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 + 경남/경남.부산 사 ~ 차

2019.01.12(토) 사진으로 보는 산청 정수산 산행일기

redstone5 2019. 1. 16. 14:07


      이번 산행은 경남 산청군의 정수산(淨깨끗할정,水물수,山, 841m)을 찾았습니다.

      청수산은 좌로 지리산 주능선과 웅석봉 능선, 우로는 감암산, 부암산, 황매산 능선이

      빼어나게 조망되는 산이지만,

      전날 내린비의 영향과 봄처럼 따뜻한 날씨가 만들어낸 운무가 짙게 드리워져 조망은 커녕

      운무속의 신선놀음이나 하였고,

      빼어난 조망은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수산은 산속의 물들이 깨끗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산세는 그리 높지 않지만

      산자수명의 고장인 산청의 산세 한가운데 있은 산으로 정수지맥(淨水枝脈)의 최고봉이

      되는 산으로,

      새신바위 일명 조신암(鳥새조,神귀신신,巖바위암)과 함께 전설을 간직한 율곡사를 품고

      있는 산입니다.


      새신암의 전설에 따르면,

      율곡사 뒤편 산봉우리에 수십길이나 되는 암벽이 있는데, 원효대사가 절터를 잡을 때

      이 바위에 올라서서 율곡사터를 잡았다는 곳으로, 율곡사 대웅전을 중창할 때 한 목수가

      찾아와 일을 자청했는데 단청작업이 시작되자 목수는 법당안에 틀여박히면서 앞으로

      7일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 보지 말 것을 당부했는데,

      7일째 되는 날 호기심을 참지못한 상좌승이 문틈으로 몰래 법당안을 들여다보니

      새 한마리가 붓을 물고 날아서 단청 작업을 하다가 놀라 붓을 떨어뜨리고 날아가 바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곳이 조신암(鳥神巖)으로 불리고 있으며,

      지금도 율곡사 법당의 천장 밑 좌우 벽면 산수화 그림 두 점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는

      전설을 지나고 있습니다.


      전설의 조신암은 바위 높이가 약 60m정도로 진주 산악인들의 암벽등반훈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 정수지맥(淨水枝脈)?

          정수지맥은 진양기맥(晉나아갈진,陽볕양,岐갈림기,脈맥맥) 소룡산(巢새집소,龍용룡,山,

          761m) 동남쪽 0.86km에 위치한 무명봉에서 분기하여

          송의산(松소나무송,義옳을의,山, 538.9m), 매봉(599m), 구인산(583m), 남산(628m),

          정수산(841m), 둔철산(811.7m), 대성산(634m), 마제봉(198.5m), 적벽산(166m)을 

          지나고 양천강과  남강이 합수하며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4.18km에 달하는 줄기를

          말합니다.


      (정수산(淨水山)?)

       경상남도 산청군산청읍 내수리와 차황면 철수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이다(고도 : 830m).

      정산(淨山)이라고도 부른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지맥(支脈)이 금원산과 황매산을 거치고, 황매산의 일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정수산과 와룡산을 일으켰다.

      정수산의 맥은 다시 남쪽으로 둔철산월명산으로 이어졌다.

      정수산에서 북쪽으로 남산을 거쳐 평지로 잦아든 일대에는 차황면 소재지가 위치하였고,

      서사면의 지맥이 남강과 만나는 일대로는 산청읍 소재지가 입지하였다.

      옛 명칭은 척지산(尺旨山)이라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산청)에 "척지산은 현 동쪽 25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같은 책의 단성현에는 "척지산에 철이 산출된다."라고 적었다.

      『여지도서(보유)』(단성)에서도 "산청의 경계이다.

      황매산에서 맥이 와서 척지촌(尺旨村)의 주맥이 되었다."라고 자세한 내맥을 기록하였다.

      『해동지도』(산음), 『지승』(산음) 등에 척지산이 표기되었고, 『해동여지도』(산청)과

      『1872년지방지도』(산청)에는 척지령(尺旨嶺)이 표기되었다.

      정수산 자락에는 651년(신라 진덕여왕 5)에 원효 대사가 창건한 율곡사(栗谷寺)가 있다.

      율곡사 뒤로 암벽(새신바위)가 있는데 절터를 잡을 때 이 바위에 올라 터를 정했다고 한다.

      율곡사에는 법당의 단청을 그리던 화공이 법당 안을 들여다보자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2011. 12., 국토지리정보원)


      (산행개요?)

      1. 산행날짜 : 2019.01.12(토)      날씨 : 맑음

      2. 산행시간 : 10시20분 ~ 15시35분(5시간15분) -후미기준 여유있는 산행시간임

      3. 이동, 도상거리 : 9.48km, 9.07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1.82km/h

                        휴식제외 : 2.13km/h

      5. 고도 : 867m ~ 172m(695m) - 최고봉이 841m이므로 GPS오차 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5.25km, 1.89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3.96km, 2.36km/h

      8. 휴식횟수, 시간 : 1회 45분(중식시간)

      9. 산행 코스

          율현마을 팔각정 ▷ 율현마을 마을길 ▷ 율곡사 ▷ 새신바위 ▷ 719m삼각점 ▷ 철탑

          ▷ 척지고개 ▷ 정수산 829정상석 ▷ 정수산841정상석 ▷ 바위전망대 ▷ 쉼터 ▷ 경남목장

          ▷ 철수마을 버스정류소


      ▼ 정수산의 위치를 위성도에서 가름합니다.

          중앙 상단 소룡산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주황색선이 정수지맥이고,

          소룡산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주황색선이 진양기맥의 능선입니다.


      ▼ 위성도에 나타낸 정수산 산행 궤적입니다.


      ▼ 등고선지도에 나타낸 산행궤적입니다.


      ▼ 해발고도 궤적으로 중식장소가 척지고개입니다.


      ▼ 10:25(00h00m) 부산 서면에서 08시에 출발한 버스는 들머리인 율현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10:26(00h01m) 산행전 잠시 몸풀기를 합니다.


      ▼ 10:27(00h02m) 율현마을 버스 정류장 전경입니다.


      ▼ 10:27(00h02m) 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바라본 마을 앞 전경입니다.


      ▼ 10:32(00h07m) 마을 중간에 위치한 노거수목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10:32(00h07m) 마을내 보호수인 400년된 노거목에 대한 안내석입니다.


      ▼ 10:32(00h07m) 노거수목 아래의 정자 전경입니다.


      ▼ 10:35(00h10m) 마을안에 있는 지석묘 같은 유적이 있었는데 안내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10:35(00h10m)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에 만난 노거수 아래 정자 전경입니다.


      ▼ 10:36(00h11m) 마을 안길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 10:52(00h27m) 마을을 벗어나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율곡사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10:53(00h28m) 천년고찰이 위치하고 있는 곳을 연상하는 노거송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10:53(00h28m) 율곡사 승탑전(부도) 전경입니다.

          승팁전은 율곡사 아래에 있으며, 왼쪽부터 서광당(瑞상서러울서,光빛광,堂집당),

          낙하당(洛물낙,河물하,堂), 호월당(湖호수호,月달월,堂,), 천파당(天하늘천,坡고개파,堂),

          운당 스님의 승탑등 모두 6기의 승탑이 모셔져 있습니다.


      ▼ 10:59(00h34m) 율곡사 전체적인 전경을 바라봅니다.

          천년고찰이라고 보기에는 소박하고 아담한 사찰입니다.


          (율곡사(栗밤나무율,谷골곡,寺절사)?)

          산청군 신등면 율현리 지리산 동쪽 자락에 있는 절로 651(신라 진덕여왕5년)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930(경순왕 4)년에 감악(感岳)조사가 중창하였다.

          율곡사의 배치는 산지가람의 전형적 사동중정형식(四棟中庭形式)을 자연지세에 따라

          변형한 특이한 형식을 보여준다.

          천왕문 등 당우가 많았던 것으로 짐작되나 현재는 대웅전, 칠성각, 관심당(觀心堂),

          요사채만 남아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지어진 건물이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골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건물답게 상승감을 강조하여 잘다듬은 돌로 3층의 기단을

          만들었으며, 처마 끝 활주가 시원한 느낌을 더해 준다.

          대웅전은 단층팔작지붕의 다포계 건물로 정면3칸·측면2칸, 정면과 측면 길이의 비가

          황금비를 이루는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그 어디에도 견줄수 없는

          단정하고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특히 정면 3칸 중 가운데 1칸은 문짝이 4짝인 사분합문을, 좌우에는 문짝이 3짝인

          삼분합문을 달아 손길이 많이 갔음을 알 수 있다. 기둥 위에는 평방(平枋)을 얹고 사면을

          돌아가면서 처마 밑에는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의 공포를 받쳤으나, 첨차에는 쇠서는

          달리지 않았다.

          대들보의 앞·뒤 기둥의 공포에 통보가 걸렸고 그로부터 좌·우 측면의 중앙기둥에 걸쳐서는

          충량을 배치하였는데,대들보 위에 걸친 충량의 뒤끝은 용두형(龍頭形)으로 조각되어 있다.

          내부는 마루를 깔고 뒷벽 가운데 불단을 만들었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에 T자형의 처마를

          이룬 닫집이 있다.

          또한 내부는 여러번의 보수를 거치면서 많은 장식을 한 흔적이 보인다.

          이 아름다운 대웅전에는 대목의 솜씨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 온다.

          법당을 중건할 때 어떤 목수가 찾아와 절 짓는 일을 맡겠다고 자청하였다.

          그런데 석 달 동안 오로지 목침만 만들고 있었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스님이 목수를 시험하기 위하여 목침 하나를 몰래 숨겼다.

          목침을 다 만든 목수가 목침을 세어보니 하나가 모자랐다.

          안색이 변한 목수는 “내 정성이 부족하니 귀중한 법당을 지을 수 없다”하며 연장을 챙겨

          절을 떠나려 하였다.

          이에 스님이 숨긴 목침을 내놓으며 사죄를 하니 목수가 마음을 돌리고,목침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짜올리는 기술이 신기(神技)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율곡사를‘목침절’이라고도 부른다.

          대웅전의 오른쪽으로 향하면 3개의 암봉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데 그 가운데 암봉이

          새신 바위이다.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 올라 지금의 절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며 절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대웅전에 단청을 할때 단청하는 이가 7일 동안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아서는 안된다고

          하였다는데 그가 안으로 들어간 뒤 아무런 기척이 없으므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스님이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결국 참지 못하고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대웅전 안에는 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다니면서 벽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낀

          새가 단청을 완성하지 못하고 날아가 바위가 되었는데 뒤에 이 바위를 새신바위라고 했다.

          율곡사는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채 지리산의 지맥인 척지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웅전은 1963년 보물 제 374호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 주요문화재 : 보물 제374호 (율곡사 대웅전), 보물 제1316호 (율곡사 괘불)
  


      ▼ 10:59(00h34m) 율곡사 전 우측으로 주차관리실과 화장실이 먼저 조망됩니다.


      ▼ 11:00(00h35m) 대웅전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11:01(00h36m) 율곡사 건물 안내이정표입니다. 앞에는 대웅전이 보입니다.


      ▼ 11:01(00h36m) 대웅전 뜰앞에 있는 약수로 물좋은 정수산의 기를 듬뿍받기위해 한 잔!


      ▼ 11:02(00h37m) 보물제 374호인 율곡사 대웅전 전경입니다.


          (율곡사 대웅전?) 

          보물 제374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규모는 크지 않으며

          보통 흔히 보는 다포집계통의 불전건축이다.

          기둥 위에는 평방(平枋)을 얹고 사면을 돌아가면서 처마 밑에는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의

          공포(栱包)를 받쳤으나, 첨차에는 쇠서[牛舌]가 달리지 않았다.

          이 쇠서를 볼 수 없는 교두식(翹頭式: 圓弧形으로 깎아낸 모양)의 공포는 조선 초기의

          다포집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오래된 수법이다.

          그러나 공포의 상단 부분에서 외목도리를 고정시키고 있는 조각물의 형태를 보아 이

          대웅전의 건립연대는 조선 중기로 내려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의 공포에 통보로 걸렸고 그로부터 좌우 측면의 중앙기둥에 걸쳐서는

          충량(衝樑: 측면의 보)을 배치하였는데, 대들보 위에 걸친 충량의 뒤 끝은 용두형(龍頭形)으로

          조각하였다.

          내부는 마루를 깔고 후벽 중앙에 불단(佛壇)을 만들었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불단 위에는

          정(丁)자형의 처마를 이룬 닫집[唐家]이 있다.


      ▼ 11:02(00h37m) 대웅전 내에 있는 목조아미타 삼존불좌상 설명문입니다.


          (목조아미타 삼존불좌상?)

          나무로 만든 아미타삼존불좌상으로서 가운데에는 본존불인 아미타여래상, 왼쪽에는

          관음보살상,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반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높이 1m 이상의 사람 키만한 규모이다.

          등은 반듯하게 하고 고개는 약간 숙이고 있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아미타여래상은 머리부분에서
육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나발은 촘촘하게 묘사하였다.

          얼굴은 사각 모양이며 눈, 코, 입, 귀가 뚜렸하고 턱이 둥그스름하다.

          목이 짧고 그 아래로 삼도(三道)가 주름 3개로 표현되어 있다. 

          양쪽 어깨에는 대의(大衣)를 걸쳤고 가슴 아래로 군의(裙衣) 자락이 내려와 있는데, 

          옷 주름은 자연스럽고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제1지와 제3지 사이에 구슬을 쥐고 있다.

          오른팔은 어깨부근으로 올리고 있으며 왼손은 반가부좌한 오른발 위에 내려놓고 있다.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아미타여래상과 비슷한 모양인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본존불에 비해 갸름하다.

          관음보살상은 옷의 형태가 오른쪽 어깨에 반쯤 걸친 반단 형식이며, 등 쪽에는 왼쪽 어깨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山淸栗谷寺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


      ▼ 11:02(00h37m) 간밤에 내린 눈으로 대웅전 뜰앞에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힙니다.


      ▼ 11:02(00h37m) 보물 374호인 대웅전 설명안내문입니다.


      ▼ 11:02(00h37m) 보물인 불곡사 괘불탱에 관한 설명 안내문입니다.


      ▼ 괘불탱 사진을 타블로그에서 빌려왔습니다.


      ▼ 11:03(00h38m) 관음보탑기념비입니다.


      ▼ 11:03(00h38m) 대웅전 뜰 앞의 관음보탑 실물 전경입니다.


      ▼ 11:03(00h38m) 관음보탑과 대웅전 전경입니다.


      ▼ 11:06(00h41m) 영봉당(靈영묘할영,峯봉우리봉,堂집당) 전경입니다.

          아래글은 영봉당 주련(柱기둥주,聯잇닿을련)에 걸린 글입니다.    

      영봉 지욱 스님 가르치시되

      계율로써 부처님 행 배우고

      중생함께 왕생정토 원 내며

      선정으로 부처님 마음 따라

      마음서원 행 같이 하라시니

      그 가르침 행함 영봉당이라




      ▼ 11:09(00h44m) 율곡사를 떠나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갑니다.

          등로 입구 바위에 등로를 음각해놓았습니다.

          등로는 현위치 ▷ 새신바위 ▷ 정수산정상 ▷ 내수마을회관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11:14(00h49m) 비는 내리지 않지만 운무에 의한 습한 계곡을 따라 이동합니다.


      ▼ 11:18(00h53m) 새신바위 하부 낙석 위험에 대한 경고문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 11:18(00h53m) 조금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이동하고 있습니다.


      ▼ 11:20(00h55m) 오르막 도중 습지에서 만난 멧돼지 진흙목욕장으로 방금 지나간 듯 보입니다.


      ▼ 11:21(00h56m) 너덜이 널린 오르막을 계속 따라 이동합니다.


      ▼ 11:28(01h03m) 산행시작 약 1시간 만에 만난 운지버섯입니다.


      ▼ 11:29(01h04m) 오르막이 지속 이어집니다.


      ▼ 11:43(01h18m) 거대한 새신바위(鳥神巖)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 11:43(01h18m) 새신암 상부에 새부리 혹은 거북머리 같이 생긴 바위가 조망됩니다.


      ▼ 11:44(01h19m) 요염하게 생긴 소나무를 지나갑니다.


      ▼ 11:44(01h19m) 능선을 따라 새신바위방향으로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 11:49(01h24m) 등로에 짧은 암릉길도 만납니다.


      ▼ 11:49(01h24m) 새신바위를 측면에서 바라본 암봉 전경입니다.


      ▼ 11:51(01h26m) 새신바위 바로 옆 오르막 전경입니다.


      ▼ 11:52(01h27m) 새신바위 측면의 암벽 훈련장 전경입니다.


      ▼ 11:51(01h26m) 산악회에서 부착해 놓은 암벽 훈련장 표식입니다.

          진주지역의 암벽등산 훈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 11:55(01h30m) 새신바위 삼거리 갈림길(↖정수산 정상,↗새신바위 정상)에 설치된

          새신바위의 전설 안내문입니다.


      ▼ 11:55(01h30m) 새신바위 이정표로 새신바위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 합니다.


      ▼ 11:56(01h31m) 새신바위 정상으로 올라가는 회원들 모습입니다.


      ▼ 11:57(01h32m) 새신바위 정상 전경입니다.


      ▼ 11:57(01h32m) 새신바위에서 바라본 황매산 방향입니다. 운무로 조망은 꽝입니다.



      ▼ 12:00(01h35m) 마치 자라목 같이 생긴 바위입니다.


      ▼ 12:06(01h41m) 새신바위를 떠나 정상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곳부터는 곳곳에 잔설을 밟으면서 이동합니다.


      ▼ 12:08(01h43m) 한껏 끼인 운무로 신선놀음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 12:20(01h55m) 이곳부터는 잔설이 제법 많이 쌓여있습니다.


      ▼ 12:26(02h01m) 운무가 잠시 걷힌 사이에 정수산 정상이 조망됩니다.


      ▼ 12:27(02h02m) 척지고개 방향으로 내리막 이동 중 송전탑을 지납니다.


      ▼ 12:29(02h04m) 척지고게가 조망되는 지점에서 잣나무숲을 지나갑니다.


      ▼ 12:29(02h04m) 척지고개 사거리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중식을 하기로 합니다. 

          진행방향에서 ←척지마을 방향, ↑정수산 정상, →도성사 방향입니다.


      ▼ 13:16(02h51m) 약 45분간의 점심시간을 가진후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 13:33(03h08m) 정상 이동길중 만나는 철조망, 나중에 알고보니 경남목장 경계부지였습니다. 


      ▼ 13:40(03h15m) 정상이 가까워오자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 13:42(03h17m) 척지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납니다.


      ▼ 13:45(03h20m) 산행시작 3시간20분만에 첫번째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 13:45(03h20m) 부산선운산악회에서 만들어 세운 정상석 후면입니다.


      ▼ 13:47(03h22m) 정상석을 떠나 또 다른 두번째 성상석으로 이동합니다.


      ▼ 13:50(03h25m) 능선 이동 등로에는 많은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 13:55(03h30m) 약 10분 정도의 이동후 만나는 또다른 정상석 전경입니다. 


      ▼ 13:55(03h30m) 산청 산사랑산악회에서 세운 또다른 두번째 정상석 후면입니다.


      ▼ 13:56(03h31m) 정상을 지난 지점에 지리산 천왕봉 조망터가 있었지만 운무로 꽝이었습니다.


      ▼ 13:56(03h31m) 정상을 떠나 하산길에 접어듭니다.


      ▼ 13:58(03h33m) 전망대이지만 운무로........


      ▼ 13:58(03h33m) 눈 쌓인 하산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습니다.


      ▼ 14:03(03h38m) 하산길에 만난 등로상의 휴식시설입니다.


      ▼ 14:12(03h47m) 내수마을 하산 갈림길을 지나갑니다. 우리는 차황마을 방향으로.....


      ▼ 14:21(03h56m) 정수지맥 탐방객들이 붙여놓은 각 산악회의 리본입니다.


      ▼ 14:35(04h10m) 눈 쌓이고 운무 자욱한 하산길이 이어집니다.


      ▼ 14:39(04h14m) 하산길인 음지쪽에는 잔설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 15:01(04h36m) 이곳으로부터는 따뜻한 날씨로 눈이 완전히 녹고 없었습니다. 


      ▼ 15:20(04h55m) 경남 목장을 거쳐 콘크르트 포장도로로 이동합니다.

          당초 경남목장을 우회하는 등로가 있었는데 지나쳐버려 목장 사유지로 진압하게되어

          목장주인에게 항의를 받았습니다.

          목장 진입시 등로를 잘 확인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 15:34(05h09m) 철수마을 버스정류소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입니다.


      ▼ 15:34(05h09m) 철수마을 품고있는 효렴봉 전경입니다.


      ▼ 15:34(05h09m) 철수마을내에 있는 효산서원 표시석입니다.


          (효산서원(孝효도효,山뫼산,書글서,院집원)?)

          이곳은 김상례(金商禮)의 유적지(遺蹟址)이다.

          당시 홍경래난(洪景來亂)의 여파로 속세를 떠나 산골에서 쓰라린 고통과 험운(險韻)을

          겪어가면서도 어버이를 섬기며 숭조 의념이 남 달라, 전대(前代)의 관망(冠網)을 매듭짓고

          자연과 풍영(風詠)을 벗삼아 초야에 묻혀 살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는 순결한 위인(偉人)이

          살아온 곳이다.

          이때 잉승(仍承)된 사문(斯文)으로, 언제나 변함없는 가범(家範)과 예절(禮節)이 완연

          (完然)하고 정민(貞敏)함에 금세(今世)에 인감(人鑑)이 되는 본손 세환(世煥)이 유림의

          후원(後援)에 힘입어 사원(祠院)을 준성(竣成)하여 삼현(三賢)을 모시고 향예(享禮)하고

          있다.

          상촌선생(桑村先生)은 누조(累祖)에 걸쳐, 안동옥계(安東玉溪) 인계타양(仁溪陀陽)

          화산서원(花山書院) 영동각계에 충효사(忠孝祠) 초강서원(草江書院) 그리고, 보은병산서원

          (報恩屛山書院) 등지에서 봉향 하였는데 고종(高宗) 때 철원령(撤院令)에 의해 훼철당하고

          지금 충북음성에 지천서원(知川書院) 안동에 타양서원(陀陽書院)과 충북 이류면에 팔봉서원

          (八峰書院)에 향예하고 있으나 선생의 태생(胎生)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고역(故域)에는

          우모지소(寓慕之所)가 없어 본손으로서 고민만 거듭되는 세월을 보내다가 당세(當世)에

          이르러 교남일우(嶠南一隅)인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에 창건(創建)하여 봉사하고 있다.


      ▼ 15:35(05h10m) 산청군 차황면 철수마을에 대한 설명입니다.


          (차황면?)

          차황면은 황매산철쭉이 군락해 있는 아름다운 고장으로서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의

          요람지이며, 광역친환경농업단지가 조성되어 자연순환농법으로 생산된 "차황메뚜기쌀",

          "사과", "곰취", "취나물" 등이 유명하다.

          매년 5월이면 산청군의 대표 축제이자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유망축제인 《산청한방약초축제》,

          《산청생초 함박꽃축제》와 더불어 전국 최대의 철쭉이 지천에 널려 그 아름다운 자태와

          강렬함을 드러내는 이곳 산상화원 황매산에서 《황매산철쭉제》를 개최하고 있다.


      ▼ 15:35(05h10m) 철수마을 입구에 있는 관모암(冠갓관,帽모자모,岩바위암)입니다.

          冠帽岩(관모암):모자 모양의 바위

          石川 尹 公 之 舒嘯所(석천 윤 공 지 서소소):석천 윤택익이 휘파람을 부는 곳이라는 뜻으로

          석촌 윤태익은

          孫 琪洙 孔洙 致洙 容洙 鳳洙 景洙 暎洙(손 기수 공수 치수 용수 봉수 경수 영수) 등의    

          6대조이며 이들이 지나가다가 1950년경에 새겼다고 함.        

  철수마을 앞에서 오늘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