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만차를 달리던 인원이 이번에는 반차도 되지 않았다.
월말에 전날 비바람과 장거리 이동에 따른 부담일까?
어쨌던 23명의 인원으로 전남 강진으로 향했다.
1. 산행시간 : 10:51 ~ 14:48(3시간 56분)
2. 이동 거리 : 6.4㎞
3. 평균 속도 휴식 포함 : 1.62㎞/h
휴식 제외 : 1.94㎞/h
4. 고도 : 406m ~ 30m(376m)
5. 오르막 거리,속도 : 2.59㎞, 1.4㎞/h
내리막 거리,속도 : 2.95㎞, 2.03㎞/h
6. 휴식 횟수, 시간 : 1회, 39분
▼ 옥련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옥련사의 유래)
옥련사(玉蓮寺)는 전남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 기룡마을 뒤 만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절이다.
1947년이후 1951년 11월 능화(能華)스님과 인근 신도들의 노력으로 백련사(白蓮寺)
소속이던 송광암(松廣庵) 터에 초가 집 2칸을 지어 강진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淨水寺)
에서 목조 여래좌상 1구를 옮겨와 봉안하면서 법등을 밝혀오고 있다.
옥련사는 근래에 조성된 사찰이어서 많은 유물은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옥련사를 처음 개창하면서 정수사에서 옮겨온 목조불상에서 1991년 5월 복장이
확인되었다.
복장을 확인한 결과 1684년명의 불상조상기문(佛像造像記文)과 여러권의 경전류를
비롯하여 복장물이 나왔다.
사찰 경내에는 층층이 석축을 쌓았고, 1684년 제작된 목조여래좌상과 연대불명의 석조불좌상
등의 문화재와 1981년에 중건한 대웅전 삼성각, 용화전 및 1991년에 건립한 옥련선원, 종각
등이 있다.
넓은 경내는 아니지만 옥련선원에서는 옥련사 불교교양대학을 운영하며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 옥련사 주차장의 벚꽃은 아직 필 생각을 않고 있었습니다.
▼ 옥련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강진 읍내 전경입니다.
▼ 옥련사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중에 메트로님입니다.
▼ 옥련사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중에 그린비님입니다.
▼ 옥련사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중에 천풍지인님/직장일로 오랫만에 참석하셨습니다.
▼ 옥련사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중에 남성님입니다.
▼ 옥련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임천저수지/곡창지대의 수원 공급원으로 규모가 제법 컸습니다.
▼ 옥련사 들머리로 오르는 입구 전경입니다.
▼ 옥련사 주차장에서 출발 직전 대장님으로부터 주의 사항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 출발 직전 주의 사항을 경청하고있는 옥구슬님과 코발트색바다님입니다.
▼ 옥련사 방향을 길을 잡고 출발하고 있는 회원님들입니다.
▼ 옥련사 개창조인 능화 스님의 사리탑 전경입니다.
▼ 옥련사 전경/근래 조성된 사찰이라 옛 멋은 거의 없습니다.
▼ 옥련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갑니다.
▼ 처음엔 푹신한 숲길이 이어집니다.
▼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생된다는 삼나무 숲을 지납니다.
▼ 옥련사에서 시작하여 옹달샘 100m정도가 남았습니다.
▼ 식수로 사용하기는 조금.... 그러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도룡뇽 알들이 있었습니다,
▼ 옹달샘에 있는 도룡뇽 알들 전경입니다.
▼ 필봉 150m를 남겨두고는 코가 땅에 닿일듯한 급경사가 이어집니다.
▼ 산수유와 닮은 생강꽃이 만개하여 있고....
▼ 강진벌판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 곳곳에 꽃잎을 터트린 진달래도 있었지만 꽃샘추위로 거의가 이렇게 몽오리 상태였습니다.
▼ 생강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 강진만의 갯펄과 푸른 평야가 어우러집니다./멀리 높게 보이는 산이 두륜산 같습니다.
▼ 첫봉우리인 필봉에 도착하여 바라본 강진만 전경입니다.
▼ 우리가 나아갈 능선이 연이어 펼쳐집니다.
▼ 필봉에서 내려서니 활석생산 광산인 강진광업으로 가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 다시 한 봉우리를 오르면서 바라본 강진읍과 필봉 전경입니다.
▼ 조금 오르니 칼로 반듯하게 자른 것 같은 절벽이 나타나면서 위험지역으로 로프가 쳐저 있습니다.
▼ 깎아지른 듯한 칼봉 앞에서 벌교꼬막님/아래를 내려다 보니 다리가 후덜거린다고합니다.
▼ 절벽과 어우러진 임천저수지 전경입니다.
▼ 곳곳에 만개한 생강꽃들이 산야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습니다.
▼ 우리가 진행해야할 능선길로 계속해서 암릉길이 이어집니다.
▼ 지나온 능선을 되돌아 보니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육안으로 볼 때는 거북바위같았는데....
▼ 암릉위에 올라선 늘바람 산행위원장님/나는 오금이 저려 오를 엄두를 못내었습니다..
▼ 우리가 지나온 능선길을 뒤돌아 봤습니다.
▼ 앞서 오른 벌교 꼬막님과 천풍지인님이 암릉에 올라 손짓하고 있습니다.
▼ 바위 생김새가 멋집니다.
▼ 암릉에 올라 포즈 취하는 붉은노을님입니다.
▼ 암릉에서 포즈 취하시는 지연님입니다.
▼ 같은 장소인데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됩니다.
▼ 깃대봉 오르는 길에 동질감(?)을 가진 새 분이.....바람처럼님, 꽃게님, 지로님(시계방향)
▼ 깃대봉 직전 전망대에 먼저 오른 옥구슬님과 오랜만에 참석한 범어사님이십니다.
▼ 앞에 보이는 암릉 오른쪽을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 암릉 오른쪽 밧줄을 이용하여 오르고 있습니다..
▼ 암릉을 오른후 전망대에서 꽃게 총무님입니다.
▼ 두 분이 같이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촬영 대상(?)은 전혀 다릅니다.
▼ 전망대에서 지나온 암릉길을 되돌아 봤습니다.
▼ 다시 암릉길을 올라야 합니다. 앞에 선등하고 있는 회원님들 보입니다.
▼ 암릉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진만과 멀리 두륜산 방향을 조망합니다.
▼ 암릉으로 이루어진 지나온 능선길을 조망합니다.
▼ 깃대봉 한 고개 못미쳐 전망대에서 바람처럼님입니다.
▼ 만덕산 직전 전망대를 배경으로 여행작가님입니다.
▼ 만덕산 직전 전망대를 배경으로 지로 후미대장님입니다.
▼ 만덕산 직전 전망대를 배경으로 꽃게 총무님입니다.
▼ 만덕산 직전 전망대를 배경으로 천풍지인님입니다.
▼ 사실 위험한 바위 위에 서 있는 만수님이지만 표정이 전혀 위험한 곳 같지 않습니다. 하하
▼ 바람처럼님 자칭 생각하는 ???? ㅋㅋㅋㅋ
▼ 지로님도 바람처럼님을 따라서 생각하는 ???인가?
▼ 바람처럼님과 지로님이 앉았던 바위 형태가 꼭 의자 같이 생겼습니다.
▼ 멀리 강진읍과 필봉을 배경으로 붉은노을님입니다.
▼ 멀리 두륜산과 강진만을 배경으로 바람처럼님입니다.
▼ 바위 전망대에서 벌교꼬막님/배낭에는 무거운 쭈꾸미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 같은 장소에서 바람처럼님입니다.
▼ 중식 시간 중에 멀리 캐나다에서 일시 귀국한 범어사님이 오랜만에 참석하여 한 컷!
▼ 중식후 아니 온 듯 깨끗이 정리를 하고...
▼ 중식 장소 뒷편의 암릉 전경입니다.
▼ 만덕산 깃대봉에 도착했습니다.
▼ 정상석에서 붉은노을님입니다.
▼ 정상석에서 지로 후미대장님입니다.
▼ 정상석에서 꽃게 총무님입니다.
▼ 정상석을 조금 지나 깃대봉 삼거리 이정표에 도착했습니다.
▼ 앞에 보이는 암릉이 바람재를 거쳐 용문사로 이어지는 암릉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헬기장 방향으로 진행해야합니다.
▼ 용문사 방향의 암릉을 배경으로 붉은노을님입니다.
▼ 헬기장 지나 하산길에서 본 백련사 전경/주위에 동백나무 숲으로 울창합니다.
우리는 아래보이는 오른쪽 차밭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이동했습니다.
▼ 하산길에 스님들의 참선 수행장소인 토굴 쪽으로 이동합니다.
▼ 토굴에 들렀으나 참선 장소로 일반인들 출입금지 구역이었습니다.
▼ 양지 바른 곳에 핀 남산제비꽃입니다.
▼ 토굴을 들러보지 못하고 문앞에서 잠시 훑어보고 다시 되돌아 나오고 있는 회원님들입니다.
▼ 이윽고 백련사에 도착했습니다.
(백련사 개략)
▼ 백련사 약수로 목을 축이고 있는 회원님들
▼ 백련사 입구에 있는 오래된 배롱나무와 팔자 좋은 백구 한 마리!
▼ 절 밥을 오래 먹어서인지 백구도 스님을 닮아가는 건 아니겠고.....
▼ 입구에서 만경루 밑으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풍경소리가 귀를 황홀하게 만들었습니다.
▼ 백련사의 전경입니다.
▼ 백련사 대웅전 전경입니다.
▼ 백련사 대웅전 앞에서 그린비님입니다.
▼ 백련사 대웅전 앞 뜰에서 남성님입니다.
▼ 백련사 대웅전 앞에서 붉은 노을님입니다.
▼ 백련사 대웅전 앞에서 지연님입니다.
▼ 절을 찾는 손님의 숙소인 요사채같기도 한데....
▼ 백련사 사적비(보물1396호) 설명현황입니다.
▼ 백련사 사적비 전경입니다. 오래되어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 새롭게 만들어진 동산당 혜월대종사 비인 것 같습니다.
▼ 뒷 뜰의 동백들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 절집 앞마당에 핀 개불알꽃(봄맞이꽃) 전경입니다.
▼ 절집 앞마당에 핀 제비꽃들입니다.
▼ 대웅전 뒷마당에서 바라본 강진만과 멀리 두륜산 전경입니다.
▼ 대웅전 뒷뜰에서 지연님입니다.
▼ 대웅전 뒷뜰에 홍매화가 멋지게 만개해 있었습니다.
▼ 대웅전 뒷뜰 배롱나무 앞에서 지연님입니다.
▼ 홍매화가 피어있는 대웅전 뒤에서 강진만과 두륜산을 배경으로 지연님입니다.
▼ 백련사를 나오면서 범종루와 만경루 전경입니다.
▼ 백련사를 나와서 오른쪽으로 다산초당 가는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 다산 초당 가는 길에 동백꽃이 만개되어 있는 곳에서 꽃을 즐기는 회원님들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 만개한 동배꽃 앞에서 크로바님, 꽃게님, 다래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앞에서 지연님, 꽃게님, 크로바님, 다래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앞에서 크로바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앞에서 남성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앞에서 폼 잡고 계시는 바람처럼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앞에서 천풍지인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앞에서 지연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앞에서 붉은노을님입니다.
▼ 만개한 동백꽃 군락지를 지나자 나타나는 차밭 전경입니다.
▼ 차밭에서 천풍지인님입니다.
▼ 차밭에서 크로바님입니다.
▼ 차밭에서 지연님입니다.
▼ 차밭에서 꽃게님과 붉은노을님이 마치 연인같이......나는 사진 책임 못집니다. 하하
▼ 강진만과 두륜산이 어우러진 차밭 전경입니다.
▼ 차밭에서 강진만을 배경으로 붉은노을님입니다.
▼ 백련사 뒤쪽 우리가 내려온 능선길 전경입니다.
▼ 여기에도 연리목이.....
▼ 차밭을 지나 다산초당을 향하는 계단길 전경입니다.
▼ 해남에서 서울까지 연결되는 삼남길의 일부를 우리가 이동합니다.
▼ 해월루 가는 삼거리길 이정표입니다.
▼ 해월루 가는 삼거리 이정표에서 메트로님과 크로바님입니다.
▼ 해월루 가는 삼거리길에서 조금 지나면 깃대봉으로 올라가는 삼거리길을 만나고
우리는 다산초방 방향으로..
▼ 삼나무의 이상한 용트림을 지나고....
▼ 천일각과 백련사 가는 길에 대한 설명입니다.
▼ 천일각 전경입니다.
▼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 동암 전경
정약용(丁若鏞, 1762년 음력 6월 16일, 경기도 광주[1] ~ 1836년 음력 2월 22일)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2]이며, 천주교 세례명은 요한,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유배 생활 중 대부분이 저술된 《여유당전서》[3]가 있다.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과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1762년 음력 6월 16일에 경기도 남양주시 마재에서 태어난 후 진주 목사를 지낸 부친 정재원
(丁載遠)에게서 학업하였다.
정재원은 첫 부인 의령 남씨와 사이에 큰아들 약현을 낳았고, 둘째 부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대손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으니 약용은 넷째
아들이다.
일곱 살 때에 '산'이라는 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는데,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이라는 책을 내었다.
9세 때 모친상을 당해 맏형수 경주 이씨와 서모 김씨의 손에서 자랐다.
어릴 적에 천연두에 걸렸으나, 왕족 출신의 명의 이헌길의 진료로 살았다.
정약용은 훗날 이헌길의 《마진기방》을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홍역 치료서 《마과회통》을
집필하고, 이것은 현대 의학이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조선의 생명들을 구한다.
또한 정약용은 이헌길의 생애를 다룬 〈몽수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1776년에 승지 홍화보(洪和輔)의 딸 풍산 홍씨와 혼인하여 6남 3녀를 낳았으나 생전에
4남 2녀를 잃었다.
누님의 남편으로 여섯 살 위인 이승훈, 큰형의 처남이며 여덟 살 위인 이벽과 친하게 지내면서
학문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과 매부 이승훈을 만났다.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었으며,
성호 이익(李瀷, 1629~1690)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 인물이었다.
이들에게서 성호의 학문을 접하면서 실학 사상의 토대를 다졌다.
▼ 다산 정약용 유적지 동암에서 남성님입니다.
▼ 다산 정약용 유적지 동암에서 코발트색 바다님입니다.
▼ 다산 정약용 유적지 동암에서 지연님과 진이님입니다.
▼ 다산과 초의 선사, 소치, 추사에 대하여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는 조선 후기의 대선사로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립한
분이다. 그래서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소치 허련(1809∼1892), 그리고 평생의 친구되는 추사 김정희
(1786∼1856)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는데, 다산은 <동다기(東茶記)>를 쓰고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으며 우리 토산차를 예찬하였다.
초의선사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집약되는데 특히,
그의 다선일미 사상은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는 것이다.
즉,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40여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묘한 진리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 다산 초당 전경입니다.
▼ 다산 초당 부근 연못에서 지연님입니다.
▼ 다산 초당의 서암에 대한 설명입니다.
▼ 다산 초당내에 걸려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영정 전경입니다.
▼ 다산 초당 등 다산 유적에 대한 설명입니다.
▼ 다산 초당을 내려와 마을 어귀에 걸려있는 남도 유배길 현판입니다.
▼ 마을을 벗어나 주차장 가는 길에 우리의 옛날 우물(둥그런 우물)과 빨래터(사각 우물) 전경입니다.
▼ 산행을 마감할 즈음 매화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 오늘의 산행길은 옥련사 ~ 필봉 ~ 깃대봉 ~ 헬기장 ~ 백련사 ~ 다산초당 ~ 다산 유물전시장
순으로 하루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 뒷풀이 시간이 남아 벌교읍내에 있는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았습니다.
▼ 아래의 유적들은 조정래선생의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유적들입니다.
▼ 태백산맥 유적지를 관람한 후 잠시 시간을 내어 쑥을 캐는 회원님/ 누군지는 알아서 판단????
▼ 벚꽃은 아직 이런 상태인데 즐거운 산행길이었습니다.
적은 인원에 수고하신 운영진들과 같이 산행하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문학관 입장료 및 뒷풀이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벌교꼬막님께 감사드리며,
귀가길에 오랜만에 캐나다에서 귀국하여 얼음과자를 선사해 주신 범어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호남산 > 호남.가 ~ 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02.16 순천 금전산 ~ 낙안읍성 (0) | 2013.06.17 |
---|---|
2013.01.05 남덕유산 설화산행 (0) | 2013.06.17 |
2012.03.17 해남 달마산 (0) | 2013.06.14 |
2012.01.07 덕유산(안성탐방센타 ~ 삼공리) (0) | 2013.06.14 |
2011.07.16 덕유산 송계계곡 (0) | 2012.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