이 조망됩니다.
▼ 15:27(04h32m)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오솔길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 15:31(04h36m) 만덕산 전위봉으로 오르는 중에 만난 입석 전경입니다.
▼ 15:31(04h36m) 바위의 생김새가 희귀해서 한 컷 찍었습니다.
▼ 15:31(04h36m) 낮은 암봉을 좌측으로 돌아가면 약간 내려섰다가 좌측으로 올라갑니다.
▼ 15:32(04h37m) 암봉을 좌측으로 돌면 약간 내리막을 내려 선 후,
▼ 15:33(04h38m)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야 합니다.
▼ 15:44(04h49m) 정상인 깃대봉 500m를 남기고 후미 탈진으로 하산합니다.
산은 그대로 있으니다음에 다시 찾으면 되겠지요. 항상 무리한 인간의 욕심이 화를 부르니...
▼ 15:49(04h54m) 하산길은 다소 급경사로 이어집니다.
▼ 16:00(05h05m) 산행 시작 5시간만에 다소 편안한 하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 16:00(05h05m) 다산초당 전 다소 편한길이 이어집니다.
▼ 16:03(05h08m) 대나무 냄새 향긋한 대나무숲길이 이어집니다.
▼ 16:07(05h12m) 백련사에서 나오는 길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후미 체력 소진으로 백련사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 4거리는 진행방향에서 ← 백련사 방향, ↑ 해월루 방향, → 다산초당 방향입니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산 초당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해월루는 관광객을 위해 강진군에서 2007년에 설치한 정자로 해월루에 서면 강진만이
눈 앞에 다가오고, 이곳은 백련사의 혜장선사과 다산 선생이 거닐던 곳으로 학문과
우정의 연결장소이면서 불교와 실학의 만남장소가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강진해월루에 대한 기사 펌 - 강진신문 2007년4월)
다산초당과 백련사간 오솔길에 2층규모의 누각이 새로 설치됐다.
군에 따르면 다산정약용 실학성지 조성사업으로 도암면 다산초당~백련사간 오솔길에
지난 2월부터 총 공사비 4억원을 들여 40여평 공간에 지상 2층규모의 누각을 새로 설치했다.
새로 조성된 누각의 명칭은 해월루(海月樓).
해월은 바다위에 뜬 달이라는 뜻으로 누각의 명칭은 양광식 강진군 문화재위원이 명명했다.
현판의 글씨는 마량면 출신으로 서울에서 작품활동중인 김제운씨가 쓰고 군동면 화방출신
혁인스님이 조각했다.
해월루는 각 층당 9평씩 총 18평의 연면적을 갖추고 있고 나무재질은 대부분 견고한
육송을 사용했고 전통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한식기와로 꾸며졌다.
해월루는 독특한 십자형태의 누각의 모습을 만들어졌다.
해월루는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에 위치한 산영루 누각의 형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산영루는 북한산 비석거리앞 절벽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다산 정약용선생이 산영루란
제목의 시를 지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했다.
이에 군에서는 실학성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다산선생의 시의 주제가 됐던 산영루의
형태로 누각을 새로 설치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이번 설치된 누각은 관광자원 개발과 함께 전통문화 유적을 개발한 것과 같다”
며 “이달 300여m의 백련사 동백림 오솔길 정비사업을 마치면 강진만 해역과 백련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또하나의 친환경적인 관광자원이 탄생한다”고 밝혔다.
▼ 16:11(05h16m) 4거리를 떠나 다산초당 500m전방 이정표를 통과합니다.
▼ 16:12(05h17m) 다산초당 가는 길에 삼나무의 기이한 용틀림을......
▼ 16:13(05h18m) 두 번째 삼나무의 용틀림 현상입니다.
▼ 16:13(05h18m) 다산 선생이 걸었던 다산초당 가는 길은 사색의 오솔길이었습니다.
▼ 16:15(05h20m) 다산초당 300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6:19(05h24m) 만덕산 숲 탐방로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 16:20(05h25m)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가는 길의 유래에 대한 설명입니다.
▼ 16:20(05h25m) 천일각과 백련사 가는길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래 사진이 천일각이고 다산 사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 16:21(05h26m) 천일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산초당이 있습니다.
▼ 16:21(05h26m) 다산유적지의 동암 전경입니다.
동암은 다산이 기거하던 곳으로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낸던 장소라고 합니다.
▼ 16:21(05h26m) 당시에는 이 같이 번듯한 기와집이 아닌 초가집이었다는데....
▼ 16:21(05h26m) 다산 동암(茶山東菴)은 다산선생의 글자를 집자한 현판이라 합니다.
▼ 16:21(05h26m) 보정산방(寶丁山房)의 뜻은 정다산을 보배처럼 모신다는 말로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모각한 현판이라 합니다.
(다산 정약용)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 현상의 전반에 걸쳐 전개된 그의 사상은 조선왕조의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혁명론’이었다기보다는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량하여 조선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
(王道政治)의 이념을 구현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당쟁의 과정에서 오랫동안 정치 참여로부터 소외되었던
근기(近畿) 지방의 남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기존의 통치방식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들이 존중하는 성리설과는 달리 선진유학에 기초한
새로운 개혁의 이론을 일찍부터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들의 학문적 경향을 ‘근기학파’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정약용은 바로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고, 소시적부터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가 태어난 양근(楊根: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땅 일대는 뒷날의 연구자들로부터
실학자로 불리게 된 일군의 학자들이 새로운 학풍을 형성해 가던 곳이었다.
그의 친인척들도 이곳의 학풍을 발전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했던 정재원(丁載遠)과 해남윤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음사(蔭仕)로 진주목사를 지냈으나, 고조 이후 삼세(三世)가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로 세상을 떠났으니, 비록 양반이며 그 이전까지는 대대로 벼슬을 했지만,
그의 집안은 당시로서는 권세와 별로 가까운 처지가 아니었던 셈이다.
▼ 16:23(05h28m) '송풍루'라고 불리는 동암에 대한 설명입니다.
▼ 16:24(05h29m) 다산초당 전경입니다.
다산 초당은 다산과 해남 윤씨의 자제들의 공부방으로 사용하던 곳이라 합니다.
▼ 16:24(05h29m) 연지 석가산이라는 연못으로 다산이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 16:25(05h30m) 다산초당 전경입니다.
▼ 16:26(05h31m) 서암 전경입니다.
서암은 제자들의 거처였다고 합니다.
▼ 16:29(05h34m) 다산 초당 바로 아래에 있는 묘지 설명입니다.
▼ 16:32(05h37m) 다산 유적지 입구에 설치된 다산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 16:33(05h38m) 다산 유적지를 떠나 주차장 방향으로 이동중 이정표를 지납니다.
▼ 잠시 시간을 내어 강진산 막걸리를 맛봅니다.
산행 후에 마시는 지역별 막걸리의 맛을 즐기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입니다.
▼ '개나리'와 비슷하게 생긴 '영춘화'입니다.
개나리꽃과 영춘화의 차이점은 개나리는 꽃잎이 4장이고 영춘화는 6장입니다.
▼ 17:00(06h05m) 동네 우물터입니다.
빨래터의 아낙네들의 소담스런 이야기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 17:01(06h06m) 다산 기념관 400m전방을 통과합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 17:07(06h12m) 주차장에서 귤동까지는 400m로 다산이 처음 이곳에 와서 살았던 곳이
귤동이라고 합니다.
▼ 17:08(06h13m)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으로 가지는 못햇지만 후미기준 6시간을 훌쩍 넘긴 산행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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