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행의 묘미는 누가 뭐래도 산행 후에 시원한 계곡물 속으로 몸을 맡기는 맛이
최고의 재미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가뭄이 심한 지역을 피해 상대적으로 올여름 비가 좀 많았던
경북 상주/문경의 도장산(道길도,藏감출장,山뫼산, 827.9m)과 하산길에 있는 쌍용계곡
(雙둘쌍,龍용용,溪시내계,谷골곡))을 찾았습니다.
도장산은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와 경북 상주시화북면 용유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북 서북부 백두대간 자락에 숨은 명사이라고 하고, 도장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속리산 주능선과 청화산, 시루봉 그리고 멀리 희양산의 조망이 빼어난 산행지입니다.
씽용계곡은 속리산 동쪽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물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기전 동암천
상류쪽인 도장산 기슭 4km에 걸쳐 펼쳐 놓은 계곡으로 태백준령에서 내륙 깊숙히
서남쪽을 향해 달려온 소백산맥이 마지막 힘을 모아 빚어놓은 비경의 계곡입니다.
도장산의 기암괴석과 층암 절벽은 물론이고, 도장산 사이를 흐르는 쌍용계곡의 옥수가
빚어놓은 계곡의 비경은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자연의 아름다운 조각품들이고
이 비경속에서 한여름의 더위를 보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리산 청학동, 가야산 만수동과 함께 조선 3대 길지에 속하는 속리산 우복동이 있다고
알려져 왔으나 구체적으로 알려진 곳은 알 수 없었지만, 병화가 침범할 수 없는 상상속의
이상향의 고장인 우복동(牛소우,腹배복,洞마을동)은 마치 소의 베속 안처럼 생겨
사람들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지형을 말하므로, 이곳 사람들은 속리산이 감싸고 있는
화북면이 그 우복동이라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문경에서 상주로 들어서는 첫번째 마을 이름이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우복마을'
로 불리고 있습니다.
더우기 조선조 택리지의 저자로 유명한 이중환 선생의 호가 청담(淸맑은청,潭못담) 혹은
청화산인(淸맑을청,華빛날화,山뫼산,人사람인)이라고 불리운 것은 자신이 지은 택리지란
책 속에 '우복길지(牛소우,腹배복,吉길할길,地땅지)는 청화산(淸華山)에 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청화산 이웃에 있는 이곳 화북면이 상상속의 이상향의 고장인 우복동이
아닌가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하고,
조선조에는 이곳이 이상향의 고장인 우복동이라 알려져 많은 민초들이 몰려들어 커다란
마을을 형성했다고도 합니다.
도장산이 품고 있는 심원사는 현재 초라하게 유지되고 있어도 유서깊은 천년고찰로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고승 윤필과 의상 두 대사가 머물던 절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64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날 산행은 높은 습도와 무더운 날씨로 힘든 산행에다, 초입 길을 잘못들어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체력이 소진되는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하산후 시원한 계곡물에서 열기를 식힌 후, 인근 인심 좋은 맛집에서 촌닭백숙으로 하루의
피로를 회복하는 멋진 시간으로 마감했습니다.
(도장산?)
도장산은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와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의 경계를 이루는 숨은
명산이다. 경북 서북부에 백두대간 자락의 마지막 비경지대다.
이곳은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교통이 아주 불편하다 하며, 빼어나게 아름다운 고을에서
사는 주민들 은 밤낮으로 대하는 풍경에 신경이 둔화되어 산골 풍경이 모두 그러려니 할 테고
또, 도심지에서 등산을 즐기는 이들도 문경이라고 하면 희양산과 주흘산 정도의 명산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문경시와 상주시 사이에 숨어 있는 도장산은 비경지대인 쌍룡계곡과 더불어 앞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유는 「택리지」에도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에 화양구곡과 쌍용·용유계곡이 있고
또한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에 경치 좋고 사람살기 그만인 복지가 있다"라는 문구가 있다는
사실이다.
문경시에서 관광코스는 문경새재, 봉암사, 선유계곡, 용추계곡, 대정숲에 이어 마지막 명소로
쌍룡계곡을 자랑하고 있고, 상주시에도 동관 대궐터, 장각폭포, 칠층석탑, 견훤산성, 오송폭포,
오량폭포에 이미 마지막 비경인 용유폭포(쌍룡계곡)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도장산 쌍룡계곡으로 가는 길은 문경시청이 소재한 첨촌에서 농암행 버스를 옮겨 타고 새롭게
포장된 구불구불한 뭉어리재를 넘으면 대정숲에 이른다.
이곳에서 2㎞ 거리에 천연기념물 292호로 지정된 삿갓모양의 반송을 감상하고 말끔히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반은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계곡에는 풍파에 힘겨워 감자모양의 너럭 바위 위에 패어 내린 물길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옥수가 세차게 흘러내리며 그 아래로 아름다운 담을 이루고 있다.
산행이 시작되는 심원골 입구는 너럭 바위에서 담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양쪽으로 용을
닮은 두 개의 기암이 하류 쪽으로 엎드린 듯 자리하고 있는데 남쪽에 자리한 바위가 암룡이고
북쪽에 자리한 두툼한 바윗가 숫룡이다.
담 아래로 뛰는 듯한 암룡과 숫룡을 닮은 기암이 있는 너럭 바위는 백척 단애와 협곡 초입을
가로 막는 기암에 10여 그루의 노송이 분재인 듯 뿌리를 내리고 있어 보기드문 절경이다.
심원골로 들어서 출렁다리를 놓아진 계곡을 건너면 산길이 뚜렷하다.
일명 저승골로 불리는 심원골도 예사 계곡이 아니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을 일컫는 말인 너북등을 뒤로 하고 가팔라지는 산길을 따라 1㎞
들어서면 오른쪽 깊은 계곡 아래로 15m 됨직한 수직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휘도는 숲터널 산길을 따라 10분 거리에 이르면
심원사가 나타난다.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등 잡목숲이 사찰 둘레를 감싸고 울창한 짙푸른 산등성이가 잡목숲
뒤로 병풍을 둘러친 듯한 심원사는 비록 초라한 건물이지만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심원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고승인 윤필과 의상대사가 있었던
사찰이라 전해진다. 이 사찰은 1958년 화재로 전소된 후 1964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심원사에는 옛날 윤필과 의상 두 대사가 청화산 기슭 용추 속의 용왕 아들인 동자승에 글을
가르친 후 동자승의 간청으로 용추 속 용궁으로 안내되어 용왕으로부터 극진한 예우와 함께
병증, 월겸, 월부, 요령 등의 선물을 받고 돌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심원사를 뒤로 하고 남쪽 작은 계곡으로 들어서면 폐쇄된 표고밭 터에서 산길이 뚝 끊어진다.
그러나 표고 밭터에서 서쪽 지능선 위로 올라서기만 하면 뚜렷한 능선길이 다시 나타난다.
남쪽으로 뻗어 오른 지능선길은 햇살이 송림위로 번쩍이고 소나무 아래 서면 온몸에 송진내가
묻어 나는 제법 가파른 지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절도 천마공행의 서정을 만끽하게 되는
도장산 정상이다.
1979년에 재설한 삼각점 옆에 문경시청 등산회 표지기가 나무기둥에 펄럭이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과연 경탄해 마지 않을 수 없다.
능선 서쪽 멀리로는 속리산이 삐죽 삐죽한 봉우리들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고 북으로는
청화산과 시루봉이 쌍룡계곡을 감싼 듯 한 자태로 건너다 보인다.
속리산과 청화산 사이로는 백악산·도명산·군자산 줄기가 송면 계곡과 함께 시야에 와 닿고
고개를 돌려 청화산 오른쪽을 보면 둔덕산 너머로 희양산과 백화산·주흘산·운달산이 고개를
내민 듯 바라보인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내서리 쌍룡마을로 내려올 수도 있고 능선을 다라 조금 내려오면
삼거리에서 심원사 아래 계곡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그 외 하북면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물어 뚜렷한 길이 없는 것이 흠이다.
앞으로는 이 쌍룡계곡에 도로가 완공되면 드라이브 코스로 더욱 각광 받을 것이다.
(산행개요)
1. 산행날짜 : 2017.08.12(토) 날씨 : 매우 맑음
2. 산행시간 : 10시30분 ~ 16시00분(약 5시간30분) - 알탕 시간 포함됨
3. 이동, 도상거리 : 7.37km, 7.02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1.48km/h
휴식제외 : 2.11kn/h
5. 고도 : 847m ~ 246m(601m) - 정상 높이가 828.5m이므로 GPS오차 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2.32km, 1.41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5.07km, 2.18km/h
8. 휴식횟수, 시간 : 4회, 1시간 20분
9. 산행 코스
병천교에서 상주쪽으로 100m정도 이동하여 인삼밭 농로 ▷오미자밭 ▷쌍묘지 ▷묘지 뒷길
▷ 숲속 오솔길 ▷능선길 만남 ▷ 헬기장 ▷ 화북중학교 갈림길 ▷ 서재 갈림길 ▷도장산
▷ 705m 삼거리봉 ▷ 심원사 ▷ 용추교
▼ 당초 산행 코스 지도입니다.
용유교 부근에서 산행 시작하여 묘 갈림길에서부터 길을 잘못들어 헬기장까지 가파르게
짐승 다니는 길로 한참을 수풀을 헤치고 올랐습니다.
▼ 위성도의 산행궤적 우측으로 하늘색 선은 백두대간길입니다.
속리산에서 좌측으로 빠지는 하늘색 선은 한남금북정백길입니다.
도장산 부근에 이름있는 산들의 명성으로 도장산은 덜 알려져 있는 산입니다.
▼ 위성도에 나타낸 산행궤적입니다.
▼ 등고선 지도에 나타낸 산행궤적입니다.
▼ 해발고도표입니다.
▼ 10:30 용유마을 뚱보 쉼터 입간판 부근 공터에 전용버스가 도착했습니다.
▼ 10:33(00h03m) 급한 경사길을 올라야 하기 떄문에 가벼운 스트레칭을 합니다.
▼ 10:34(00h04m) '닭의장풀'입니다.
▼ 10:34(00h04m) '왕고들빼기'입니다.
생 잎을 삼겹살과 같이 식생하기도 합니다.
▼ 10:36(00h06m) 하차지점에서 상주방향으로 약 100m 뒤로 이동하면 들머리가 있습니다.
▼ 10:36(00h06m) '박주가리'입니다.
▼ 10:37(00h07m) 건물 뒷편으로 들머리인 포장농로를 따라 이동합니다.
▼ 10:37(00h07m) 이동농로 좌측으로 인삼 재배밭이 전개됩니다.
▼ 10:39(00h09m) 인삼재배밭 끝까지 이동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 10:40(00h10m) 밭에는 오미자도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 10:41(00h11m) '달맞이꽃'입니다.
밤에 활짝 피었다가 낮에는 꽃잎을 오므리고 있습니다.
▼ 10:42(00h12m)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됩니다.
▼ 10:43(00h13m) 첫묘지를 만납니다.
▼ 10:45(00h15m) 야트막한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 10:47(00h17m) 이 묘지에서 좌측방향으로 길을 찾아야 하는데 묘지 뒷길로 접어들었더니....
▼ 10:53(00h23m)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짐승들이 다니는 길로 접어듭니다.
▼ 11:27(00h57m) 그래도 수풀 우거진 소롯길의 형태는 나타납니다.
▼ 11:28(00h58m) 잠시 열린 조망으로 속리산 주능선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 11:28(00h58m) 가운데 뾰죡 솟은 곳이 문장대 입니다.
▼ 11:45(01h15m) 제대로 된 등로 없는 길이 지속 이어집니다.
▼ 11:48(01h18m) 능선을 만나자 도장산 방향의 이정표가 하나 서 있습니다.
▼ 11:48(01h18m) '원추리'입니다.
▼ 11:59(01h29m) 이정표를 만났지만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 12:15(01h45m) 멀리 속리산 주능선 전경입니다.
▼ 12:16(01h46m) 산행 시작 1시간 46분만의 우여곡절 끝에 742.5봉 정상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당초 정상적인 등로로 올라왔으면 심원사길 방향에서 올라와야 했었는데 ,
우리는 우복동 방향에서 접근되었습니다.
▼ 12:16(01h46m) 헬기장 전경입니다.
▼ 12:17(01h47m) 헬기장에 설치되어있는 도장산 등산 안내도입니다.
▼ 12:18(01h48m) 헬기장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 전경입니다.
좌측 높은 곳이 천왕봉이고 우측 뾰족한 곳이 문장대입니다.
▼ 12:18(01h48m) 문장대를 당겨서 찍었습니다.
▼ 12:18(01h48m) 헬기장을 떠나 도장산 방향으로 이동중에 중식시간입니다.
▼ 12:18(01h48m) 중식 장소에서 바라본 진행해야할 좌측 봉우리 도장산 전경입니다.
▼ 13:04(02h34m) '원추리'입니다.
▼ 13:04(02h34m) '돌양지꽃'입니다.
▼ 13:05(02h35m) 중식장소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과 아래 화북면 소재지 전경입니다.
▼ 13:07(02h37m) 약 40여분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도장산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13:09(02h39m) 경북 상주시 화북면 소재지 전경입니다.
▼ 13:09(02h39m) 멀리 백악산 방향 전경입니다.
▼ 13:11(02h41m) 화북 중학교 방향 삼거리입니다. 우리는 도장산 방향으로....
▼ 13:12(02h42m) 멋진 홍송들이 이동길에 마중나와 있습니다.
▼ 13:20(02h50m) 도장산 가는길은 마지막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걷기 좋은 능선길입니다.
▼ 13:20(02h50m) 도장산은 크게 몇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각 방면으로 직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 13:23(02h53m) 이동길은 노송들로 그늘길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 13:27(02h57m) '운지버섯'입니다.
▼ 13:47(03h17m) 도장산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입니다.
▼ 13:52(03h22m) 도장산 전위봉에 설치된 도장산 등산 안내도입니다.
▼ 13:53(03h23m) 소나무 사이로 속리산이 조망됩니다.
▼ 13:53(03h23m) 서재 삼거리 갈림길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우북동 방향에서 도장산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13:53(03h23m) 상세 이정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 13:55(03h25m) 산행시작 3시간25분만에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 13:55(03h25m) 정상 전경입니다.
▼ 14:04(03h34m) 상수리 나무에 꽃같이 피었는데.....
▼ 14:05(03h35m) '신감채'입니다.
▼ 14:06(03h36m) 정상석에 설치된 삼각점 설명입니다.
▼ 14:06(03h36m) 정상에 설치된 삼각점입니다.
▼ 14:06(03h36m) 정상에서 바라본 희양산(98m) 전경입니다.
(희양산?)
희양산은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피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 하였다"고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태백산을 일으켰던 백두대간 줄기는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휘어지면서 이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산세를 이뤄 놓았고, 이들 산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이 바로 희양산이다.
남쪽 자락에는 음력 초파일을 전후한 약 한 달 가량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조계종 특별수도 도량인 봉암사가 있다.
▼ 14:06(03h36m) 희양산을 당긴 모습인데 산 자체가 거대한 암봉으로 보입니다.
▼ 14:07(03h37m) 좌측으로 청화산 그리고 우측으로 시루봉 전경입니다.
▼ 14:07(03h37m) 청화산 전경입니다.
(청화산(靑華山)?)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과 의성군 구천면, 군위군 소보면에 걸쳐 있는 산.
청화산(靑華山)은 『일선지(一善誌)』에 화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청화산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북쪽 골짜기 산 아래 청운동마을과 남쪽 산 아래
신화동마을, 동쪽에 화실이란 마을이 있어 자연스럽게 청산, 화산이라 부르다가
청화산이 된 것 같다
해발고도 700.7m의 청화산 주봉은 박봉(일명 용두봉)이다. 서북쪽 아래에는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 용샘이 있다.
그리고 다곡리에서 보면 주로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 달뜨기봉이 있다.
주륵폭포로 가는 골짜기 앞에 있는 다항(多項)마을은 원래 다목이라 불렀는데,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를 하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외에 속칭 도둑놈뫼봉이라고 하는 도둑봉과 일제강점기 국토 측량시에 기를 꽂아 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깃대봉이 있다.
▼ 14:07(03h37m) 정상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 전경입니다.
(속리산(속리산)?)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속리산은 우리나라 대찰 가운데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정상인 천황봉(1,058m), 비로봉(1,032m), 문장대(1,033m), 관음봉(982m), 입석대 등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 장쾌하다.
봉우리가 아홉 개 있는 산이라고 해서 신라시대 이전에는 구봉산이라고도 불렀다.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을엔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향기 그윽한 한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는 등 4계절
경관이 모두 수려하다.
속리산은 법주사(사적 명승지4호), 문장대, 정2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로 대표된다.
법주사에는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의 국보와 사천왕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의 보물등 문화재가 많다.
문장대는 해발 1,033m높이로 속리산의 한 봉우리이며,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문장대는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운장대라고도 한다.
문장대 안내판에는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고 있다.
정2품 소나무는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령 600여년의 소나무로, 조선 세조 때,
임금님으로부터 정이품이란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마치 우산을 펼친 듯한 우아한 자태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으로 '연걸이
나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대왕은 이 나무에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속리산은 산행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산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찾아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곳 이어서인지 관광객들이 수
시로 찾아든다. 속리산 단풍은 설악이나 내장산과 같이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다.
1,033m높이의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주변 풍광으로 청법대 바위의 웅잠함에 감탄하게 된다.
신랑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시가 유명하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우암 송시열은 속리산 은폭동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양양하게 흐르는 것이 물인데/어찌하여 돌 속에서 울기만 하나/ 세상사람들이 때묻은
발 씻을까 두려워/자취 감추고 소리만 내네"
▼ 14:07(03h37m) 주능선을 당겨서 찍었습니다.
▼ 14:09(03h39m) 정상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하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 14:17(03h47m) 멋진 노송들이 등로에서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 14:30(04h00m) 조그마한 암봉이 길을 막습니다.
▼ 14:40(04h100m) 암봉에 올라서니 진행해야할 능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 14:40(04h10m) 암봉 우측으로 보니 산중턱에 오붓한 마을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 14:50(04h20m) 암릉전망대를 떠나 도장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 14:52(04h22m) 하산 마지막 삼거리 705봉 봉우리로 이동합니다.
▼ 14:52(04h22m) 705m봉 봉우리입니다. 본격적인 심원사로의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 15:20(04h50m) 705m봉에서 약 30분에 걸친 하산후 심원사 일주문에 도착합니다.
(심원사(深源寺)?)
* 용왕의 아들과 의상대사의 이야기가 있는 사찰, 심원사(문경) *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산 8번지 도장산(道藏山)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심원사는 주위 경관이 수려하여 수도처로 적합한 곳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 쌍룡계곡의 용소에 살던 용왕의 아들이 이곳
심원사에 머물던 윤필거사(潤弼居士)와 의상대사에게 글을 배웠다고 한다.
용왕의 아들은 그 사례로 월겸(月鎌)과 월부(月斧), 요령을 윤필거사와 의상대사에게
선물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요령 외에 나머지는 행방을 알 수 없다.
* 심원사의 창건 역사 *
심원사의 창건은 660년(무열왕 7) 원효스님이 초창하여 도장암(道藏庵이)라고 했다고 하나,
관련된 기록이나 연혁에 대해서는 전하는 자료가 없다.
이후 890년(진성여왕 4) 대운조사(大雲祖師)가 불일대(佛日臺)를 신축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605년(선조38) 조정으로부터 부근의 10리 땅을 하사받았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연일(然一)이 사명유정을 수행하여 일본에 가서 공훈을 세웠기 때문이다.
1729년(영조 5) 낙빈(樂貧)스님이 옛 터에 중창하여 심원사(深源寺)라고 이름을 바꾸고
임진왜란 이전의 사세를 유지했다.
이후 1775년 남악이 중건했고, 근세에는 1922년에 주지 해응(海應)이 산신각을 신축했다.
그 뒤 이름 있는 절로서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58년 대화재를 만나 전소되었다.
1964년에 와서야 법당과 요사를 중창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15:30(05h00m) 심원사 계곡입니다. 절의 중창불사로 계곡물이 흙탕물이었습니다.
▼ 15:35(05h05m) 심원사를 벗어나는 길은 자갈길로 이동에 불편이 심했습니다.
▼ 15:36(05h06m) 곳곳에 폭포(瀑浦)와 담(潭)을 형성하고 있는 꽤 긴 계곡이었습니다.
▼ 15:36(05h06m) 심원폭포 전경입니다.
▼ 알탕하기 좋은 조그마한 담(潭못담)들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 15:36(05h06m) 심원사에서 500m를 이동해 내려왔습니다.
▼ 15:38(05h08m) 쌍용폭포 900m를 남겨둔 이정표입니다.
▼ 15:46(05h16m) 계곡길이 끝나는 지점 전경입니다.
▼ 15:54(05h24m) 용추교 입구에 설치된 문경 관광안내도입니다.
(문경 관광)
국가지정문화재(보물 8, 사적 1, 천연기념물 2, 중요무형문화재 2),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5, 기념물 6, 민속자료 1, 무형문화재 5), 문화재자료 18점, 등
록문화재 2점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흥덕동에서 마제석촉이 발견되었으며,
문화재로는 내화리3층석탑(內化里三層石塔, 보물 제51호),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 보물 제137호),
봉암사3층석탑(鳳巖寺三層石塔, 보물 제169호),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 보물 제171호),
대승사목각탱 및 관계문서(보물 제575호) 등과 봉암사마애보살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미륵사지마애여래좌상 등의 불상이 있다.
사적으로는 문경관문(사적 제147호, 제1관문 主屹關, 제2관문 鳥谷關, 제3관문 鳥嶺關)이
있으며,
농암면의 반송(천연기념물 제292호)과 홍귀달선생신도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등이 있다.
이외에 조선시대 40개 찰방역(察訪驛) 가운데 하나였던 유곡역에 관한 사실을 알리는
유곡역지비석(幽谷驛址碑石)들이 점촌북초등학교 정문 앞에 수집되어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조령에 있는 문경 제1, 2, 3 관문 외에 주봉인 주흘산을 비롯해
폭포·계곡·기암·약수터 등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자원을 갖추고 있다.
주흘산과 조령산은 사철 등산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주흘산의 대표적인 등산 코스는
제1관문-여궁폭포-혜국사-샘터-주흘산 정상-제2관문으로 이어진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내의 집단시설지구는 극기훈련장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경북8경의 하나인 영강은 수석산지로 유명하다.
한편 불정동의 수정봉 기슭에 있는 운암사(雲巖寺)는 신라 무열왕 때 의상이 창건한 고찰로서
주변의 빼어난 카르스트 지형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 15:54(05h24m) 쌍용계곡을 가로지르는 용추교 전경입니다.
▼ 15:54(05h24m) 용추교에서 계곡 쪽으로의 방향 표시입니다.
▼ 15:54(05h24m) 용추교에서 바라보는 씽용폭포 상부쪽 전경입니다.
▼ 15:54(05h24m) 용추교에서 바라보는 쌍룔계곡 하류쪽 방향 전경입니다.
▼ 15:54(05h24m) 용추교를 지나 도로변에서 산행을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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