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은 벼루고 벼루었던 덕유산 국립공원의 적상산을 가기로 정했지만
일 주일 전부터 일기에보가 심상치 않았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많은 비가 예보되어 동행키로 했던 회원들이 꼬리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어차피 정한 산행지라 무리를 해서라도 정상적인 산행을 강행키로 했다.
전국적으로 가뭄 피해가 심한 상태에서 산행을 위해서 날씨가 개이기를 바란다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강행하는 산행이기 때문에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처럼
비가 오면 우산장수 아들이 돈을 벌고, 날이 개이면 짚신장수 아들이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이번 산행도 같은 이치로 생각하여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비가 오면 극심한 가뭄이 해소되어 좋고, 날이 개이면 우리 산행 보탬이 된다고 생각으로....
(적상산 개요)
적상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가을뿐만 아니라 철따라 독특한 개성미를 가득 뿌린다.
적상산에는 장도바위, 장군바위 등 자연 명소와 함께 최영 장군이 건의하여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 146호)이 있다.
현재의 성은 조선 인조6년(1628년)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가 8.143㎞에 이른다.
적상산성 안에는 고찰 안국사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운치를 더해 준다.
적상산은 적상면 중앙에 솟은 향로봉과 기봉 두 봉우리를 주봉으로 한다.
북쪽 향로봉과 남쪽 기봉이 마주하고 있는 정상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이라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다.
하지만 지면에서 800-900m 가량되는 산허리 까지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이다.
험한 바위산인 탓에 등산로는 서창리 지소 쪽이나 조금 아래 쪽으로 내려가서 안국사로 오르는 적상교가 일반적이나
안국사로 오르는 길은 돌비탈을 지나야 하고 길도 애매해서 지소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장도바위)
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적상산 산정호수)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으로 적상호라 명명되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하다.
(산행개요)
1. 산행날짜 : 2015.11.07(토) 날씨 : 구름후 오후 비조금
2. 산행시간 : 10시10분 ~ 15시25분(5시간15분)
3. 이동, 도상거리 : 10.1km, 9.56km
4. 평균속도 휴식 포함 : 1.92km/h
휴식 제외 : 2.89km/h
5. 고도 : 1,054m ~ 347m(707m) : 최고봉인 향로봉이 1038m 감안 gps오차 참조
6. 오르막 거리, 속도 : 3.74km, 2.13km/h
7. 내리막 거리, 속도 : 4.51km, 2.59km/h
8. 휴식횟수, 시간 : 4회, 약 1시간
9. 산행코스 :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탐방안내소 ~ 장도바위 ~ 적상산성 ~ 향로봉 삼거리
~ 향로봉 ~ 향로봉 삼거리 ~ 적상산 정상 바로아래 적산산성비 ~ 안국사 삼거리 ~ 안국사
~ 안국사 산문 ~ 적상산 사고지(적상호) ~ 송대폭포 ~ 치목마을
▼ 산행궤적을 위성지도에 표시한 내용입니다.
▼ 산행궤적을 등고선지도에 표시한 표입니다.
▼ 산행결과를 고도표에 표시한 그래프입니다.
▼ 산행 안내지도입니다.
산행코스는 들머리인 서창탐방지원센타를 출발하여 서문, 향로봉 삼거리에서 향로봉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 적상산, 안국사, 적상산사고, 송대폭포를 거쳐 날머리인 치목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입니다.
▼ 10:15 산행 들머리인 서창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가 추색(秋色)으로 우리를 맞아줍니다.
▼ 입구의 선배식당이라는 간판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옵니다.
네비게이션도 선배식당을 찍어서 찾아왔습니다.
▼ 들머리에 의병장 장지현 장군이라는 묘지가 있고, 묘지 앞에 420여년된 노송이 버티고 있습니다.
(의병장 장지현장군)
장지현장군은 중종 31년(1536)~선조 26년(1593) 사이의 인물로 자(字) 명숙(明淑), 호(號) 삼괴(三槐),
본관은 구례(求禮)이며 백야(栢冶) 장필무(張弼武)의 둘째 아들이다.
선조 23년(1590) 전라병사 신립(申砬)의 천거로 부장을 거쳐 감참이 되었는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감사 윤선각(尹先覺)의 부름으로 비장이 되어 그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
군사를 이끌고 추풍령에다 진을 치고 있을 때 왜적을 만나 최후의 일각까지 용감하게 싸우다가
그의 종제 호현(好賢)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했다.
묘역아래에는 무주군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된 수령 400~420년 된 노송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장지현 장군 묘지 앞에 위치하고 있어 일명 장군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 장군송의 자태입니다.
▼ 장지현 장군 묘역 전경입니다.
▼ 장군묘역에서 바라본 만추의 서창마을 전경입니다.
▼ 장군묘역에서 바라본 우리가 올라갈 산등이의 추색 전경입니다.
▼ 출발 전 오붓한 촬영을 하고서는.....
▼ 10:23 선배식당 앞을 지나서 본격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 아스팔트가 끝나는 지점에 본격적인 들머리가 있습니다.
▼ 까치밥으로 남겨둔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선조들의 지혜가 전해 내려오는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 서창탐방안내소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볼일을 보고....
▼ 서창탐방안내소 부근의 농익은 단풍 모습입니다.
▼ 서창공원지킴터 건물을 거쳐 본격적인 들머리로 이동합니다.
▼ 덕유산국립공원 안내도입니다.
(덕유산국립공원)
전북 무주군을 중심으로 경남 거창군 ·함양군, 전북 장수군에 걸쳐 면적 219km2이고,
1975년 2월 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유산은 약 20km에 걸친 긴 능선을 포함하는 산이다.
즉 북동부의 북덕유산을 주봉으로 남동부의 남덕유산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에 무룡산(舞龍山:1,492m) ·삿갓봉[笠峯:1,386m] 및 동엽령(冬葉嶺:1,328m) 등
산봉과 안부(鞍部)가 이어진 소백산맥의 주맥이 웅대한 능선을 형성하면서 덕유산의 주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들 주봉군의 장엄한 산용은 예로부터 명산의 칭송을 받아 왔으며, 칠연(七連)폭포 ·용추(龍湫)폭포 등이
걸려 있는 계곡미가 훌륭하고, 정상부의 주목군락과 고산식물 및 산체를 뒤덮은 대수해(大樹海)의
경관이 뛰어나다.
그 밖에 무주군으로 내리뻗은 두 갈래의 지맥에 딸린 적상산(赤裳山:1,038m) ·두문산(斗文山:1,051m)
·거칠봉(居七峰:1,178m) 및 칠봉(七峰:1,161m) 등의 산도 훌륭한 경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덕유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경승지는 역시 무주구천동이다.
무주구천동은 덕유산 정상부 가까이에서 발원하는 금강 상류의 한 지류인 원당천(元唐川)이 덕유산 북사면을
침식한 계곡으로, 약 25km에 걸친 구간에 33경으로 꼽히는 절경이 줄지어 있다. 절
벽 ·기암괴석 ·암반 ·대석(臺石) 등의 암석경관과 폭포 ·급단(急湍) ·벽담(碧潭) 등의 계류경관 및 울창한 수림경관이
조화된 33경 중에는 수성대(水城臺) ·가의암(可意巖) ·추월담(秋月潭) ·수심대(水心臺) ·수경대(水鏡臺)
·청류동(淸流洞) ·비파담(琵琶潭) ·구월담(九月潭) ·청류계(淸流溪) ·구천폭포(九千瀑布) 등이 있다.
한편 국립공원 안에는 구천동의 제32경으로 꼽히는 백련사(白蓮寺)와 안국사(安國寺) 등 사찰 및
나제통문(羅濟通門)과 적상(赤裳)산성 등 사적이 있다.
백련사는 구천동계곡이 끝나는 고도 940m 지점에 있는 절로,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과 6 ·25전쟁 때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그 후에 새로 지은 것이며,
1723년(경종 3)에 주조된 범종을 소장하고 있다.
안국사는 적상산의 적상산성 안, 해발고도 1,000m 지점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에 창건하여
1613년(광해군 5)과 1864년(고종 1)에 중수하였다.
극락전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적상산 사고(史庫) 현판을 소장하고 있다.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雪川面)과 무풍면(茂豊面) 사이의 암벽을 뚫은 인공동문(洞門)으로
구천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높이 3m, 길이 10m로 본래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인데, 그것이 뚫리게 된 경위와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본래 나 ·제(羅濟)의 국경이었던 동문은 그후 통일신라 ·고려시대에도 계속 행정구획의 경계가 되어
오다가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에 이르러서 동문 밖의 무풍현(茂豊縣)이 동문 안의 주계군에 합쳐졌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재의 무주군으로 개칭되었다.
그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오늘날에도 동문 안쪽 사람과 바깥쪽 사람, 즉 무주 사람과 무풍 사람 사이에는
언어 ·풍습 등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적상산에 있는 적상산성은 1628년(인조 6)에 축조한 산성으로, 사적 146호로 지정되어 있다.
4면이 절벽으로 둘러진 산정부의 분지가 성 안에 해당되며, 본래 성 안에는 사고(史庫) ·선원각(璿源閣) 및
현존하는 안국사 외에 호국사 등이 있었으나, 현재 약 3km의 성지(城址)와 군데군데의 석축 및 높이 1∼3m의
북문지 ·서문지 ·사고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한편, 산성 일대의 산지는 가을의 단풍이 아름답고, 설천면 남대천 일대는 반딧불의 유충인 다슬기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리고 무주 구천동 심곡리에는 환경단체들의 자연파괴고발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키장 등 레저시설을
갖춘 무주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유산국립공원 (裕山山國立公園)
▼ 국립공원입구 주변의 단풍이 빼어납니다.
▼ 10:30 본격적인 들머리로 첫 목적지인 향로봉까지는 3.4km 남았습니다.
산행 시작후 산행 준비와 이동에 약 2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갑니다. 주위는 온통 가을색으로 뛰어납니다.
▼ 덕유산국립공원의 북서쪽에 위치한 적상산은 국립공원의 외곽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코스는 현위치인 서창공원지킴터,장도바위,서문,향로봉 삼거리, 향로봉,
다시 빽하여 향로봉 삼거리, 안렴대삼거리,안국사,적상산 사고지,송대폭포,치목마을로 하산합니다.
▼ 10:31 약간의 오르막이지만 추색에 정신이 팔려 힘듦을 느끼지 못합니다.
▼ 가파르지 않은 계단길이 지속이어지지만 추색이 아름답습니다.
▼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산길은 잘 닦여져 있습니다.
▼ 조그마한 개울 웅덩이에는 낙엽이 아름다운 채색그림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 10:40 본격적인 들머리에서 10분이 지난 시간에 위치표시 덕유 02-01을 통과합니다.
▼ 위치표시목 02 -01 부근에 설치된 이정목입니다.
▼ 계속되는 약한 오르막에 가파르지 않는 계단이 연속됩니다.
▼ 10:51 위치표시목 02-02를 지나갑니다.
02-01에서 400m를 이동했고 약 11분이 소요되었습니다.
▼ 10:52 선두조가 후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풍광 좋은 곳에서 쉬어가기로 합니다.
▼ 10:58 본격적인 들머리에서 1.1km를 이동해왔습니다.
▼ 하늘, 땅 모두가 추색(秋色)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 골짜기 곳곳에는 너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계곡에 멋지게 만들어진 나무 조각입니다.
▼ 11:05 산행 시작 55분만에 향로봉 전방 2.1km이동했습니다. 추색에 취해 산행 속도가 무지 느립니다.
▼ 자연적인 요새처럼 바위절벽이 둘러쌓인 적상산이지만 산행길은 지그재그로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지그재그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 생강나무 잎의 추색으로 변한 색깔이 생각보다 멋지게 보입니다.
▼ 나뭇잎의 속살이 빠지고 나니 이것도 예술작품입니다. ㅎㅎ
▼ 11:10 바위 위의 작은 돌탑이 있는 곳을 지나갑니다. 산행 시작 꼭 1시간만입니다.
▼ 지그재그길이라 어렵지 않게 산행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11:13 세번째 위치표시목은 2번째에서 500m거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창마을에서 안국사까지의 산행길이 덕유02 루트로 표기하나 봅니다.
▼ 밑에서 보던 치마같이 가파른 바위가 우측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덕유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부착한 나무 설명판을 하나씩 찍어왔습니다.
▼ 우측으로 큰바위를 지나갑니다. 위쪽으로는 바위전망대가 있습니다.
▼ 우리가 말하는 꿀밤나무가 졸참나무라고 한답니다.
▼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운무가 마치 산중의 호수를 연상케 합니다.
▼ 바위와 어우러진 가을색이 멋집니다.
▼ 본격적인 치마처럼 생긴 바위밑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아래 보이는 바위가 첫바위전망대입니다.
▼ 뾰족하게 생긴바위들이 책장의 책이 비스듬히 넘어가는 것처럼 기울여져 있습니다.
▼ 11:35 위치 표시목 02-04를 통과합니다. 산행시작 1시간25분이 지나갑니다.
▼ 바위 위의 바위 중간에 난 길이 예상치 못하게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 길 아래 쪽과 위 쪽으로 깍아지를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절벽 아래 위의 사이에 난 길은 낙엽 푹신한 아름다운 길이 연결되지만
곳곳에 낙석주의 표시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바위위에서도 식물들은 뿌리를 붙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력의 강인함이란....
▼ 11:47 장도바위에 다다랐습니다.
장도바위 옆 바위틈으로 정상으로 연결되는 길이 나 있습니다.
▼ 장도바위 전경입니다.
▼ 장도바위를 지나 아래로 쳐다본 바위틈새로 정상으로 올라오는 길이 위태로와 보입니다.
▼ 11:51 적상산성에 도착했습니다.
(적산산성 개략)
고려 말에 축조된 석축 산성.
이 성이 있는 적상산(해발 1,029m)은 그 바위색이 검붉을 뿐만 아니라 사면에 둘러쳐 있는
층암절벽이 가을 단풍과 어울려 아름답고 여인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산 또는 상성산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둘레 약 8,143m, 높이 1.2~1.8m이며,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 등이 남아 있으며, 당시 성 안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한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서를 보관하였던 사각(史閣)과 기타 건물의 터만 남아 있다.
100여년 전인 1901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지역은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였으며,
고려 때 왜군과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과
이웃 군민들은 이곳으로 피하여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도통사 최영(崔瑩)은 이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를 지어 불의의 변에 대비하기를
청하였고,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후 임진왜란이 끝난 1614년(광해군 6)에 실록을 보관할 사고가 설치되었고,
1633년(인조 11)에는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묘향산에 있던 사고를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였다.
계속하여 1641년에는 선원각·군기고·대별관을 세우고, 1643년에는 산성의 수호 대책으로서 승군을
널리 모집하고자 호국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조직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적상산성 [赤裳山城]
▼ 적산산성 서문이 있던 곳 전경입니다.
▼ 적상산성에 서문지에 있는 적상산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 적상산성 서문지 전경입니다.
▼ 11:52 향로봉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향로봉 정상까지는 1.1km남았습니다.
▼ 11:55 위치표시 덕유 02-05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안국사로 직행하지 않고 향로봉 삼거리를 거쳐 향로봉으로 향해야 합니다.
▼ 적상산성 서문지 이후에는 걷기 좋은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 향로봉 삼거리를 향해서 이동합니다. 가는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 12:05 향로봉 삼거리를 지나갑니다. 우리는 향로봉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나아가야 합니다.
▼ 능선길 우측으로 인공호수인 적상호가 언뜻언뜻 나무사이로 보입니다.
▼ 향로봉 삼거리에서 향로봉 까지는 얼마되지 않는 거리지만 낙옆깔린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 12:18 향로봉에 도착했습니다.
적상산의 정상은 군사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어 향로봉이 실질적인 정상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향로봉은 여러 곳에 있겠지만 한국 3천 개 산명에 포함되어 있는 향로봉 수는 10개 정도로
높이 순으로 보면 강원 인제의 향로봉(1296.3m), 원주의 향로봉(1042.9m), 전남 무주의 향로봉(1024m),
밀양 단장면 향로봉(979m)경북 포항의 향로봉(930m), 경남 양산의 향로봉(727m),
전남 영암의 향로봉(723.1m), 서울 은평의 향로봉(527.4m), 경기 연천의 향로봉(?m),
광주 동구의 향로봉(?m) 등이 있지만 무주 덕유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향로봉도 꽤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 당초 향로봉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강풍의 추위로 포기하고 바람을 피할 삼거리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왔던 길을 되돌아 향로봉 삼거리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12:28 향로봉 삼거리에 다시 되돌아 나왔습니다.
안국사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마땅한 바람 피할 곳을 찾기로 합니다.
▼ 02-06 위치 표시목 바로 아래에 바람을 피해서 점심식사 할 곳을 찾았습니다.
▼ 12:33 점심식사를 시작하는데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식사를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 13:18 약 45분간의 여유있는 식사시간을 가진 후 다음 길을 이어갑니다.
▼ 식사후 다소 많아지는 비의 양에 따라 안국사 가는 길에 운무가 자욱합니다.
▼ 적상산 정상으로 가는 약간의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 이 적상산성 표시석 뒤로 적상산 정상이지만 시설물로 막혀 있었습니다.
▼ 적상산 정상에 있는 시설물입니다. 사진은 퍼왔습니다.
▼ 13:33 안렴대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안렴대는 날씨가 좋으면 조망이 빼어난 곳인데 운무로 시계 제로가 예상되어
안렴대를 포기하고 안국사쪽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안렴대 조망은 다음으로 미루고....
▼ 13:43 적상산 정상 방향에서 이어지는 안국사 가는 길입니다.
▼ 안국사 전경이 눈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13:44 안국사 전경입니다.
(안국사 개략)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적상산(赤裳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천불전·지장전·삼성각·호국당·일주문·요사채가 있으며 극락전 안에는
보물 제1267호인 괘불(掛佛)이 있다. 괘불은 1728년(영조 4)에 조성하였다.
높이 10.75m, 너비 7.25m로서 천재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麻)로 되어 있다.
이 괘불은 의겸(義謙) 등 비구니 5명의 공동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극락전은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1613년에 중건하였고, 1864년에 중수한 건물인데,
1991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또한, 적성산성에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호국사비가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안국사 [安國寺]
▼ 안국사 극락전 전경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건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 1613년(광해군 5)과 1864년(고종 1)에 중수된 안국사의 경내에는
본전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양 옆에 명부전과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었고,
극락전 앞마당 전면에는 계류에 면하여 청하루(淸霞樓)가 있었다.
청하루와 극락전 사이의 마당 양 옆으로 산성과 사고(史庫)를 지키는 승병들의 숙소인 승방이 있었다.
〈중수기 重修記〉에 따르면, 안국사는 승병들이 거처할 수 있는 숙소로 건립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승방은 훼철되었고, 강당과 누문 구실을 하던 청하루는 20여년 전 해체하여
요사를 개축하는 데 사용하였다. 따라서 안국사 경내에는 극락전·산신각·천불보전·요사 등 4동의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정부의 발전소 건설계획에 따라 사찰 전체가 수몰지역에 편입됨으로써 199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적상산(赤裳山) 남쪽 기슭인 이곳은 안국사와 함께 산성과 사고 수비를 위한 승병들의 거처였던
호국사지(護國寺址) 옆이다.
이건하면서 기존의 건물 외에도 옛날에 있었던 청하루·지장전·일주문·종각 등을 신축하여 새로운
면모를 이루었다.
어간의 주간을 양 협간보다 길게 잡고 각각 4짝과 2짝의 꽃살문을 달았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자연석을 그대로 놓은 주춧돌)를 놓고 세운 두리기둥은 민흘림이 뚜렷하며
기둥머리는 화려하게 용두(龍頭)가 장식하고 있다.
공포는 세부수법에 있어 조각적 수법이 강하며, 쇠서[牛舌]끝이 날카로워 후기적 수법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배면의 공포는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맞배집이지만 측면에도 공포가 배치되어 있어 본래는 팔작지붕이었으나 중수과정에서 지붕의 구조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가구구조를 볼 때 내진고주(內陣高柱)를 평주보다 뒤쪽으로 물려 세우고, 전면 평주와 고주 사이에
대들보를 결구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측면 평주에서 보낸 2개의 충량이 걸쳐 있고, 충량 상부에 다시 대공을 세워 지붕을
지탱하는 이와 같은 가구구성은 팔작지붕의 구성방법이다.
(극락전(極樂殿)이란?)
불교도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법당.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전을 본당으로 삼고 있는 절에서는 극락을 의역한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안양교·안양문·안양루 등을 갖추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법당이 대웅전 다음으로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상향인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보통 동향으로 배치하여, 예배하는 사람들이 서쪽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봉안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다. 후불탱화로는 주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가 봉안되는데, 극락정토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밖에도 극락의 구품연화대를 묘사한 극락구품탱(極樂九品幀)과 아미타탱화를 봉안하기도 한다. 법당의 내부구조도 극락정토왕생신앙이 강했던 만큼 대웅전에 버금가는 화려함을 보이고 있다.
화문(花文)과 비천(飛天)으로 장식하는 불단을 비롯하여, 주불 위에는 닫집인 천개(天蓋)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나 극락으로 인도하는 극락조 등을 조각하여 장식하기도 한다.
극락전 중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 제13호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
국보 제15호인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
국보 제18호인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부석사무량수전,
보물 제790호인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은해사백흥암극락전(銀海寺百興庵極樂殿) 등이 있다.
그 중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봉정사의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추정되는 사원건축의 표본이기도 하다.(네이버 지식백과) ▼ 안국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보물급 문화재 설명입니다. ▼ 안국사 범종루입니다. ▼ 안국사 극락전 내부 전경입니다. ▼ 13:56 10여 분 동안 안국사를 둘러보고 하산길을 제촉합니다. 우리는 치목리 방향으로 이어갑니다. ▼ 안국사 앞의 출입 계단을 내려갑니다. ▼ 안국사에 대한 유래 설명판입니다. ▼ 안국사 입구 삼거리입니다. 우리는 치목리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덕유산국립공원 적상지구 탐방 안내도입니다. 좌측 중간 서창공원지킴터를 출발하여 장도바위, 향로봉 삼거리, 향로봉, 향로봉 삼거리, 안렴대 삼거리, 안국사, 현위치에 도달했고, 송대폭포를 거쳐 치목리로 하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 치목리 방향으로 가면 안국사 산문이 나옵니다. ▼ 13:58 안국사 산문전경입니다. ▼ 안국사 산문 출구에는 '국중제일정토도장(國中第一淨土道場)'이라는 명판이 붙어있습니다. (정토란?)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부처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거주한다는 청정한 국토. 중생이 사는 번뇌로 가득 찬 고해(苦海)인 현실세계를 예토(穢土)라고 부른 데 대한 상대어이다. 시방(十方)세계에 제불(諸佛)의 정토가 있다고 하는 데, 이는 1세계에 2불(佛)이 병립해서는 안 되므로 제불이 나타날 국토가 현실세계 외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논리인데, 특히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서방 극락세계, 약사불(藥師佛)의 동방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를 정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토의 개념은 넓어서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靈山會上), 미륵불의 용화회상(龍華會上) 등이 모두 정토이나,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칭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오직 마음이 정토요, 자신의 마음이 미타(彌陀)’라고 하여 사람들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일심(一心) 외에 정토는 없다고 말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정토 [淨土]
▼ 안국사 산문 입구에는 적상산 안국사(赤裳山安國寺)라는 사찰명이 붙어 있습니다.
▼ 안국사 산문입구에 있는 이정표입니다. 치목마을까지는 3.7km가 남았습니다.
▼ 안국사 산문을 떠나 적상호로 가는 길목에는 가는 빗방울과 함께 운무가 자욱합니다.
▼ 적상호 가는 길목의 단풍은 그야말로 최상의 상태였습니다.
▼ 단풍나무의 종류에 따라 단풍색깔이 제각각으로 빼어납니다.
▼ 14:18 안국사를 떠난지 22여분만에 현위치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바로 치목마을로 하산해야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적상산사고지를 둘러보고
다시 이곳으로 와서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 치목마을 하산길과 적상산사고지 갈림길에서 본 농익은 단풍전경입니다.
▼ 14:21 산행을 시작한지 약 4시간10분만에 적상산 사고지에 도착했습니다.
(적상산 사고 및 사고지)
1995년 6월 20일 전라북도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었다.
안국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면적 6,083㎡이다.
한국의 사고는 고려 말기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역대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선원전(璿源殿)과 실록전(實錄殿)을 두었다.
1439년(세종 21) 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신설하여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내
사고인 춘추관과 외사고인 충주·성주·전주 사고의 4곳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사고가 불에 타버렸다.
이때 전주사고의 실록은 1593년(선조 26) 내장산, 해주 등을 거쳐 평안도로 옮겨 난을 피함으로써
임진왜란 중 멸실되지 않은 유일한 사고본으로 남게 되었다.
그후 조정에서는 1603(선조 36)∼1606년(선조 39)에 실록을 다시 인쇄하였는데,
인쇄된 실록은 전주사고본을 저본으로 정본 3부와 초본인 교정본 1부를 인쇄,
모두 5부로 만들었으며, 전화를 피할 수 있도록 깊은 산중이나 섬 지방에 사고를 설치하였다.
원본인 전주사고본은 강화의 마리산에 두었다가 정족산사고로 옮겼으며,
새로 인쇄한 정본 가운데 1본은 예전처럼 서울의 춘추관에 두고 나머지는 태백산사고와
묘향산사고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초본인 교정본은 오대산사고에 보관하였다.
이때 묘향산사고가 있는 북방에서는 후금(後金)의 세력이 확장됨으로써 이에 대비하여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옮기자는 논의가 있었으며, 1610년(광해군 2) 조정에서는 사관을 보내
적상산의 지형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축하였다.
그뒤 1614년(광해군 6)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적상산에 실록전을 창건함으로써 적상산사고가
들어서게 되었다. 또 1641년(인조 19) 선원전을 세우고 그해 11월 왕실의 족보인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을 봉안함으로써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가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적상산사고에 비장되어 있던 실록을 서울의 왕실규장각으로
옮겨감으로써 사고가 폐지되었으며, 이곳은 안국사의 불구를 옮겨와 법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후에 선원전 건물은 안국사 경내로 옮겨왔고 실록전과 그밖의 부속 건물들은 모두 훼철되었다.
이 사고터는 안타깝게도 적상산 양수발전소댐을 건설하면서 상부댐 안에 수몰되어 안국사와 함께
저수지 윗쪽으로 이전하였다.
적상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에는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축성을 건의하여,
그 계기로 축성하였다는 적상산성이 있다.
그리고 고려 충렬왕3년(1227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안국사 및 사고를 지키기 위한
호국사찰로서 조선시대 인조 21년(1643년)에 창건한 호국사터가 있다.
현재의 안국사는 이 호국사터에 자리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 적상산 사고에서 바라본 인공호수인 적상호 전경입니다.
(적상호 개략)
적상호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인공댐이다.
인근의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전하는 심야 전기를 끌어다 하부댐인 무주댐에서 물을
상부댐인 적상호로 끌어 올려다 전력 수요량이 많은 시간에 고도차로 인한 큰 낙차의 힘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발전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청평양수발전소의 호명호수, 삼랑진양수발전소의
금호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호수이다.
이 적상호는 저수량 350만톤에 7시간 가량의 발전을 할 수 있으며, 전기량은 전북지역 전체에
약 3시간 정도를 이용할 수 있는 발전량이라고 한다.
▼ 적상호 부근의 빼어난 애기단풍 색깔입니다.
▼ 적상사지 전체 전경입니다. 이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한 건물들입니다.
▼ 14:30 적상산 사고를 둘러보고 난 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치목마을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 안국사 부도군입니다.
(부도(浮屠)란?)
부두(浮頭)·포도(蒲圖)·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데,
원래는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Buddha)를 번역한 것이라 하고 또는 솔도파(率屠婆, stupa),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고도 한다.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난 불상이나 불탑이 바로 부도이며,
더 나아가 승려들까지도 부도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묘탑, 즉 부도라는 용어로 승려의 사리탑을 가리키는 실례는 신라 하대부터 보이고 있다.
872년(경문왕 12)에 건립된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의 비문
중에 “기석부도지지(起石浮屠之地)”라는 구절은 승려의 묘탑이 곧 부도라고 일컬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묘탑, 즉 부도를 세우는 것은 불교식 장례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가 전래된 때부터
묘탑의 건립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지만 연대가 그때까지 올라가는 묘탑은
문헌상으로도 볼 수 없다.
다만 627∼649년경에 원광법사(圓光法師)의 부도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이 시기를 부도 건립의 시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실물은 전하지 않고 844년(문성왕 6)에 조성된 전흥법사염거화상탑(傳興法寺廉居和尙塔,
국보 제104호)이 가장 오래된 부도로 추정되고 있다.
본래 부도의 건립은 법제문도(法弟門徒)들이 선사(先師:돌아가신 스승)를 섬기는 극진한 마음에서
스승이 입적(入寂)한 뒤 온 정성을 다하여 세우는 것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9세기에 이르러 당나라에서
선종(禪宗)이 들어온 이후 부도의 건립이 크게 유행하였다.
즉 9산(九山)의 각 선문(禪門)에서는 각기 사자상승(師資相承 :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학예를 이어 전함.)
함으로써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으며,
각 선문에는 그 법문(法門)의 개산조(開山祖)와 개산인(開山人)의 순서로 뚜렷하게 하종파의 계보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각 선문의 제자들은 각기 소속 종파가 확정되면서 그들의 조사(祖師)를 숭앙하여 평시에
그가 설법한 내용이나 교훈 등을 어록(語錄)으로서 남기고, 입적 뒤에 선사를 추앙하기 위하여
당연히 후세에 길이 보존될 조형적인 장골처(藏骨處)를 남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기에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부도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 부도의 기점을 이루고 있는 전흥법사염거화상탑은 8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상대석(上臺石)·중대석(中臺石)·하대석(下臺石) 등의 기단부는 물론이고 그
위에 놓이는 탑신굄대·탑신부(塔身部)·옥개석(屋蓋石)·상륜부(相輪部)까지 모두 8각으로 조성되어
있어 전체적인 평면이 8각이다.
이러한 형식의 부도를 이른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라 일컫고 있으며,
이후 신라시대에 건립된 부도는 모두 이러한 형태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국보 제59호)과 같이
평면이 4각으로 변하여 일반 석탑과 같은 형태의 부도가 나타나기도 하고,
범종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가 나타나 8각원당형과 함께 발전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의 대표적인 예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쌍봉사철감선사탑(雙峯寺徹監禪師塔, 국보 제57호)·
전흥법사염거화상탑, 고려시대의 흥법사진공대사탑(興法寺眞空大師塔, 보물 제365호)·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 국보 제102호)·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
조선시대의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 국보 제197호)·
회암사지부도(檜巖寺址浮屠, 보물 제388호)·법주사복천암수암화상탑(法住寺福泉庵秀庵和尙塔)·
연곡사서부도(鷰谷寺西浮屠, 보물 제154호) 등을 들 수 있다.
부도에는 다른 석조물과 달리 탑비(塔碑)가 따로 세워져 있어 부도의 주인공과 그의 생애 및 행적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당시의 사회상·문화상 등을 알 수 있어 주목된다.
이와 아울러 각 부의 정교한 불교 조각과 화려한 장식문양도 조각의 극치를 보이고 있으며,
형태도 전체적으로 균형된 조형으로 조화미를 보이고 있어 우리 나라 석조미술의 백미로 꼽힌다.[네이버 지식백과]
▼ 14:33 부도탑군을 지난후 첫 계곡 건너는 작은 나무다리를 지나갑니다.
▼ 안국사 1.2km지난 이정표를 지나갑니다.
▼ 이정표 옆에 설치된 09-05 현위치 설치 표시목입니다. 치목마을 2.4km가 남았습니다.
▼ 하산길에도 가을색이 뜸뿍 들어 있습니다.
▼ 14:44 위치표시목 09-04를 지나갑니다. 500m를 11분만에 통과합니다.
▼ 활엽수가 많아서인지 이동 산길에도 낙엽으로 인해 추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 철모르는 진달래가 피어 있습니다.
▼ 14:49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만산홍엽입니다.
▼ 14:53 송대폭포 입구 전경입니다.
▼ 송대폭포는 골짜기 안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 송대폭포를 뒤로하고 하산길을 이어갑니다.
▼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하산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하산길에서 마주 보이는 단애전경입니다.
▼ 14:58 현위치표시 09-03번을 지나갑니다. 치목마을까지 1.4km남았습니다.
▼ 가을색으로 물든 산행길이 환상적입니다.
▼ 15:06 위치표시목 09-02를 지나갑니다. 하산길은 빠르긴 빠르나 봅니다.
하산길 500m를 8분만에 통과했습니다.
▼ 15:14 위치표시목 마지막인 09-01을 지나갑니다. 09-02에서부터 500m를 8분만에 통과합니다.
▼ 치목마을 어귀까지 가을색으로 이어지는 단풍들 터널이었습니다.
▼ 15:23 산행은 이곳에서 종료해야 합니다. 국립공원지역이라 입산 통제시간이 공지되어 있습니다.
▼ 15:23 치목마을 100m를 남기고 산행은 끝이 납니다.
치목마을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 치목마을 전경입니다.
▼ 15:25 치목마을 버스 정류소에서 오늘하루 산행을 종료합니다.
전체 5시간 25분의 산행시간이 걸렸습니다.
▼ 산행후 인근 식당에서 송어회로 뒤풀이 했습니다.
오늘 산행은 오전에는일기예보와는 달리 구름많은 맑은 가을하늘아래서의 산행이었고,
오후에는 가는 빗줄기 속의 산행이었습니다.
오전에는 산을 오르는 우리들을 위한 날씨였고, 오후에는 속타는 농심을 위한 날씨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환상적인 추색의 산하가 다시 이곳을 찾을 기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적상산은 여름을 제외하고는 언제든지 가볍게 찾을 수 있는 산으로 각광받을 수 있는 산이었습니다.
'호남산 > 호남.아 ~ 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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