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산/호남.아 ~ 하

2015.10.24 지리산 (노고단 ~ 피아골) 단풍 산행

redstone5 2015. 10. 26. 14:28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산행지 잡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억새 산행을 가야 할지? 아니면 단풍 산행을 가야할런지 고민스럽기까지 하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3대 단풍지(설악산, 지리산 피아골~뱁사골, 내장산) 중의 하나인 피아골로 목적지를

   정한다.

   피아골은 나중에 다시 언급겠지만 여러가지의 지명 유래와 우리나라의 국난이 있을 때 마다 역사의 전면에

   서서 그 이름을 나름대로 알린 곳이기도 하다.

 

   산행은 성삼재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지리 주능선을 타고 가다가 돼지령 지나 피아골 삼거리에서 피아골 쪽으로

   하산을 시작하는 걸로 잡았다.

   당초 뱀사골로 하산을 계획했지만 이동 거리가 너무 길어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생각으로 피아골로

   정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흐린 날씨에 노고단의 조망은 꽝이었고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리 주능선상의 수목들은 그야말로 옷을 벗고 겨울을 준비중이었으나 피아골에서는 단풍의 절정을

   느끼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리산 개요)

   높이 : 1915m
   위치 : 전남 구례군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한국 8경의 하나이고 5대 명산 중 하나로, 웅장하고 경치가 뛰어나다.

   그 범위가 3도 5개 군 15개 면에 걸쳐 있으며 4백 84㎢ (1억3천만평)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남한 제2의 고봉 천왕봉(1,915m), 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는 1백리 능선에 주능선에 만도

   반야봉(1,751m),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개나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정상에서 남원, 진주, 곡성, 구례, 함양 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나는 낙동강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개천인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등 10여개의 하천이 있으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비경 중 10경 은 노고 운해, 피아골 단풍, 반야낙조, 벽소령 명월, 세석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천왕 일출, 칠선계곡, 섬진청류로 비경을 이룬다.

   지리산은 사계졀 산행지로 봄이면 세석 및 바래봉의 철쭉, 화개장에서 쌍계사 까지의 터널을 이루는 벚꽃,

   여름이면 싱그러운 신록, 폭포, 계곡, 가을이면 피아골 계곡 3km에 이르는 단풍과 만복대 등산길의 억새,

   겨울의 설경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인기명산 [1위]

   3도 5개 군에 걸쳐 있는 광활한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은 산세가 수려한 명산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한 산이라 한다. 사계절 두루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한국의산하 연간 접속횟수가 28만으로 2위인 설악산 13만과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7-8월 여름휴가를 이용한 여름산행지로 가장 인기 있다.

   여름의 시원하고 수려한 계곡과 산에서 2박 3일이 소요되는 지리산 종주산행이 보편화되면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찾는다.

   또한 지리산은 피아골과 뱀사골의 단풍이 아름다운 단풍명산으로 10월 중순에서 하순사이 단풍산행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신라 5악중 남악으로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노고단(1,507m), 반야봉(1,751m) 등

   동서로 100여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이뤄 `지리산 12동천'을 형성하는 등 경관이 뛰어나고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생태계 보고이며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1967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노고단 개략)

   지리산 서쪽의 노고단(1,507m)은 천왕봉(1,915m), 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 중

   하나이며 민족의 영산이라 일컬어지는 지리산 중에서도 영봉으로 꼽힌다.

   노고단이라는 이름에서 ‘노고()’란 ‘할미’, 곧 국모신인 서술성모를 의미한다.

   신라시대부터 현재까지 노고단은 제사를 지내며 국운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로 추앙받는 곳이다.

   노고단 정상에는 제사의 중심지가 되는 돌로 쌓은 제단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고단 운해는 지리산 십경 중 제2경이라 꼽히는데 발아래 펼쳐지는 구름바다는

   가히 절경이다.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한 성삼재 정상의 휴게소 옆으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산책로처럼 꾸며진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오르면 노고단 정상 바로 아래의 노고단 산장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돌계단을 오르면 제단이 있는 정상에 도착하게 되는데 봄이면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붉게 물드는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지리산을 종주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노고단에서 시작된 종주길은 임걸령-반야봉-토끼봉-벽소령-세석평전-천왕봉으로 이어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행개요)

   1. 산행날짜 : 2015.10.24(토)                날씨 : 구름 많고 가끔 안개비

   2. 산행시간 : 10시50분 ~ 16시45분(5시간 55분)

   3. 이동, 도상거리 : 14.14km, 13.52km

   4. 평균속도  휴식포함 : 2.39km/h

                     휴식제외 : 2.61km/h

   5. 고도 : 1,526m ~ 299m(1,227m) : 노고단 정상이 1,507m감안 GPS오차 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4.96km, 2.64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8.93km, 2.52km/f

   8. 휴식횟수, 시간  : 1회, 약 1시간

   9. 산행코스

      성삼재주차장 ~ 노고단대피소 ~ 노고단재 ~ 노고단 정상 ~ 노고단재 ~ 돼지평전 ~

      피아골 삼거리 ~ 피아골대피소 ~ 직전마을 ~ 연곡사 ~ 연곡사주차장

 

   ▼ 위성으로 바라본 궤적입니다.

 

   ▼ 고도표로 본 산행 경로입니다.

      노고단 정상에만 서면 그 다음부터는 여유로운 산행이 이어집니다. 


   ▼ 10:45  성삼재 주차장이 만차여서 주차장옆 도로에 하차후 바라본 시암재주차장 전경입니다.

                시암재주차장은 성삼재주차장에서 구레방향으로 조금 아래에 있는 주차장입니다.


   ▼ 성삼재에서 바라본 남원 방향의 조망입니다.


   ▼ 성삼재휴게소 입구에 설치된 지리산국립공원 현판 전경입니다.


   ▼ 성삼재 주차장에는 산행객과 유희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 10:50  전달사항을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만복대 방향은 정령치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고, 우리는 노고단 방향으로.....


   ▼ 우리는 현위치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길을 이어나아가야 합니다.


   ▼ 지도 오른쪽 상단 파란선이 우리가 산행해야할 산행코스입니다.

 

   ▼ 야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입산시간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을 위해 지켜야 할 건 지켜야겠지요.

 

   ▼ 11:00  산행시작 15분이 지났음에도 아직 임도를 이동하고 있고, 붉게 물든 단풍이 멋집니다.

 

   ▼ 11:03  위치 표시 24- 01를 지나갑니다.

                성삼재주차장에서 노고단고개까지가 24번으로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 임도 바닥에는 이런 표시의 동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 11:19  16여분만에 1km를 이동했습니다.


   ▼ 임도 왼쪽에 지름길 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으로 이동합니다.

 

   ▼ 11:19  계단 입구에서 노고단 고개가 약 1.1km남았습니다.

 

   ▼ 짧은 계단을 올라와서 임도와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는 노고단 고개 방향으로....


   ▼ 노고단 고개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이동합니다.


   ▼ 11:25  얼마지나지 않아 임도를 버리고 다시 오른쪽 샛길로 이동합니다.


   ▼ 노고단고개 600m전방 이정표가 있는 지름길로 이동갑니다.

 

   ▼ 현위치에서 임도를 버리고 지름길로 이동합니다.

 

   ▼ 지름길은 박석(납작한 돌)으로 바닥을 깔아놓았습니다.

 

    ▼ 노고단 재피소 옆 기독교 휴양시설로 만든 곳인데 지금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

      (노고단 선교사 휴양시설 역사적 현황)

      기독교계의 지리산 선교 유적지 관련 움직임은 노고단과 왕시루봉의 선교사 휴양공간을

      문화재로 지정해 기독교 유적으로 보존, 복원하고 싶다는 것으로 이들 시설물이 철거당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리산 선교 유적지의 근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일제와 협의를 통해 노고단에

      휴양시설을 마련한 것이 시초다.

      외국인 선교사 휴양지는 원산과 소래 등에도 있었으나, 지리산 노고단은 고지대여서

      토착민이 쉽지 않았던 곳. 따라서 풍토병에 고생하던 선교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는 풍토병이 미치지 못하는 곳.

      이런 조건으로 인해 중국과 일본 등지의 선교사들도 노고단으로 와 휴식을 취했으며,

      선교 전략 수립 및 신구약 성경 번역 등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노고단 휴양소는 1940년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 되면서 적산 처리됐고,

      해방 이후 여순 사건과 한국 전쟁 등의 과정을 거치며 파괴된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린튼과 하퍼 선교사 등이 50년대 말까지 천막을 치고

      휴양소를 유지하다가 1962년 왕시루봉으로 옮겼던 것.

      지역 관리들의 주선으로 토지 소유주인 서울대 농과대학과의 접촉을 통해 사용 허가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왕시루봉은 이후 10년간 선교사 휴양기관으로 기능했으나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외국인 선교사 수가 격감하면서 이용자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현재는 린튼 선교사의 소천 후 아들인 인요한 박사(세브란스 외국인 진료소장가 관리하고 있는 상태.

      2003년 토지 소유주인 서울대 농업생명과학 대학은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사용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2004년 2월까지 국유재산 유상사용 허가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휴양소 건물을 철거하라'는 통보를

      하게 된다. 이에 교계가 보존위원회를 조직해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기독교선교유적지 보존연합은 지난해 4월 한기총과 함께 세미나를 개최해 지리산 유적 보존에

      대한 교계의 적극적인 관심을 일깨웠다.

      이에 앞서 2008년 3월 31일 서울대 총장과 면담을 통해 현 총장 재임기간인 2010년 6월까지는 철거를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전달받은 상태다.

      그렇지만 이후 대책은 없는 상황이어서 문화재 지정을 통한 해결방안을 찾으려하는 것.

      문화재로 지정되면 우선 보존은 가능하게 된다.

      교계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조만간 왕시루봉 수양관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11:33  노고단 대피소 직전 지름길과 임도가 만나는 곳에 있는 이정목입니다.


   ▼ 이정목을 지나자 노고단 대피소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 위치번호 대한 설명입니다. 한 번쯤은 눈여겨 봐둬야 할 듯합니다.


   ▼ 지리산 생태/경관 보전지역에 대한 설명입니다.


   ▼ 11:34  산행 시작 약 1시간만에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

                 지리산에 머물 수 있는 수십 가지 방법 중 노고단 대피소 코스는 가장 쉬운 길이라 할 수 있다.

                 그 아래 성삼재 휴게소부터 대피소까지는 길이 쉽고 거리도 짧다. 하지만 겨울에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휴게소까지 다니던 버스는 겨울철에 운행하지 않고, 폭설이 내리거나 땅이 꽁꽁 얼어버리면

                 그 부근까지 올라가는 택시도 찾아보기 어렵다. 화엄사를 지나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역시 막막하다. 자칫 눈 때문에 길 자체가 없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구간을 만날 수 있다.

                 겨울 지리산은 그 품을 그리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노고단 정상도 식생 보전과 복구를 위해 탐방예약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 현위치에서 임도를 거치지 않고 지름길로 노고단고개로 올라갑니다.


   ▼ 11:35  산행 시작 꼭 1시간만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우측 임도를 거치지 않고 좌측 지름길로 노고단 고개로 향합니다.


   ▼ 지름길로 올라가는 입구입니다. 노고단 대피소 바로 우측에 있습니다.

 

   ▼ 대피소에서 노고단 고개로 올라가는 지름길 전경입니다.


   ▼ 길가에 붉게 물든 잎이 있어 찍었습니다. 색상이 무척 이쁩니다.


   ▼ 11:46  노고단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지름길과 임도가 만나는 곳입니다.


   ▼ 노고단 고개 전경입니다. 이곳에서 산행객들과 유희객들의 구분이 되기 시작하는 갈림길입니다.

      산행객은 이곳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길을 잡고, 유희객들은 성산재로 다시 하산하기 때문입니다.


   ▼ 노고단 고개의 돌탑부근 전경입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짙은 운무로 앞을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 잠시 인원을 확인후 미리 예약해 놓은 노고단 정상으로 가기위한 정상 통제소 앞으로 이동합니다.


   ▼ 노고단 탐방로를 제외하고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 입구 통제소 앞에 설치된 노고단의 유래에 대한 설명입니다.

      (노고단의 유래)   

      노고단이라는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한 것으로 ‘할미’는

      도교()의 국모신()인 서술성모(西) 또는 선도성모()를 일컫는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지명이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노고단 위치에서 서쪽으로 2㎞ 지점에 있는 종석대(, 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네이버 지식백과] 노고단 [老姑壇]

 

   ▼ 노고단으로 오르는 데크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습니다.


   ▼ 11:54  거친 비바람속에서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입니다.

                 (구상나무란?)                

                1907년 제주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 신부 포리(Faurie)가 한국에서 자라는 특이한 나무를

                한라산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 정보를 동아시아 식물 분야 권위자인 미국 하버드대 부설 아널드수목원 소속 아시아담당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H. 윌슨(Wilson) 박사에게 제공하였고, 1917년 윌슨 박사는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해

                정밀연구한 결과 「이 나무는 다른 곳에 존재한 분비나무와 전혀 다른 종으로 지구상에 유일한 종()이다.」

                라고 하며 구상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20년 윌슨 박사가 구상나무를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하면서 처음 구상나무의 존재가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구상나무의 학명()은 Abies Koreana로, Koreana가 붙은 것은 한국이 최초 발견지라는 의미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고 있는 구상나무는 아한대성 고산수종으로,

               한라산ㆍ·덕유산ㆍ지리산ㆍ무등산 등에 분포해 있으며 자생 군락은 한라산에만 형성돼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으나,

               지구온난화로 기온상승이 이어지면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한편 구상나무는 죽은 뒤에는 기묘한 형상으로 남아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개량품종이 잇따라 생산됐는데, 현재 유럽에서는 한국 전나무인 Korean fir로 통하며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구상나무 [Korean fir]



   ▼ 앞에 보이는 전망대가 노고단 오르는 중간의 섬진강 전망대인데 운무로 전망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 노고단에서 구례방향으로 흐르는 능선이 운무로 방향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운무로 인해 섬진강쪽으로의 조망은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 11:59  노고단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운무와 앞뒤 구분이 불가하며 추위로 하산을 재촉합니다.

 

   ▼ 노고단 정상의 돌탑입니다.

      (노고단 돌탑의 유래)

      노고단은 신라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塔)과 단(壇)을 설치하고,

      천지 신명과 노고할머니께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한데서 유래었다고 한다.

      당시 화랑들이 쌓은 탑과 단은 1,000여녕의 세월이 지나면서 초석으로 짐작되면 몇 개의

      큰 돌들만 남아 있었으나, 지난 1961년 7우러 경정유도(更定儒道 : 1928년도 창교된 민족종교)

      에서 다시 축조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년 중양절(重陽節)이 되면 국태민안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산신대제를 경저유도에서 봉행하여

      노고단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 정상을 떠나 노고단 고개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헬기장인데 운무로 시계가 거의 없습니다.


   ▼ 아고산 생태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노고단은 아고산 생태계에 속한다고 합니다.


    ▼ 자연을 지키고 가꾸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헬기장에서 이렇게 보여야하는데 운무로 시계가 열리지 않아 안타까움만 가지고 내려갑니다.

 

    ▼ 12:09  시간이 점심시간을 넘겼지만 노고단고개에는 바람으로 인한 추위로 식사가 불가할

                 정도였습니다. 이동해서 돼지령 부근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이동을 계속합니다.


    ▼ 피아골 및 뱀사골 단풍을 보기위한 산객들이 줄을 지어 이동합니다.

 

    ▼ 12:16 지리산 주능선의 이정목 번호인 01-01을 지나갑니다.

 

    ▼ 노고단 고개를 지나고 난 뒤부터는 오르내림이 없는 평탄한 길이 계속이어집니다.

 

    ▼ 12:26  노고단을 출발한지 1km를 지나왔습니다. 산행 시작한지 1시간 40분정도 지났습니다.

 

    ▼ 산행도중 아는 산객들을 만났습니다.


    ▼ 12:34  점심시간을 약간 넘긴 시간에 점심식사를 합니다.


    ▼ 13:02 약 25분간의 점심시간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이 꺽인 나무는 몇 년전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나무입니다.


    ▼ 13:04  우리가 하산할 피아골 삼거리를 약 1.3km남겨 두고 있습니다.

 

    ▼ 이정목과 위치 표시목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 이 지역은 키큰 구상 나무들로 우거져 있습니다.


    ▼ 13:14  피아골 삼거리 800m 전방 이정목을 지나갑니다. 500m 이동에 약 10분이 걸렸습니다.

 

    ▼ 이정목과 같은 장소에 서있는 위치 표시목입니다.

      노고단에서부터  2km에 4개의 위치목이 설치되어 있으니 500m마다 1개씩 설치되어 있는 꼴입니다.

 

    ▼ 13:18  돼지령에 도착했습니다. 피아골 삼거리까지는 700m남았습니다.


    ▼ 돼지령 지나자 마자 나타나는 조그마한 억새밭입니다.

      조망이 빼어난 전망대를 가지고 있지만 운무로 그 빛을 잃었습니다.

 

    ▼ 13:23  노고단 고개로 부터 2.5km를 이동했습니다. 위치표시 01-05입니다.


    ▼ 위치표시와 같은 장소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피아골 삼거리 300m전방 이정목입니다.

 

    ▼ 혹시라는 생각에서 찍어왔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상황이 없으란 법은 없으니....

 

    ▼ 피아골 삼거리까지도 걷기좋은 편안한 길이 이어집니다.

 

    ▼ 13:27  산행시작 45분만에 지리산 주능선상의 피아골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하산은 피아골 대피소를 거쳐 직전마을, 연곡사를 지나 연곡사 주차장까지 가야합니다.

 

    ▼ 피아골 삼거리에서 부터 고유번호가 26으로 시작되나 봅니다.

       26-12부터 시작해서 역으로 내려갑니다.

 

    ▼ 노고단에서 진행방향으로 좌측은 천왕봉 방향, 우측은 피아골 방향입니다.

 

    ▼ 삼거리에서 약간 오르막 후 급한 내리막이 연결됩니다.


    ▼ 여기서부터는 제법 단풍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 13:43  산행 시작 약 3시간만에 통과하는 위치표시목입니다.

                 피아골 삼거리에서 500m이동하여 위치 표시목 26-11을 지나갑니다.

 

    ▼ 급한 내리막이 이어집니다.


    ▼ 멋진 단풍잎들이 눈을 황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13:57  피아골 삼거리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 2km중 딱 반을 이동했습니다.


    ▼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지만 곳에 따라서는 이미 단풍을 접고 있는 곳도 많았습니다.



 

    ▼ 급한 경사길에는 곳곳에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겨우살이가 나무 곳곳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겨우살이)    

      참나무·물오리나무·밤나무·팽나무 등에 기생한다.

      둥지같이 둥글게 자라 지름이 1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잎은 마주나고 다육질이며 바소꼴로 잎자루가 없다.

      가지는 둥글고 황록색으로 털이 없으며 마디 사이가 3∼6cm이다.

      꽃은 3월에 황색으로 가지 끝에 피고
꽃대는 없으며, 작은 포()는 접시 모양이고 암수딴그루이다.

      화피()는 종 모양이고 4갈래이며, 열매는 둥글고 10월에 연노란색으로 익는다.

      과육이 잘 발달되어 산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되며 이 새들에 의해 나무로 옮겨져 퍼진다.

      생약에서 기생목()은 이것 전체를 말린 것이며, 산의 나무에 해를 주지만 약용으로 쓴다.

      한방에서 줄기와 잎을 치한() ·평보제() ·치통 ·격기() ·자통() ·요통() ·

      부인 산후 제증 ·동상 ·동맥경화에 사용한다.

      한국 ·일본 ·타이완 ·중국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열매가 적색으로 익는 것을 붉은겨우살이(for. rubroaurantiacum)라고 하며, 제주도에서 자란다.

      [네이버 지식백과] 겨우살이

 

   ▼ 많은 산객들로 줄을 지어 이동하며 진행 속도가 느리게 이동합니다.


   ▼ 14:13  피아골 대피소 500m전방에 도착했습니다.

 

   ▼ 현위치표시와 같은 장소에 있는 위치표시목입니다.

      급한 경사에는 위치표시목을 촘촘히 설치해 둔 것 같습니다.

 

   ▼ 14:14  계곡을 건너는 첫 철다리를 만납니다.

 

   ▼ 계곡 상류여서 그런지 수량이 많지를 않습니다.

 

   ▼ 철다리에서 바라본 계곡 아래쪽 전경입니다.


   ▼ 멋진 단풍길이 이어집니다. 계곡이라 그런지 돌길이 이어집니다.


   ▼ 멋진 단풍으로 돌길의 피로함도 느끼지 못합니다.

 

 

   ▼ 14:26  직전마을 4.1km전 위치표시목 26-08번을 통과합니다.


   ▼ 위치표시목 26-08과 같은 위체에 서있는 현위치 표시입니다. 피아골대피소 직전입니다.


   ▼ 14:28  피아골 대피소 출입문입니다.


   ▼ 피아골 대피소에 설치된 이정목입니다. 대피소에서 인원점검 및 잠시 쉬어 가도록 합니다.

      직전마을 4km남았습니다.  피아골 삼거리에서 직전마을까지 6km입니다.


   ▼ 안개비가 내리는 피아골 대피소에는 많은 산객들로 붐빕니다.


   ▼ 피아골 대피소 단풍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 피아골 대피소 전경입니다.


   ▼ 피아골대피소의 단풍은 절정기로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 피아골 대피소에서 단체 사진을 한 장 남기고....

 

   ▼ 14:37  산행시작 3시간 50분만에 피아골 대피소를 떠나 직전마을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 하산길은 계속되는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 14:40  물과 나무와 바위와 단풍이 어우러진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 14:46  계곡을 건너는 교량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 인파로 인해 진행이 계속 더뎌지고 있고, 줄을 서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 피아골 하부쪽으로 이동 할수록 계곡의 수량은 늘어납니다.

 

 


   ▼ '작살나무'입니다.

      전국의 산기슭에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로 중국 중부, 일본 등지에도 분포한다. 

      꽃은 6-8월에 잎겨드랑이의 취산꽃차례에 많이 달리며, 연한 자주색이다.

      열매는 핵과이며, 자주색으로 익는다. 관상용으로 재배하고 약용으로 쓰인다.

      작살의 자루로 이용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작살나무


   ▼ 15:01  직전마을 3.1km 전방 이정목을 지나갑니다.


   ▼ 계속이어지는 단풍의 향연입니다.




   ▼ 15:08  직전마을 2.8km 전방 이정목을 통과합니다.


   ▼ 계곡의 단풍이 이쁘게 물들었습니다.

 

   ▼ 15:10  제법 긴 출렁다리인 구계포교를 지나갑니다.

                구계포교 주위의 단풍이 피아골에서 가장 멋지다고 했는데 다소 시기를 지난 것 같았습니다.


 

   ▼ 구계포교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철계단의 오르막이 연결됩니다.

 

   ▼ 그래도 피아골 명성답게 아름다운 단풍들이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 단풍을 즐기면서 이동하니 이동이 매우 늦게 진행됩니다.


 

   ▼ 15:26  삼홍소에 도착합니다.

                지리산의 단풍은 핏빛으로 비유될 만큼 선명한 색채를 자랑한다.

                또한 피아골과 뱀사골 등 풍치가 뛰어난 계곡과 어우러진 붉은 단풍은 단연 최고로 꼽힌다.

                피아골 직전마을~피아골 삼거리 구간은 총 8km로 탐방하는 데 4시간 정도 걸린다.

                특히 지리산 피아골 계곡 단풍은 직전마을에서 연주담, 통일소, 삼홍소까지 이르는 구간이

                으뜸으로, 이곳에서 멋진 절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 삼홍소 전경입니다.


   ▼ 삼홍소의 뜻을 풀어 놓았습니다.

      단풍이 산을 붉게하는 산홍(山紅)

      붉은 단풍에 물에 비치어 물까지 붉게보이는 수홍(水紅)

      산홍과 수홍으로 사람들의 얼굴까지 묽게 만드는 인홍(人紅)을 삼홍리라 한다.


 

   ▼ 곳곳에 너들길도 만납니다.

 

    ▼ 15:42  직전마을 1.7km를 남겨둔 위치표시목 26-04를 지나갑니다.


   ▼ 계곡길이 위험한 곳에는 쇠사슬로 안전보호 로프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 피아골에 대한 유래를 게시해 놓았습니다.

     (피아골 지명유래)     

      피아골은 지리산의 관문인 노고단의 등너머서 섬진강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깊이

      빠져나간 큰 계곡이다.

      한국전쟁 직후 "피아골"이란 영화작품이 나왔던 탓으로 흔히들 한국전쟁때 이곳에서 동족상잔의

      피를 많이 흘려 피아골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오랜 옛날부터 불려 내려오는

      유서깊은 이름이다. 

      그 어원을 살펴보면 옛날에 속세를 버리고 한적한 이곳 선경을 찾은 선객들이 이곳에 고대 오곡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자연히 피밭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 후 점차 그 발음이 피아골

      와전된 것이라 한다.  


   ▼ 15:50  산행시작 약 5시간이 경과했습니다.

                단풍이 제일 빼어나다는 삼홍소 부근의 다리를 지나갑니다. 

 

   ▼ 단풍과 물과 바위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에서 산객들이 삼홍을 즐기고 있습니다.

 

   ▼ 11:51  직전마을 1km전방 위치 표시목 26-03번 표고막터를 통과합니다.

 

   ▼ 표고막터는 표고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움막을 지었던 장소를 말합니다.

 

   ▼ 우리가 이동해왔던 코스는

      좌측 위 성삼재휴게소에서 시작하여 노고단대피소~노고단고개~노고단~노고단대피소

      ~돼지령~피아골삼거리~피아골대피소~표고막터까지 진행했고, 이어서 직전마을

      ~연곡사~연곡사주차장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 표고막터부터는 등로가 많이 넓어져 임도가 열려 있었습니다.


   ▼ 임도따라 가는 길도 제법 단풍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 피아골로 불리게 된 유래인데 3번이 정확한 유래라고 합니다.

 

   ▼ 16:05  국립공원을 벗어나기 직전에 있는 현위치 마지막 번호인 26-01번 위치표시목입니다.


   ▼ 26-01 위치표시목이 있는 국립공원 입구입니다. 

      피아골 삼거리의 위치 표시목이 26-13에서 시작했으니 13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 국립공원 벗어나자마자 형성되어 있는 음식점 및 숙박시설들입니다.


   ▼ 직전마을 전경입니다. 관광지로서 거의가 펜션 등 숙박시설입니다.


   ▼ 16:11  직전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명에 대한 유래비입니다.

 

   ▼ 국립공원 관광안내도입니다. 우리는 현위치에서 연곡사 주차장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 피아골 이야기를 옮겨 놓은 설명판입니다.


   ▼ 직전마을에서 연곡사로 내려가는 포장도로입니다.


   ▼ 16:40  약산행시작 약 6시간만에 연곡사 직전의 서굴암이란 암자 입구를 지나갑니다.

                 서굴암이란 연곡사 뒤쪽의 조그마한 암자를 말합니다.


   ▼ 14:22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입니다. 시간이 없어 사찰 탐방은 다음기회로...

                (연곡사에 대해....)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내동리 산54-1)번지에 위치한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로 백제 성왕 22년 인도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엄계 사찰이었던 연곡사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과 승탑비 및 현각선사탑비(979년 건립)등이 남아 있어 선종계 사찰로 성격이 바뀌었다.

 

                연곡사에 대한 고려시대 후기 기록으로는 목은집에 이색이 연곡사 주지인 인우스님에게

                서찰과 차를 받으면서 지은 시 정도가 남아있다.

                조선시대 전기 작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연곡사가 구례 지리산에 위치하고,

                고려시대 학사 왕융이 지은 현각선사비문이 남아있다.

 

                현각선사탑비의 명문을 알 수 있는 비편은 7개로, 조선금석총람122, 금석유문14,

                대동금석서68, 한국금석문대계6, 전남대학교 박물관 시굴조사 비편 12,

                연곡사 전주지 고봉스님 습득비편 2,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비편 13자로 총 236자이다.

 

                조선 시대 연곡사는 1598410일에 왜적이 사찰에 들어와 살육을 자행하고 불을 질러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5(1627)에 소요대사 태능(1562-1649)에 의해 중건하였다.

                조선후기(1745) 연곡사를 율목주재봉산으로 삼아 연곡사 주지가 도제조가 되었다.

                정조 3(1779) 동파당 정심선사가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현각선사비는 임진왜란 이후

                문자의 획이 박락되다가 19세기 후반에 마침내 깨어졌다.

 

                구한말(1895) 율목주재봉산이었던 연곡사는 밤나무 남용으로 사세가 기울어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절이 폐망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1907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1924년 박승봉이 연곡사 경내에 심우암을 창건하고 쌍계사 손범성 스님이 운영하다,

               한국전쟁당시 피아골 전투로 다시 소실되었다.

                1965년 대웅전과 요사채를 겸한 전각을 건립하고,1981년에 종인스님이 대웅전을 헐고 대신

 

               그 자리에 정면5,측면3칸 규모의 대적광전을 신축하였다.

 

 

   (연곡사의 문화재를 연곡사 홈페이지에서 퍼 왔습니다.)

 

 

 

 

 

 

 

 

 

 

 

 

 

 

 

 

 

 

 

 

 

 

 

 

 

 

 

 

 

 

 

 

 

 

 

 

 

 

 

 

 

 

 

 

 

 

 

 

 

 

 

 

 

 

 

 

 

 

 

 

 

 

 

 

 

 

 

 

 

 

 

 

 

 

 

 

 

 

 

 

 

 

 

 

 

 

 

 

 

 

 

 

 

 

 

 

 

 

 

 

 

 

 

 

 

 

 

 

 

 

 

 

 

 

 

 

 

 

 

 

 

 

 

 

 

 

 

 

 

 

 

 

 

 

 

 

 

 

 

 

 

 

 

 

 

 

동승탑(국보 제53호)

동승탑 (국보 제53호)

연곡사 동승탑은 주불전인 대적광전에서 북동쪽 10m내외의 산기슭에 위치한다. 국보 제53호로 지정된 동승탑은 전체 높이 3.5m, 지대석 폭 1.75m내외로 연곡사에 있는3기의 승탑 중 가장 정교하다.

양식적으로는 팔각원장을 기본으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를 쌓은 일반형이다. 지대석과 하대석은 한 개의 석재로, 하대석은 이단으로 팔각형이며,하대석 윗 부분은 중대석받침이다. 하대석에는 운룡을,중대석 받참에는 면마다 형태가 다른 사좌상이 1좌씩 돋을새김 되어있다. 중대석 받침위면에 3단의 괴임대가 마련되어 중대석을 받쳤다.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면마다 안상속에 무기를 든 팔부신중상이 돋을새김 되어있다. 상대석은 3단의 받침대 위에 놓여있으며, 중대석 굄대와 대칭을 이룬다. 측면에는 홀 연꽃이 앞 뒤로 겹쳐진 모습의 연꽃이 위로 벌어진채 돋을새김 되어있다.

연꽃은 상하 2열에 16판 씩,꽃잎 안을 다시 꽃씨로 장식하였다. 윗면의 탑신 받침은 모서리마다 소반상 다리 같이 중간에 둥근마디가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자세가 다른 가릉빈가상이 부조로 돋을새김 되어 있다. 탑신 받침 위면에는 낮은3단의 괴임을 두고 그 위에 팔각기둥모양의 탑신석을 받쳤다.

탑신의 각면에는 문비사천왕상이 낮게 돋을새김 되어 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지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이중의 연목과 기왓골뿐만 아니라 처마 끝에 막새까지 나타내고 있으며,지붕아랫면에는 구름문양과 비천상이 돋을새김 되어있다.

지붕마루끝 측면에는 풍탁을 걸어두었던 두 개의 구멍이 있으며, 그 윗부분에는 잡상을 얹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상륜부는 앙화 위에 네 방향으로 날개를 편 채로 서있는 새를 조각하고 그 위에 다시 연꽃문양의 보륜을 얹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다른 승탑보다 기단부가 높고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치밀하다. 연곡사에 현재 남아 있는 승탑 가운데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통일신라말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동승탑비(보물 제153호)

동승탑비(보물 제153호)

동승탑비는 동승탑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규모는 높이 1.9m, 지대석 1.56m (가로)x1.74m(세로)이다. 현재 비신은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는 지대석과 한돌로 네다리를 사방으로 뻗고 있어 마치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을 연상시킨다.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든 귀부의 정상에는 장방형의 비좌를 마련하고 있는데 비좌의 네 측면에는 구름무늬를 고부조로 장식하였으며,그 윗면 주위로 복판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머리는 떨어져 나간 것을 다시 붙여 놓았다. 

 거북의 등문양은 앞쪽으로는 파상곡선으로 이루어진 새 깃 모양의 조익형 무늬이고 뒤쪽으로는 육각의 갑문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수는 삼산형으로 고부조의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그 정상에 화염보주 형태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수 앞면에는 탑액을 가로32cm, 세로38cm의 크기로 시설하여 놓았으나 명문은 없다. 귀부는 적갈색이고 이수는 암갈색으로 돌의 재질도 다르며 화재에 의한 피열흔이 확인된다.

 

북승탑(국보 제54호)

북승탑 (국보 제54호)

동승탑에서 150미터정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놓이 3.6미터,지대석 폭 1.75미터 정도이다. 이 승탑은 동승탑과 같이 한 장의 석재로 된 네모 난 지대석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상륜부를 차례로 쌓은 일반형이다. 동승탑을 모방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되었다고 보여지며, 현각선사 승탑으로 추정된다.

이 북승탑의 하대석도 한 개의 석재로, 아래쪽은 구름문양을 중대석 받침에는 겹꽃 16엽의 연화문을 두른 팔각형 돌을 올려 놓았고 중대석 받침의 여덟 귀퉁이에는 귀꽃무늬를 돌출시켰다. 중대석과의사이에는 3단의 굄단이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은 낮고 잘룩한에 각면의 안상 안에는 무엇인가가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의 아랫면에는 3단의 받침을 설치하여 중대석 굄 3단의 받침을 설치하여 중대석 굄 3단과 대칭을 이루었다.

상대석 옆면에는 홀 연꽃으로 3번 겹쳐진 연꽃잎이 위로 벌려져 있고 꽃잎 안에는 꽃씨 무늬 장식을 하였다. 윗면에는 높은 탑신 받침이 있는데 모서리마다 소반상 다리처러 둥근 마디가 있는 난간을 세우고 그 사이 안상 안에 가릉빈가를 1구씩 조각하였다.

가릉빈가의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새인데 8개면 모두 자세가 다르다. 탑신은 팔각이며 각면은 문비2. 2. 사천왕상으로 장식되었다. 넓은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양식을 따라 이중의 연목과 기왓골 막새를 새겼고 아랫면에는 비천을 조각하였다.

지붕마루 끝 윗부분에는 동부도와 같이 지금은 깨져있으나 잡상 같은 것을 얹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앙화 위에 네 방향으로 날개를 활짝편 채로 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를 조각한 석재를 쌓고 그 위에 다시 연꽃문양의 보륜을 얹었다.

이 북승탑은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동승탑을 모범으로 그 양식을 충실히 이으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중대석의 받침처럼 균형미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 소요대사승탑(보물제154호) 

소요대사승탑(보물 제154호)

연곡사 서북쪽에 위치한 이 승탑은 높이 3.08m,지대석 너비 0.7m, 보물 제154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승탑은 평면 팔각원당의 기본형으로 지대석은 팔각으로 잘 다듬었으며,윗면에는 얕은 턱이 하대석을 받치고 있다. 하대석은 팔각이며 상하로 구분된다.

하단 측면은 평면으로 장식이 없다. 상단은 둥글게 말아올라가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상단 윗면에는 중앙에 턱이 있고 그 주위에는 홈이 파여 있다. 이홈은 뒤쪽과도 연결되어 배수시설로 보인다. 중대석은 납작한 팔각구형으로 상하에 홀 연꽃이 대칭으로 돋을새김 되었다. 상대석은 팔각이며 홀 연꽃 8엽이 위로 벌어지듯 조각되었고 아랫면에는 2단의 각지게 꺾인 받침이 있다.

윗면에는 높은 둥그런 괴임이 있다. 탑신도 팔각으로 한 면에 문비를 모각하고 다른면에 높게 돋을새김한 신장상이 1구씩 배치되어 있다. 옥개석은 팔각으로 추녀끝은 얇고 넓은 편이다.

옥개석 아랫면에는 높직한 받침을 중심으로 연목이 모각되었고 낙수면은 급경사를 이루었다. 각면의 팔각에는 팔조의 우동이 뚜렷하며 추녀 끝에 이르러 큼직한 귀꽃이 솟아 있다.상륜부는 완전하며 정상에는 팔엽의 앙련으로 된 앙화가 있고, 그 위에 납작한 구형이 복발이 있는데 횡대위에 꽃무늬가 조각되었다.

복발위에 큼직한 보개와 보주가 차례로 놓여 있는데 보개에는 4방향으로 벼슬을 늘어뜨린 새모양이 조각 되어 있다. 이 승탑 탑신석 한 면에 소요대사지탑/순치육년경인이라는 두줄의 음각명문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소요대사는 백양사에서 계를 받고 부휴대사에게서 경전을 배웠으며,서산대사에게서 청전본원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소요대사는 순치 5(1649)에 입멸하였는데 그 다음 해에 이 승탑을 세웠다. 소요대사의 승탑은 현재 김제 금산사에 있으며, 지리산 연곡사를 비롯하여 해남 대둔사,연천 보개산 심원사에 있다고 전한다. 현재 소요대사 승탑은 김제 금산사와 장성 백양사 구례 연곡사에 남아있다.

 

3층석탑(보물 제151호)

 3층석탑 (보물 제151호)

이 석탑은 기단이 3층으로 옥개석이 전형적인 방형탑으로 각층의 기단이 여러개의 석재를 사용하여 건립되었다. 하층기단은 지대석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위 아래에 하대 갑석과 하대 저석을 두고 그 사이에 낮은 하대 중석을 놓았다. 하대중석 좌우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탱주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하층 기단 갑석의 상면에는 중층 기단의 저석을 받치기 위한 낮은 단이 있다. 이들 하층 기단의 석재는 하대 면석이 8, 하대 갑석이 6개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중층 기단의 전반적인 모습은 하층 기단과 유사하나 갑석 바깥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중앙에는 각형과 호형의 몰딩이 있다. 중층기단의 면석은 6, 중층기단 갑석은 3개의 석재로 결구되었다.

상층 기단 역시 하층,중층 기단보다 높아진 모습이며, 상층 기단 면석은 좁아졌고 각면에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었다. 상층기단의 상대 갑석 아래에는 부연이 있고 상면은 비스듬하게 기울며 각지게 꺽인2단의 탑신괴임을 두었다. 사층기단 면석은 4개 갑석은 1개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탑신부는 모든 층의 옥신에 우주가 표현되었으며,2,3층의 옥신은 급격히 줄어 들었다. 옥개는 한 개의 석재로 쌓았고 층급 받침은 모두4단이다. 옥개는 곡선을 그리며 우각으로 흘러내린 마루끝이 살짝 들렸다.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이 석탑은 1967년 보수를 위해 해체,복원 되었으며, 해체과정중 상층 기단내 자연판 석상에서 높이 23.5cm 크기의 금동여래입상 1분이 발견되어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이불상은 턱이 양간 들려진 모습이며 머리에 비해 어깨가 좁고 전체적으로 경직외어 있다. 이 금동불은 U자형으로 겹쳐지는 법의와 우수상,좌수하 형식의 수인,상대 하대만 갖춘 대좌의 모습에서 통일신라 금동불 양식의 잔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경직된 상호,자세,의습으로 보아 고려초에 제작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 현각선사탑비(보물제152호)

현각선사탑비(보물 제152호)

현각선사 탑비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소장 탁본에 의하면 경종 4(979)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귀부는 지대석과 한 돌로 네다리를 사방으로 뻗쳐 납작 엎드린 형상이다.

동승탑비와 반대로 왼쪽 앞발을 살짝 들고 있다. 비신 받침에 구멍이 나 있어 배수를 위한 시설로 보인다. 조각 수법은 몸체에 비해 큰 머리나 비좌 사면에 안상과 귀꽃이 새겨져 있다. 이수 앞면 중심에 현각선사탑비이라는 전액이 음각되어 있다.

문헌에 의하면 학사 왕융이 지었고 주국 장신원이 썼다고 한다. 글씨는 2센치 정도의 해서로 구양순체를 바탕으로 하는 체이며 자형을 바르게 하여 고박한 글체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