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산/경북.아 ~ 하

2017.06.03 경북 달성 주암산/최정산

redstone5 2017. 6. 5. 19:32

   이번(2017.06.03.토) 산행은 복잡함을 피해 많이 알려지지 않고 한적한 산길이 이어지는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의 주암산(846.8m)과 최정산(905m)을 찾았습니다.


   최정산은 대구 근교산으로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산으로 자연생태보고로 알려진, 주암산

   (舟岩山)및 최정산(最頂山)과 통점령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해발 700m 지역은 국내에서

   대관령과 함께 스위스 살레(Chalet)지역처럼 고위 평탄지역을 가지고 있는 지형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대구 근교에서 유일하게 고랭지 농업과 목축업

   이 성행하는 지역이라 합니다.


   최정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제대로 된 정상을 밟지 못함은 물론,

   두 개의 산 모두가  제대로 된 정상석을 가지고 있지 못해 정상석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하산했습니다.


   들머리인 광덕사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과 안부가 반복적으로 주암산까지 이어지다가

   주암산 배바위부터는 편안하고 걷기 좋은 힐링산길이 최정산 헬기장까지 이어지고,

   헬기장을 지나 운흥사까지는 계곡길로 급한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운흥사에서부터

   오2리 주차장까까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가야 합니다.

   운흥사에서 오2리 주차장까지는 승용차는 통행이 되지만 버스는 통행이 불가능하여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산행했던 날의 날씨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과 우거진 수목이

   만들어준 그늘길은 산행하기에 적당한 여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쉬웠다면 가뭄이 심하여 계곡 전체에는 물 한 방울 구경하기 힘들어서 알탕을 기대하고

   준비해 갔던 여벌옷은 꺼내지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대구 근교산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산이라 호젓하고 여유있는 산행 시간을

   누릴 수 있어 더없이 좋은 산길이었지만,

   주암산 정상 배바위 부근에서 시작된 비닐 가설건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종교단체들의 기도처로 사용되는지 아니면, 치료소로 사용되는지 고함소리 등이 들려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어 관계당국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할 듯 했습니다.


   (최정산?)

   비슬산의 주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올라가다 솟구쳐서

   이루어진 산(889m)이다.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이 섞여 자라 혼합림을 이루고, 1천여 종의 자생식물이 자라며,

   봄에는 진달래 천국을 이루고 가을에는 단풍이 온산을 물들여 대구 근교지방의 주민들에게는

   매우 친근한 산이다.

   최정산의 800m이상 산꼭대기에는 비교적 넓은 고위평탄면이 발달해 있다.

   이 평탄면에는 과거에 구축된 산성이 있으며, 현재는 소를 사육하는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고,

   진달래도 피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최정산은 비슬산과 더불어 달성군의 명산으로 알려져 있다.

   삼림은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이 섞인 혼합림이 주종을 이루고 1천여 종의 자생식물이 자란다.

   정상 일대 능선에는 억새풀과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자란다. 주암산과는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최정산 산행 가이드
   산행을 하려면 오동 1교에서 음지마을을 지나 681.8m봉에 오른 뒤 남쪽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르거나, 오동 1교에서 남쪽 계곡을 따라  운흥사를 지나 능선이나 계곡길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880m봉에서 남쪽 능선길을 타고 서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신라시대에 창건된 운흥사로 하산할

   수 있다.
   용계동에서 운흥사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900m 고지를 지나 냉천리로 내려올 수도 있다.

   주암산과 함께 오르려면 오동 1교에서 운흥사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북쪽 능선으로 주암산에

   올랐다가 굴골로 하산한다.


   (산행 개요)

   1. 산행날짜 : 2017.06.03(토)      날씨 : 맑음

   2. 산행시간 : 10시04 ~ 15시20분(약 5시간16분)

   3. 이동, 도상거리 : 9.79 km, 9.45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1.87km/h

                     휴식제외 : 2.15km/h

   5. 고도 : 9.6m ~ 168m(738m) - 최정산 정상이 906m임

   6. 오르막 거리, 속도 : 3.45km, 1.74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6.14km, 2.41km/h

   8. 휴식횟수, 시간 : 1회, 40분(중식시간)

   9. 산행코스

      광덕사 ▶옥낭각시 베짜는 바위(추정)▶원광사 삼거리 이정표▶608m봉▶

      가창저수지 이정표▶배바위▶주암산 정상▶855m봉▶884m봉▶최정산헬기장▶

      최정산 갈림길▶용계천게곡 이용 운흥사▶수월교▶오2리 주차장


   ▼ 국제신문에서 밟았던 코스대로 이동했습니다.

  단 광덕사까지 원점회귀치 않고 오1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탑승했습니다.



   ▼ 최정산의 위치를 위성도 상에서 가늠해 봅니다.

      최정산 하단부의 비슬산~힐티재~우미산~삼성산~봉화산~상원산~용각산 능선은

      비슬지맥이 일부이고,

      최정산 좌측의 비슬산~산장~청룡산~산성산 능선은 청룡지맥의 일부입니다. 


   ▼ 산행궤적을 위성도에 확대한 사진입니다.


   ▼ 산행궤적을 등고선 지도에 나타낸 사진입니다.


   ▼ 산행고도표로 급격하게 올랐다가 정상부근에서 평탄지역을 지나 계곡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산행 난이도를 보입니다.


   ▼ 10:04(00h00m) 산행들머리인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광덕사 앞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 10:05(00h01m) 산행 준비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 10:07(00h03m) 광덕사 사천왕문을 통과합니다.

      이곳 저곳을 찾아봐도 최정산 광덕사란 사찰에 대한 설명이 없는것으로 봐서 최근에

      설립된 사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10:07(00h03m) 광덕사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가람의 규모는 적지않고 제법 큰 가람이었습니다.


   ▼ 10:08(00h04m) 광덕사 범종 전경입니다.


   ▼ 10:09(00h05m) 범종 옆의 '포대화상'상입니다.


      (포대화상(布袋和尙)?)

      포대화상 布袋和尙 五代的一位高僧。法名契此,又號長汀子。明州奉化(浙江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契此(계차)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 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걸러메고 다니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불렀다.

      무엇이든 주는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사람들과 같이 차별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없는

      대자유인이었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라는 게송을 남기고 반석위에 단정히 앉은채로 입적하였다.


      포대화상은 중국의 선사로서 기인이었다.

      그는 항시 개 뼈다귀로 가득한 자루를 지고 다녔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 자루를 지고 다니면서 "개 뼈다귀 사시오. 개 뼈다귀 사시오." 외치며

      다녔다.

      사실 개 뼈다귀는 전혀 쓸모가 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였다.

      짖꿎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때론 울음 짓기도하고

      아이들과 실갱이 하기도하며 바보 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相見, 邪見을 가진 일반인들을 제도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 10:09(00h05m) 광덕사 우측으로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가 있습니다.

      이 곳에서 부족한 식수를 보충하면 됩니다.


   ▼ 10:09(00h05m) 대웅전 우측 뒤편에 있는 산신각과 독성각입니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은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대체로 1평 정도의 집에 산신당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각이라는 명칭 외에 산신당·산명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산신은 보통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산뿐만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 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도 같이 모셔졌다.

      명칭은 산신각·칠성각·삼성각 등으로 불린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이라 하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이다.


      (독성각(독성각)?)

      독성(獨聖)을 모신 곳이니, 이는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홀로 수행하여 깨달은 이를 말합니다. 독성을 연각(緣覺)이라고도 한다.

      독성은 스승 없이 혼자서 깨친 독각(獨覺)의 성자이다.

      즉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자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봉안하는 것이 통례이다.

      본래 독성은 부처님의 제자였다.

      아라한과를 얻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머물다가 말세 중생의

      복덕을 위하여 출현한다 하여 특별히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되고 있다.

      흔히 칠성(칠성각)과 산신(산신각)과 이 독각(독성각)을 합쳐서 삼성(三聖)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찰 안에는 삼성각(三聖閣)이란 전각을 지어 모시고 있는 절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독성신앙에 특유의 단군신앙을 가미시켜 새롭게 수용하고

      전개시켰다.

      따라서 이 독성을 모신 독성각은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인 독성(獨聖)탱화를 모신다.

      사찰에 따라서는 탱화만을 봉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료에 의하면 이 독성각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삼국.고려시대 것으로 남아 있는 전각은 없다.

      아마도 조선시대에 널리 보급되어 한 전각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조선조가 주요정책으로 내세웠던 숭유억불의 기치 아래에서 불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생겨났을 것이다.

      불교도들의 눈에 조선조가 말법시대라고 부정적으로 비칠때, 강력한 자각에 의해 말법중생

      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이 싹튼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산신각이나 칠성각과 더불어 사찰 안에 삼성각이라는 전각이 자리잡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불공 못지않게 독성각을 중심으로 불공이 거행되는 것도

      우리나라 서민층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독성탱화는 독성존자를 형상화한 불화이다.

      대개 독성각에 단독으로 모셔지거나 삼성각 안에 칠성탱화와 산신탱화와 함께 봉안된다.

      독성탱화는 수독성탱(修獨聖幀).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라고도 한다.

      보통 16나한탱화와 같은 구도법으로 그려진다.

      독성탱화는 나무와 산이 무성한 천태산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늙은 비구가 석장(錫杖)을 짚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이 탱화의 특징이다.

      하지만 때때로 동자가 차를 달이는 모습도 있다.

      또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나타나 나반존자와 나란히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 10:11(00h07m) 들머리에서 약 7분 후에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 10:11(00h07m) 본격적인 들머리에서 최정산 정상까지는 약 5.3km거리입니다.


   ▼ 10:15(00h11m) 초입무터 가파른 오르막과 안전로프가 우리를 맞습니다.


   ▼ 10:21(00h17m) 본격적인 산행 시작 10분 후에 무명 분묘를 지나갑니다.


  ▼ 10:26(00h22m) 최정산 헬기장까지 5.44km가 남았습니다.

      통신기지를 지나서 헬기장이 있기 때문에 이정표가 다소 헷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 10:26(00h22m) 안내도상의 현위치 표시입니다.


   ▼ 10:27(00h23m) 가파른 오르막옆에는 안전로프가 확실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 산행시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10:31(00h27m) 잠시 트이는 전망대에서 가창저수지가 조망됩니다.


   ▼ 10:34(00h30m) 가창저수지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 10:36(00h32m) 산행시작 약 30분 후쯤 약간의 안부가 나타나서 한 숨 돌리게 합니다.


   ▼ 10:38(00h34m) 안부도 잠시, 작은 암릉지역을 만납니다.


   ▼ 10:38(00h34m) 암릉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창면 용지봉이 조망됩니다.


   ▼ 10:39(00h35m) 암릉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찍기에 열중입니다.


   ▼ 10:40(00h36m) 가창저수지 전경입니다. 정면 높은산이 청룡산입니다.


   ▼ 10:41(00h37m) 암릉전망대 바로 밑 우회로에 설치된 이정표입니다.

      최정산 헬기장까지는 5.15km가 남았습니다. 광덕사에서 불과 700m이동하였습니다.


   ▼ 10:42(00h38m) 연이어서 가파른 암릉길이 연속됩니다.


   ▼ 10:44(00h40m) 곳곳에 이런 무명바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 10:49(00h45m) 대구 방면 전경입니다.


   ▼ 10:59(00h55m) 정상 헬기장 4.89km 전방 이정표을 지나갑니다.


   ▼ 11:11(01h07m) 오르막 후 능선길에 도착합니다.


   ▼ 11:11(01h07m) 능선과 만나는 곳에 무명의 묘지가 2기 있습니다.


   ▼ 11:12(01h08m) 이곳이 냉천컨트리클럽에서 오르는 삼거리입니다.


   ▼ 11:14(01h10m) 삼거리를 지나고 걷기 쉬운 능선길을 이어 나아갑니다.


   ▼ 11:24(01h20m) 잠시 조망이 열리면서 휴식벤치가 설치된 곳에 도착합니다.


   ▼ 11:26(01h22m) 조망 전망대를 지나 최정산 헬기장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11:26(01h22m) 계속되는 수풀 우거진 그늘길이 이어집니다.


   ▼ 11:31(01h27m) 최정산 헬기장 3.7km 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1:31(01h27m) 능선길은 부드러운 수풀 그늘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11:33(01h29m) 수풀 우거진 그늘 아래 휴식장소가 나타납니다.


   ▼ 11:33(01h29m) 최정산 헬기장 3.6km 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1:41(01h37m) 국제신문 근교산 리본이 붙어있습니다.

      우리가 선정한 코스도 이 국제신문 코스를 참조로 운영합니다.


   ▼ 11:46(01h42m) 이곳에서 이동길이 직각으로 구부러집니다. 3.19km 전방 이정표입니다.


   ▼ 11:46(01h42m) 직각으로 구부러지는 능선길에 휴식시설 벤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11:52(01h48m) 헬기장 3k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1:53(01h49m) 숲길이 힐링산길로 정말 좋은 호젓한 그늘길입니다.

      이 부근 그늘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 12:36(02h32m) 약 4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 길을 이어갑니다.


   ▼ 12:42(02h38m) 스파벨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입니다. 최정산 방향으로 계속 이동합니다.


   ▼ 12:43(02h39m) 스파벨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부근에 배바위가 있습니다.

      배바위 부근에서는 종교단체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부근에 간이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 12:43(02h39m) 잠시 열리는 조망처에서 바라본 최정산 방향의 넓은 개활지가 조망됩니다.


   ▼ 12:47(02h43m) 주암산 정상 직전의 휴게시설입니다.


   ▼ 12:48(02h44m) 최정산 헬기장 2.3k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이정표가 통신시설과 헬기장으로 구분되어 있어 정상 거리가 헷갈립니다.


   ▼ 12:50(02h46m) 이곳에도 가설건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안에서는 기도소리인지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어서 혼자 산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스러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 12:51(02h47m) 지나오면서 바라본 가설 건물 전경입니다.


   ▼ 12:51(02h47m) 가창중학교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이정표입니다.

      최정산 통신기지까지는 2.9km 가 남았습니다.


   ▼ 12:52(02h48m) 이곳에도 가설 건물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용도가 뭔지????


   ▼ 12:52(02h48m) 주암산 정상을 대신하는 측량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 12:54(02h50m) 측량표시석을 조금지나니 이곳에도 가설 건물입니다.

      가설 건물이 전체적으로 5 ~ 6동 정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 12:54(02h50m) 최정산 헬기장 2.19km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2:54(02h50m) 이곳에도.....

      배바위에서 부터 주암산 정상 능선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가설 건물입니다.


   ▼ 12:57(02h53m) 최정산 헬기장 1.98k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2:59(02h55m) 정상으로 연결되는 능선길에서 약간 벗어나며 안전로프길이 나타납니다.


   ▼ 13:03(02h59m) 휴식시설이 있는 넓은 공간을 지나갑니다.


   ▼ 13:03(02h59m) 산행 시작 약2시간 만에 최정산 헬기장 1.6km 전방인 광덕사에서

      4.1km를 진행했습니다.


   ▼ 13:11(03h07m) 능선길에서 은방울 꽃 군락지를 만났지만 아직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 13:12(03h08m) 능선길에 잠시 목계단 길이 나타납니다.


   ▼ 13:13(03h09m) 넓게 조망이 열리면서 가창면 일대가 조망됩니다.



   ▼ 13:14(03h10m) 산행 시작 3시간10분만에 최정산 헬기장 1.2km가 남았습니다.


   ▼ 13:15(03h11m) 멀리 비슬산 조화봉의 홍수감지용 시설물이 눈에 들어 옵니다.


   ▼ 13:21(03h17m) 곳곳에 설치된 안전로프는 산행로 관리의 관심이 돋보입니다.


   ▼ 13:27(03h23m) 편하게 이어지는 힐링산길 형세입니다.


   ▼ 13:28(03h24m) 최정산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13:29(03h25m) 무슨 표식인지 모르겠지만....



   ▼ 13:31(03h27m) 최정산 헬기장 400m를 남겨 놓았지만 편한 산길은 게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13:35(03h31m) 최정산 통신기지에 도착합니다. 헬기장까지는 약160m남았습니다.


   ▼ 13:37(03h33m) 통신기지에서 헬기장으로 연결되는 포장도로를 따라 이동합니다.


   ▼ 13:38(03h34m) 숲길 구간안내도를 보면 우리가 운행하는 코스는 1,2구간입니다.

      두 구간의 합이 9.4km이지만 운흥사에서 버스 정류장 거리를 추가하면 약 10km정도 됩니다.


   ▼ 13:38(03h34m) 드디어 최정산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최정산 정상은 앞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군사시설로 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 13:41(03h37m) 최정산 헬기장을 떠나 운흥사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 13:49(03h45m) 운흥사 방향 가파른 계곡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 13:51(03h47m) 운흥사 2.1km전방 이정표입니다.

      가뭄으로 계곡에는 물 한방울 구경하기 힘듭니다.


   ▼ 13:52(03h48m) 계곡길을 따라 하산이 계속이어집니다.


   ▼ 13:56(03h52m) 계곡길이라 무더운 여름이지만 그늘길이어서 시원하기까지 합니다.


   ▼ 13:57(03h53m) 운흥사 1.93k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3:58(03h54m) 위험한 곳에는 곳곳에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14:18(04h14m) 전신주인지 전봇대인지 설치된 잔재가 넘어져 었었습니다.

      전에 군부대에 공급되어졌던 전기나 전화 시설 잔재인 것 같습니다.


   ▼ 14:18(04h14m) 운흥사 1.56k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4:26(04h22m) 계곡에는 가뭄으로 물 한 방울 구경하기가 힘듭니다.


   ▼ 14:27(04h23m) 계곡길이라도 위험지역은 곳곳에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14:28(04h24m) 녹음 우거진 숲길이 계속이어집니다.


   ▼ 14:33(04h29m) 운흥사 800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4:33(04h29m) '물길이 사람길'이라고 사람이 다니던 길이 물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 14:33(04h29m) 운흥사 700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4:47(04h43m) 의사 춘주 정운일선생 묘소 입구를 지납니다.

      정운일선생은 일제 강압기에 조선국권회복단 대구지부에서 활동하던분으로

      사후 건국훈장 애국장이 서훈되었나 봅니다.


      (조선국권회복단?)

      1915년 1월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안일암에서 윤상태(尹相泰)·서상일·이시영(李始榮) 등

      경상북도 지방 유림들이 시회 겸 천일계로 가장해 회합을 가지고, 단군을 봉사하며 목숨을

      바쳐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했다.


      만주와 노령에 있는 독립운동가와 연락하기 위해 윤창기(尹昌基)·이시영·박영모(朴永模)·

      서상일 등을 파견하려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경상남도 창원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만주에서는 노백린을 교관으로 독립군이 훈련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1만 원을 보냈다.

      또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청원서의 작성·번역·운반·

      자금지원 등에 관계했다.

     

      1910년대 국내에 있던 비밀결사 중 3·1운동까지 발각되지 않은 극소수의 단체 중 하나였으나

      이후 발각되어 36명이 체포되었다.


      간부로는 중앙총부통령 윤상태, 외교부장 서상일, 기밀부장 홍인일, 문서부장 서병룡·이영국

      (李永局), 유세부장 정순영, 교통부장 이시영·박영모, 권유부장 김규(金圭), 결사부장 황병기,

      마산지부장 안확 등이 활동했다.


   ▼ 14:50(04h46m) 약 100m 아래에 정운일의사 묘소 안내비석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습니다.


   ▼ 14:50(04h46m) 운흥사 약 200m전방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14:50(04h46m) 이 곳부터는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 14:54(04h50m) 산길이 끝나고 운흥사 앞 도로로 나아갑니다.


   ▼ 14:54(04h50m) 운흥사 입구 약수터 부근에 설치된 숲길 안내도입니다.


   ▼ 15:02(04h58m) 운흥사 입구에 설치된 약수터 전경입니다.

     여기서 간단히 흘린 땀을 훔치고,,,


   ▼ 15:03(04h59m) 운흥사 전경입니다.


      (운흥사?)

      * 외가집 앞마당처럼 푸근한 사찰, 운흥사 *
      운흥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151번지 최정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산사에 가보면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싱그러움이 있다.

      요사채 마루에 턱 걸터앉아 풍경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를 함께 들으며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즐겨보는 것도 그만의 매력이다.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아무래도 맑은 계곡과 풍부한 수림, 고즈넉한 산사의 풍광이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대구 달성의 운흥사는 그런 절 중의 하나이다.

      비슬산에서 뻗어 솟구친 최정산 중턱에 자리한 운흥사는 아래로는 대구의 상수원인

      가창댐을 굽어보고 울창한 숲이 외호하는 자리에 다소곳이 틀어 앉아 있다.

      또한 운흥사를 비껴가는 계곡의 수질이 좋고 최정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좋아

      인근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운흥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사명을 2번 바꾸었고 사찰의 위치 역시 옛 자리의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 곳에서 승병을 지휘해 왜적을 격퇴했다고 전한다.

      무언가 사연이 있고 역사도 간직하고 있지만 현재의 운흥사는 있는 듯 없는 듯 산사가

      가지는 미덕과 운치만을 간직한 채 유유히 자적하고 있다.

      특히 경내의 아름드리 벚나무와 예쁘게 단장해 놓은 연못이 가람과 어우러져 마치 외갓집

      앞마당처럼 푸근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운흥사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로 이루어진 단촐한 살림이지만 주변의 청정한

      자연환경만은 운흥사가 가지는 크나큰 ‘재산’이다.

      최근에는 사찰의 운영을 신도들에게 공개하고 재정과 프로그램을 투명하게 이끌어 보려는

      사찰의 노력이 더해져 주변의 모범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운흥사는 내외적으로도 조화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운흥사가 아름다운 절이라고 여긴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 운흥사의 유래 *
      신라 흥덕왕(재위:826∼836) 때 운수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동림사(棟林寺)라고 불렀다.

      절이 3개 군의 경계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자 당시 주지가 절을 조용한 곳으로

      옮기려고 하였더니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앞의 연못을 메우면 된다고 하였다.

      이에 연못을 메웠으나 신도들이 하나도 오지 않자 절을 곡산(谷山)으로 옮기고

      수암사(燧巖寺)라 하였다.

      그러나 역시 신도가 없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절 이름을 운흥사로 바꿨더니

      번창했다고 한다.(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 15:13(05h09m) 약수터를 떠나 약 10여분을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이동하니,

      최정산 운흥사란 사찰명석이 초라하게 반겨줍니다.


   ▼ 15:13(05h09m) 수월교를 지납니다. 버스정류장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 15:20(05h16m) 약 7분후 하산 종료지점인 오2리에 도착합니다.

      종료지점에 설치된 숲길안내도입니다.



   ▼ 15:20(05h16m) 오2리 음지머구마을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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