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의 영암산, 선석산은 제법 산을 다닌 나에게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산행지가 공지되고난 뒤 각 산행기를 읽어보니 구미 금오산 명성에 밀려 산객들에게 천대를 받던
산이었지만, 산세나 지형이나 올망조망한 암릉들이 입맛을 돋우기에는 충분한 산이었다.
더우기 조선조 18왕, 왕자들의 태실이 이웃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를 가지고 있는 산임에는
틀림없는 산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산행에 참석하기로 했다.
(영암산 개략)
성주와 김천, 칠곡 3개 시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신령스런 바위산이라 불러던 명산이다.
지도에 남북으로 놓여진 영암산의 머리부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봉우리가 영암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성주사람들은 가장 남쪽 봉우리를 영암산으로 알고 있고 표석까지 세워놓았다.
사실 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북봉은 나무가 많은 흙으로 된 봉우리로 별다른 특색이 없는
반면 남쪽 봉우리는 사방이 바위절벽으로 된 바위 봉우리로 경관과 조망이 좋다.
방울이라는 뜻의 령(鈴)자로 되어 있는 영암산은 방울이나 종과 관련있다는 전설 또는 방울이나 종모양
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나 영암산을 성주쪽에서 보면 방울모양으로 보여 ‘방울바위
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영암산은 성주의 명산 중 등산코스가 가장 짧은 코스라 할수 있다. 산행에 필요한 시간은 2시간이며
영암산은 선석산과 함께 묶어 산행하는 것이 좋다. 선석산을 함께 산행하면 선석산이 안고있는 세종대왕
자태실이나 선석사를 돌아 볼 수 있다.
선석산은
바위가 없고, 등성이가 넓고 편평하여 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로 흙산이며, 숲이 좋고 비탈이 가파르지
않아 산길이 산책길처럼 느껴진다. 일명 서진산이라고도 하며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선석사는 의상대사가 신라 효소왕 1년(692년)절을 창건하고 신광사라 하였으며 신라 때에 유명한
의상대사가 692년 전국에 10개의 절을 지을 때 지은 절이다.
(산행 개요)
1. 산행날짜 : 2014.11.15(토) 날씨 : 맑음
2. 산행시간 : 10시20분 ~ 17시00분
3. 이동,도상거리 : 14.57km, 13.37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2.20km/h
휴식제외 : 2.39km/h
5. 고도 : 813m ~ 118m(695m) - 영암산 최고고도가 782m이므로 GPS오차 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7.08km, 2.17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7.20km, 2.55km/h
8. 휴식횟수, 시간 : 1회, 35분
9. 산행코스
미타임입구 ~ 보손지 ~ 중리지 ~ 임도 통과 ~ 바위 전망대 및 암릉 ~ 영암산북봉 ~ 영암산 ~
선석산 ~ 용바위 ~ 비룡산 ~ 두만저수지 ~ 숭무사 주차장
▼ 핑크빛 굵은 윗쪽이 들머리이고 아랫쪽이 날머리인 위성지도입니다.
▼ 산행궤적의 등고선지도입니다.
▼ 고도표상의 좌측 높은 봉우리가 영암산 북봉,바로 옆이 영암산(782m), 가운데 봉우리가
선석산(742m), 우측 낮은 곳이 비룡산 정상(579m)입니다.
▼ 미타암 입구의 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도로변에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 빛을 발하고 시들어 가는 '쑥부쟁이'입니다.
▼ 한국로지스라는 택배회사 앞으로 진입하면 미타암이 나옵니다.
▼ '만수국'입니다.
▼ 미타암입니다. 조그마한 사찰입니다.
▼ '쑥부쟁이'를 옆에서 바라본 모양입니다.
▼ '까마중'의 까맣게 익기전의 형태입니다. 어릴 때 많이도 따먹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 암릉이 많은 산이므로 미리 몸풀기를 합니다. 특히 발목 풀기가 중요합니다.
▼ 산행에 앞서 주의 사항 및 산행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는 중입니다.
▼ 몸풀기와 준수사항을 들은 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 들머리에 있는 초라한 미타암의 용왕당입니다.
(용왕당이란?)
‘용왕당’·‘용궁당’ 등으로도 불려진다. 여기에 모시는 신격은 용신할머니·용궁애기씨·용궁부인·용왕
부인 등으로 여성신적 성격이 강하고, 사해용왕(四海龍王)을 섬기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당은 대체로 약수나 우물곁에 있어 수신(水神)을 섬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용신당의 성격은
용신에 대한 문헌기록의 모습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기록에서 용신의 자취는 먼저 『삼국유사』 권1 혁거세왕(赫居世王)조에서 찾을 수 있다.
혁거세 왕의 비(妃)인 알영(閼英)에 대해 사량리 알영정(閼英井, 달리 娥利英井이라고도 쓴다.)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로 어린아이를 낳으니(달리 용이 죽어서 배를 갈라 이를 얻었다
고 함.) 자태와 용모가 수려하였다. 라고 했는데, 이 기록은 우물로부터 용신의 출현을 보이고 있어
오늘날 용신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용신의 출현은 또한 「거타지설화(居陀知說話)」와 고려왕 세계의 「작제건설화(作帝建說話)」 등
에도 보이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는 용녀가 우물을 통해 용궁을 왕래하였다고 하여 용신이 우물
또는 샘에 근거하고 있다는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신당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 진천 용왕당에 관한 기록이 있어서 용신당의 존재
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내륙지방의 용신당은 극히 드물어 평창군 계방산(桂芳山)의 용신당, 대관령 용신당, 노량진
용궁당, 구룡포 용왕당 등이 있는 정도이다. 이 중 간략하나마 조사보고가 있었던 계방산 용신당을
보면 산에 방아다리 약수터가 있고 그 옆에 작은 용신당이 있는데, 당 안에는 용신할머니라고 불리
는 신상이 목판 위에 그려져 있으며 부인 네들이 드나들면서 정성껏 섬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구룡포 용왕당 경우는 사해용왕을 섬기고 있는데 드물게 남신을 섬기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서대문 녹번동의 산신당은 약수터 가에 당이 있고 여기에 용궁아기씨 무신도가 있어
용신당의 흔적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제주도지역에서는 가끔씩 ‘문수물당’·‘큰물당’·‘돈지당’ 등이 있어서 용왕부인을 모시고 있다.
해변을 접하고 있는 제주도지역이므로 용신을 모시는 당이 비교적 흔한 셈이다. 물을 신격화한 것은
용이고, 용은 물과 밀접한 관련을 짓는다. 용신당은 수신신앙(水神信仰)의 구체적 형태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네이버 지식백과]
▼ 들머리에 있는 보손지라는 조그마한 저수지 전경입니다.
▼ 보손지 앞에 있는 지붕 날아가버린 투명 화장실 모양입니다.
▼ 보손지 앞을 조금 지나니 사방댐이 하나 나타납니다.
▼ 중리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송산 산행대장님이 미리 발급받은 산행허가서를 제출했습니다.
▼ 중리지 저수지의 수로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멋있는 수로였습니다.
▼ 중리지 전경입니다.
▼ 중리지에 있는 산행 통제센타와 우리가 올라온 도로 건너편에 구미 금오산이 조망됩니다.
▼ 중리지 옆의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 중리지에서 영암산 정상까지는 약 2.4km 거리입니다.
▼ 통상 산불로 인한 통제기간은 11월1일부터 익년 5월15일까지이므로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 산행 중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중리저수지 전경입니다.
▼ 중간 전망대에서 바라본 칠곡군 왜관읍 전경입니다.
▼ 처음 산행길을 완만하고 낙엽 수북한 힐링산길이 이어집니다.
▼ 중리지에서 얼마 오르지 않아 임도를 만납니다. 우리는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로 이동합니다.
▼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로 이동하는 길 전경입니다.
▼ 임도에서 좌측으로 가는 영암산 정상쪽으로 접근하는 도로 전경입니다.
▼ 차로 많이 끓여 먹는 운지버섯입니다.
(운지버섯)
구름버섯 갓의 지름은 1~5cm, 두께는 0.1~0.3cm 정도이며, 반원형으로 얇고, 단단한 가죽처럼
질기다. 표면은 흑색 또는 회색, 황갈색 등의 고리무늬가 있고, 짧은 털로 덮여 있다. 조직은 백색이
며, 질기다. 관공은 0.1cm 정도이며, 백색 또는 회백색이고, 관공구는 원형이고, 1mm 사이에 3~5
개가 있다. 대는 없고 기주에 부착되어 있다. 포자문은 백색이고, 포자모양은 원통형이다.
1년 내내 침엽수, 활엽수의 고목 또는 그루터기에 기왓장처럼 겹쳐서 무리지어 발생하며, 부생생활
을 한다. 약용버섯이다.
버섯에서 처음 항암물질인 폴리사카라이드가 발견된 버섯이며, 간염, 기관지염 등에 효능이 있다.
중국에서는 운지버섯이라고 부른다. [네이버백과】
▼ 부산일보에서 얼마전에 답사했던 코스입니다. 산객들을 위해 많은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 오르막 도중 육산으로서의 테를 벗고 서서히 암릉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가을은 이미 깊어 가을색이 바래기 시작했지만 산중에는 그래도 추색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 능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미 금오산 현월봉이 조망됩니다.
▼ 남아있는 가을색의 여운입니다.
▼ 암릉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타산악회에서 방문했던 흔적이 많이 달려 있습니다.
▼ 직등이 어려운 암릉은 우회해서 이동합니다.
▼ 암릉길이 이어집니다.
▼ 첫구간 암릉지역 표시입니다. 첫구간은 우회했습니다.
▼ 첫구간 로프구간입니다.
▼ 첫구간을 우회하면서 앞으로 나갈 방향의 암릉을 전망합니다.
▼ 선등한 회원들은 멀리 암릉 전망대에 도착해 있습니다.
▼ 첫 위험구간의 끝부분 로프 전경입니다.
▼ 첫위험구간이 끝나는 지점의 위험 표시판입니다.
▼ 암릉구간이 계속 이어집니다.
▼ 뒤돌아본 첫 위험구간의 봉우리 전경입니다. 직벽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 곳곳에 직벽 암릉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 음지에는 땅속 얼음이 노출된 곳도 있습니다.
▼ 첫번째 암릉과 이어지는 암릉길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 영암산에서 이어지는 선석산까지의 능선이 맥을 이루고 있는 전경입니다.
▼ 보손리마을 전경입니다.
▼ 산행중 가장 즐거운 중식시간입니다. 이 때만큼 여유있는 시간도 없습니다.
▼ 점심식사후 앉았던 자리는 말끔히 정리하고 이동을 시작합니다.
▼ 좌측 멀리 뾰죡한 정상까지는 암릉이 연속됩니다.
▼ 암릉끝에 먼저 도착한 선등회원들의 모습입니다.
▼ 이어지는 암릉길 전경입니다.
▼ 두 번째 위험구간을 통과합니다. 이 구간은 직진합니다.
▼ 암벽 산행을 하는 회원과 우측 로프를 이용하는 회원이 있습니다. 나는 로프를 이용하여....
▼ 암릉전망대에서 바라본 구미 금오산 현월봉 정상이 조망됩니다.
▼ 영암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암릉입니다.
▼ 두번째 위험구간이 끝나는 표시 안내판입니다.
▼ 영암산 정상 200m를 남겨놓은 지점에서 부상리로 하산하는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정상부근에서 바라본 채석장 전경입니다.
▼ 위험한 곳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우측 끝에 영암산 정상석이 조망됩니다.
▼ 영암산 북봉에서 영암산쪽으로 이동하는 곳에 설치된 로프 전경입니다.
▼ 로프를 이용해서 정상석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정상부근에서 바라본 영암산 북봉 전경입니다.
▼ 영암산 정상석이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 영암산 정상석 전경입니다.
▼ 영암산 정상석 하단부에 설치된 영암산에 대한 유래를 설명한 글입니다.
▼ 영암산 정상석에서 선석산으로 가기위해 급한 목계단을 2개나 내려가야 합니다.
▼ 영암산 목계단에서 바라본 선석산과 우측 아랫부분의 나지막한 비룡산이 조망됩니다.
▼ 세번째 위험 표시 구간을 통과합니다. 이곳은 약 30m정도에 이르는 로프길입니다.
▼ 자연휴양림 건물인지 연수원 건물인지는?????
▼ 오늘 산행 중 가장 까다로운 로프구간입니다.
▼ 로프 하단부에서 바라본 까다로운 로프구간입니다.
▼ 로프 하단부에 설치된 위험구간 표시입니다.
▼ 로프구간 하단부에 있는 우회로와 로프길의 안내이정표입니다. 보손지 방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 로프구간 끝나는 부분의 위험구간 안내표시판입니다.
▼ 보손지 삼거리 이정표를 통과합니다. 우리는 서진산(선석산)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선석산 가는 길은 낙엽 수북한 푹신한 길이 이어집니다.
▼ 보손지 2.5km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푹신한 길은 계속 이어집니다.
▼ 세종대왕자태실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선석산 1.6km 전방
(태실 개략)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胎峰) 정상에 있는 세종의 왕자들의 태실을 말하며
1438년(세종 20)에서 1442년(세종 24) 사이에 조성된 태실로,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기를 합쳐 모두 19기로 조성되었다. 이 태실이 자리잡은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던 곳으로,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묘를 이장하도록 하고
태를 안치하였다 한다. 2003년 3월 6일 사적 제444호로 지정되었다.
태실의 전체면적은 5,950㎡로,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은 방형의 연엽대석(蓮葉臺石)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다. 태실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식·구조는 연엽형의 개첨석(蓋簷石, 밑지름 102㎝, 높이 42㎝),
구형의 중동석(中童石, 높이 60㎝), 석함(石函)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실 비문에 ‘○○(대)군명태장
황명연호년월일입석(○○(大)君名胎藏 皇明年號年月日立石)’이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한편,
세조 태실은 그가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세워두었
는데, 현재 비문은 마모되었고, 조선왕조실록에 비문이 수록되어 전한다. 1977년 태실 정비사업 과정
에서 분청인화문개(粉靑印花紋蓋)·분청인화문완(粉靑印花紋盌)·평저호(平底壺)·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를 봉안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의 김유신 장태(藏胎)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 태봉안양식(胎奉安樣式)이 성립된 후 조선시대까지 그 맥락이 이어진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태봉에 태를 봉안하기 위한 석물의 구성은 우리나라에서만 행해졌던 독특하고
독자적인 문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태실은 왕과 태자에 대한 태실만을 조성하던 고려시대의 태 봉안
양식이 변화되어 왕과 왕비, 그리고 그 자녀의 태실을 조성하기 시작한 조선시대 최초의 왕자 태실로
서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 태실이 완전하게 군집(群集)을 이룬 유일
한 곳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네이버 지식백과]
▼ 입구마을로 하산하는 삼거리 이정목을 통과합니다. 우리는 선석산 방향으로....
▼ 벌레집입니다. 무슨 벌레인지는 몰라도.....
▼ 현위치 선석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용바위, 태봉바위를거쳐 안내도에 없는 우측길로 이동해야 합니다.
▼ 정상에서 비룡산 정상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 선석산 정상석입니다.
(선석산 개략)
높이는 742.4m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과 칠곡군 약목면·북삼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서진산(棲鎭山) 또는 누진산(樓鎭山)이라고도 불린다. 영암산(鈴岩山, 784m), 비룡산(飛龍山,
546m), 시묘산(侍墓山, 367m)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선석산에는 사적 제444호로 지정된‘성주
세종대왕자태실(星州世宗大王子胎室)’을 비롯하여 천년고찰 선석사(禪石寺)와 자연 전망대 역할을
하는 용바위, 태봉(胎峰) 등의 바위가 있다.
바위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용바위라 불리는 바위는 정상으로부터 약 2분 거리에
있는데 이곳에 서면 첩첩이 쌓인 가야산과 금오산 줄기가 펼쳐지고,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용바위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태봉에서 내려다보면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단지가 호수처럼 펼쳐진다. 태봉 근처에는 조선시대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9기가 묘여 있는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다.
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선석사는 신라 말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원래 지금 위치
보다 약간 서쪽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고려시대 공민왕 때 현 위치로 이전했다 한다.
그때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터를 닦는다’는 의미를 가진‘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개칭
했는데 이로 인해 산의 이름도 선석산이 되었다. 사찰에는‘선석사 대웅전(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13호)’,‘선석사 괘불탱(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57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네이버백과】
▼ 선석산 정상석을 출발하여 비룡산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 용바위 앞을 지나갑니다.
▼ 용바위전경입니다. 낙동강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옵니다.
▼ 용바위를 지나서 얼마가지 않아 의자바위를 지나갑니다.
▼ 의자바위 부근에서 바라본 우리가 하산할 두만지저수지가 조망되고 좌측으로 시묘산 우측으로
비룡산이 일부 조망됩니다. 멀리 팔공산 주능선이 조망됩니다.
▼ 태봉바위를 지나갑니다.
▼ 태봉바위에서 태실자리를 조망합니다.
▼ 태봉바위에서 바라본 '세종대왕자태실'의 건물이 조망됩니다.
▼ 불광교 방향으로 비룡산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 각산리로 하산하는 섬거리 이정목을 지나갑니다. 우리는 비룡산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비룡산 직전 안부를 지나갑니다.
▼ 대흥사로 하산하는 삼거리 이정목을 지나갑니다. 우리는 비룡산 방향으로.....
▼ 각산리 방향으로 하산하는 삼거리이정목을 지납니다. 우리는 비룡산 방향으로....
▼ 비룡산 직전 남계리로 하산하는 삼거리 이정목을 지나갑니다. 우리는 비룡산 방향으로...
▼ 비룡산 방향의 암릉을 지나갑니다.
▼ 비룡산 정상과 정상에서 바라본 구미 금오산 전경입니다.
정상부 약사암이 있는 암봉이 뚜렷이 조망됩니다.
(비룡산 개략)
경상북도 칠곡군의 약목면 남계리와 기산면 각산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579m). 서북쪽의
영암산에서 선석산을 거쳐 이어지는 산줄기에 위치하며, 비룡산에서 다시 남쪽으로 지경재를 거쳐
각산으로 이어진다. 산의 북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두만천으로 흘러가며, 남쪽 사면에서 발원
한 계류들은 서원천을 이룬다. 북쪽의 두만천 골짜기에는 조선시대 무장인 신유(申瀏, 1619∼168
0) 장군 유적지(도 기념물 제38호)가 있으며, 산의 북쪽에는 귀신사, 남쪽에는 대흥사라는 사찰이
있다. 비룡산은 조선시대 사료에 등장하지 않으며, 『조선지형도』에 처음 기재되어 있다. 비룡산의
이름은 산의 모양이 용이 날아가는 것 같다고 붙여졌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 비룡산 정상을 지나 두만지 방향으로 길을 줄여 나갑니다.
▼ 비룡산에서 두마지로 하산하는 급경사길과 떨어진 낙엽은 하산길을 더디게 합니다.
▼ 삼거리에서 두만지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계속되는 낙엽길과 내리막 계단이 하산을 어렵게 만듭니다.
▼ 낙우송 구간을 통과합니다.
▼ 절터인 것 같기도 하고 옛날 선승이 도를 닦던 곳인지????
▼ 하산길 마무리 단계에서 약수를 만나 목을 축입니다.
▼ 길이 유순해지면서 추색으로 물들은 낙우송 숲을 지나갑니다.
▼ 남계리(두만지) 방향 800m를 남기고 있습니다.
▼ 우리는 보이는 좌측 산길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 날머리 지점에 핀 억새가 멋지게 보입니다.
▼ 두만지 저수지가 조망됩디다.
▼ 두만지저수지 둑을 건너면 신유장군 사당인 숭무사가 있습니다.
▼ 비룡산이 해질녁의 두만지 저수지에 아름답게 투영됩니다.
▼ 날머리인 숭무사에 도착했습니다.
▼ 숭무사 입구 전경입니다.
이로써 오늘 산행은 마쳤습니다.
약간 길지만 험잡을데 없는 산행코스로 원없이 즐긴 힐링 산행이었습니다.
'경북산 > 경북.아 ~ 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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